'포식자 인간' 피해 밤으로.. 야행성 돼버린 포유동물 [S스토리]

임국정 2018. 12. 1. 1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쟁 때마다 야생동물 확 줄어 / 생존 위해 밤에 활동하기 시작 / 동물복지 외치지만 현실 열악

미국 예일대 생태학자 조슈아 다스킨 등 연구팀은 전쟁과 가뭄, 동물보호구역, 인간의 인구밀도 등 10가지 요인을 놓고 약 65년간 아프리카 대륙 동물 36종의 개체 수 변화 자료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평화 시에는 야생동물 개체 수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지만, 크든 작든 전쟁이 일어나기만 하면 그 개체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전쟁이 잦으면 잦을수록 포유동물 개체 수는 급격히 떨어졌다. 인간이 저지르는 전쟁으로 야생동물 개체 수가 급감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다스킨은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유혈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더라도 전쟁이 벌어진 해마다 포유동물 가운데 35%가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교전이나 지뢰 폭발 같은 물리적 충돌보다 전쟁으로 인한 사회 및 경제 여건의 변화가 동물들의 생존에 주로 악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포화 속에 굶주린 사람들이 값비싼 코끼리의 상아를 노리거나 먹잇감으로 보호 대상 동물 사냥에 나서는 식이다.

이제 동물들은 인간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지켜왔던 생활방식들을 바꾸고 있다. 낮에 활동하는 포유동물들이 인간을 피해 야행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이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환경과학·정책학부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케이틀린 게이너가 이끈 연구팀은 6개 대륙에서 위치정보시스템(GPS) 추적장치 등을 이용해 다양한 포유동물의 활동을 조사한 기존 76개 연구결과의 자료를 분석했다. 62종의 포유류를 다룬 이번 연구에서는 인간이 근처에 있을 때 포유동물들이 낮 동안 상대적으로 적게 움직였고, 밤에 더 활동적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러한 행동 변화는 심지어 이미 야행성이라고 분류된 종들에서도 나타났다.
인간을 피해 밤에 먹이를 찾고 있는 동물들. 낮에 활동하는 포유동물들이 인간을 피해 야행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디언 캡처
게이너는 과거 공룡이 멸종된 이후 포유동물들이 주간에 활동을 시작했다며 “인간은 지금 지구 어디에나 있는 무서운 집단으로, 우리는 다른 모든 포유동물을 다시 야간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행, 사냥, 농경, 도로 건설 등 주로 낮에 이뤄지는 인간의 활동을 피해 밤에 먹이를 찾고, 이러한 변화가 여러 종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동물들은 서식지와 공간에 이어 시간까지 인간에게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동물 복지를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동물도 법적 독립체 또는 법적 인간의 지위에서 논의돼야 한다. 동물을 단순한 소유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지난 7월 인도에서는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도 동물권이 있는 법적 독립체라는 이색 결정이 나왔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 고등법원은 동물 보호와 복지 관련 청원 심리에서 “새와 수생동물 등 ‘동물의 왕국’ 모든 구성원이 ‘살아있는 사람’과 비슷한 권리를 가진 법적 독립체”라고 선언했다. 인도 법원은 동물 복지 등과 관련해 진보적 판결을 내려왔지만 동물에 법적 독립체 지위를 부여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 회원들이 지난 9월1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모피 사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LA시의회는 모피제품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 추진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유럽에서는 동물권이 ‘종교의 자유’에 맞서고 있다. 가축이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취, 전기 충격 등으로 의식을 잃게 한 후 도축하도록 의무화한 규제를 두고 이슬람교와 유대교도들이 자신들의 율법과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율법에 따라 가축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축한다. 유대교에서도 상처 입은 고기는 먹지 않아 고압 전기봉 등을 사용한 고기는 구매하지 않는다.

인도와 유럽 사례 모두 동물권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 동물들이 차에 치이거나 포획돼 팔려나가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 말레이시아 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탄절 전날 보르네오섬 말레이시아령 사라왁주의 한 시장에선 열다섯 토막이 난 태양곰(말레이곰) 사체가 매물로 등장했다. 태양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 취약종이자 현지법상 포획이 금지된 동물이다.

인간을 위해 동물들을 가둬놓는 동물원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6월 폭우로 침수된 틈을 타 우리를 빠져나온 곰이 사살됐다. 같은 달 벨기에 동물원에서도 두 살 된 암사자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방문객들의 안전을 우려한 동물원 측에 의해 3시간 만에 사살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9월 대전 오월드 퓨마 ‘뽀롱이’가 사육사의 실수로 탈출했다 사살되는 사건이 벌어지며 동물 생명을 경시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지난 9월 대전 오월드 사육장에서 사육사의 실수로 탈출했다 사살된 암컷 퓨마 ‘뽀롱이’가 살아 있을 때의 뒷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죽음의 동물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사설 반둥 동물원에서는 수년 전부터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수백 마리의 동물이 관리부실로 폐사했다. 2016년에는 야생 개체 수가 400여마리에 불과한 수마트라 호랑이가 독성물질 포름알데히드가 든 고기를 먹은 뒤 장기 손상으로 죽었다. 지난해에는 깡마른 태양곰들이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구걸하고, 심지어 자신의 대변을 주워 먹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