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전영기의 시시각각] 'KT 화재' 허위보고·직무유기 의혹

전영기 입력 2018.12.03. 00:17 수정 2018.12.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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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유영민은 복구·보상 얘기만
"좋은 게 좋다"가 치명적 위험 불러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KT 아현빌딩 화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관계자들의 입에서 복구와 보상 얘기만 흘러나오고 재발 방지를 위한 원인과 책임 문제는 거론되지 않는다. 사건 발생 이틀 뒤(11월26일) 유영민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이 황창규 KT 회장 등 통신3사 대표들을 혜화전화국으로 불러 야단치는 행사를 할 때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다. 유 장관은 “KT는 복구와 피해 보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질책했을 뿐 통신사 관리에 실패한 자신과 주무 당국의 책임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황창규 회장도 그 전날 아현빌딩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기회에 통신시설 여러 분야를 일제히 점검하고 개인이나 자영업자의 보상 문제를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만 했다. 자기나 회사의 책임 문제는 침묵했다. 기자들의 추궁성 질문이 이어지자 황 회장 옆에 있던 오성목이라는 네트워크 부문 사장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당시 상황은 연합뉴스TV가 생방송으로 잘 중계했다. 오 사장의 눈엔 황송하게도 현장에 나오신 회장님을 보호하는 일이 급했을지 모르지만 보통 시청자들의 눈엔 수도권 시민 수십만 명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당사자인 KT 회장·사장 사이에 잘 꾸며진 역할극으로 비쳤다. 회장은 복구와 보상 말씀만 반복하고 사장은 변명과 방어에 집중한 모양새다.

거대 정부의 권력과 자본의 마력이 조성하는 ‘원인·책임 외면 프레임’이 효과를 보는 것인지 서대문경찰서는 “방화나 실화 가능성은 낮다”며 한 달 뒤에나 나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지켜보자는 태도다. 안용식 형사과장은 ‘누구를 불러 조사를 했느냐’는 질문에 “민감한 사안이라 답할 수 없다”며 함구로 일관했다. 아무래도 불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 때문에 났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싶다. 전기 합선이나 누전 같은 불가항력이 주범으로 발표되면 유영민과 황창규는 자연스럽게 문책론에서 벗어나게 된다.

KT 아현빌딩 화재는 원인과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두 가지 의문이 해소돼야 한다. 첫째, 왜 지하 통신구에 스프링클러나 감시카메라(CCTV)가 한 대도 없었나. 5층 건물 지상 곳곳에 있는 스프링클러가 하필 광케이블 220조, 동케이블 16만8000회선이 뭉쳐 있는 통신구엔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CCTV의 부재는 원인 규명을 흐리게 만든 핵심 요소다.

둘째, 왜 방송통신발전기본법상 KT 아현빌딩은 정부가 직접 관리해야 할 C등급 이상 수준의 중요 기간시설임에도 회사가 관리하면 되는 D등급으로 하향 분류돼 있었나. 이 문제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 아현빌딩이 B나 C등급 관리를 받았다면 통신구에 스프링클러도 CCTV도 없는 한심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유영민 장관의 과기정통부는 “등급 기준은 통신사들로부터 통보받아 관리해 왔다”고 해명한 반면 황창규 회장 옆의 KT 오성목 사장은 “정부에서 정해 준다”고 했다.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다. 과기정통부가 KT의 ‘통보’만 받고 실사를 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정부가 ‘정’해 준다는 KT 주장도 등급 지정에 필요한 관련 정보를 다 자기들이 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KT가 비용을 아끼겠다고 인근 지역의 장치와 기능을 죄다 아현빌딩으로 통폐합시켜 용량을 C등급 이상 수준으로 늘려 놓고 정부에다간 D등급으로 신고하지 않았나 의심이 간다. 허위보고 혐의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고다. 그런 사건·사고를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공동체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맞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