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70만원..스태프 갈아서 세운 '청담동 미용 공단'

2018. 12. 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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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뷰티공단' 리포트] ① 미용스태프 노동 실태
'K뷰티' 생산하는 미용실 355곳 "꿈의 공장" 3천여명 일하지만
군대식 서열에 '열정페이' 심각 "청담동 디자이너 되려면 버텨야"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동네 청담동에는 드라마와 케이팝 한류처럼 ‘케이뷰티’ 열풍을 생산하는 ‘청담뷰티공단’이 있다. 이 공단은 최저임금보다 적은 ‘열정페이’를 손에 쥐고 하루 12~18시간 노동하는 ‘스태프’들에 의해 돌아간다. 1970~80년대 구로공단 등에서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던 ‘시다’들의 2018년형이다. <한겨레>는 3회에 걸쳐 이들의 노동 실태와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대안을 짚어봤다.

‘케이(K)뷰티’ 트렌드의 중심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늘에 어둠이 내린다. 골목마다 자리잡은 ‘청담동 미용실’의 화려함에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청춘들의 고단함이 깔려 있다. 최고가 되기 위해 ‘꿈의 공장’인 이곳을 찾았지만, 철저한 서열과 위계 구조로 짜인 일터에서 저임금 열정페이를 손에 쥐고 꼭대기로 오르기는 쉽지 않다. 헤어와 메이크업, 네일아트 등 미용 관련 분야의 이미지를 유리판 위에 모아 찍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층장이 애들 관리 제대로 안 하냐!”

윤주(가명·24)가 서둘러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님(스태프 이름), 30분 넘었는데 지금 뭐 하고 계십니까?”

나지막하게 후배를 다그치는 윤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몇분이 지났을까. 여성 스태프 한명이 짧은 치마를 펄럭이며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당황한 얼굴 한쪽에 베개 자국이 그대로 찍혀 있다. 한층 아래 미용실 구석, 손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골방’에 누워 있다 뛰어나온 게 분명하다. 한평 반(5㎡) 남짓한 공간에 베개 하나 이불 하나 널브러져 있는 ‘골방’. 원래 아픈 스태프들이 디자이너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잠시 몸을 누일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하지만 새벽 4~5시에 출근해 쏟아지는 잠을 떨칠 수 없는 20대 초반의 스태프들이 점심시간 30분 동안 밥을 먹는 대신 몰래 낮잠을 청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호통치는 디자이너 선생님 앞에 피곤함에 절어 몰래 쉬고 있는 후배를 찾아 데려다놓는 것. 한층의 스태프들을 관리하는 ‘층장’ 윤주의 업무다.

■ ‘꿈의 공장’ 첫번째 동력, 철저한 서열과 위계

윤주에게 이곳은 ‘꿈의 공장’이다. 한류드라마 배우와 케이팝(K-pop) 아이돌의 헤어·메이크업은 모두 이곳 청담동 미용실에서 탄생한다. 2016년 기준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미용실은 모두 1210곳. 6209명의 미용실 종사자가 ‘강남 스타일’을 만든다. 이 가운데 청담동·압구정동·신사동에 자리한 미용실 355곳을 묶어 ‘청담동 미용실’이라고 부른다. 강남구 미용실 종사자의 50%가 넘는 3431명이 이곳에서 일한다.

청담동 미용실의 시작은 1989년이었다. 1980년대 후반 부동산 투기 열풍 속에서 최고가 아파트로 떠오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에 최첨단 소비문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1988년 압구정동에 맥도날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그 길 건너편에 1990년 국내 백화점 업계 최초로 ‘명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갤러리아 명품관이 오픈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미용업계는 발 빠르게 변화를 포착했다. 1989년 헤어 디자이너 박준이 ‘미용의 메카’였던 명동을 떠나 청담동에 ‘박준미장’ 본점을 내면서 유명 디자이너들의 청담동행에 물꼬가 트였다. 그로부터 30년. ‘청담 스타일’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케이뷰티’를 탄생시켰다. ‘케이뷰티’는 곧 ‘청담 스타일’이다. ‘최고의 헤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은 청춘들은 오늘도 최첨단의 스타일과 디자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청담동으로 모인다. 윤주 같은 이들에게 이곳이 ‘꿈의 공장’인 까닭이다.

‘꿈의 공장’을 돌리는 첫번째 동력은 철저한 서열 시스템과 위계질서다. 전입일 하루 차이로 선임과 후임병을 나누는 군대처럼, 미용실에 하루라도 먼저 입사한 스태프는 꼬박꼬박 ‘선배님’으로 불린다. 윤주에게도 이 위계질서에 따른 ‘텃세’의 기억이 또렷하다. 4년 전 겨울, 윤주가 처음 취업했던 청담동 미용실에서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선배님’은 없었다. ‘외곽숍’(청담동·압구정동·신사동 외 미용실)에서 일하다 청담동에 온 동기들과 달리 윤주는 온종일 내내 서서 청소만 하다 퇴근해야 했다. ‘내가 이러려고 청담동에 왔나’라는 생각에 하루빨리 샴푸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윤주는 선배들을 대신해 매일 설거지를 하며 “선배님, 한번만 샴푸하는 법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했다.

그러나 윤주에게 샴푸를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던 선배는 번번이 자신을 기다리는 윤주를 두고 말없이 퇴근했다. 깜빡 잊어서 그랬는지 골탕 먹이려고 그랬는지 길들이려고 그랬는지 윤주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쌩으로 아무것도 몰랐던” 윤주는 선배 서른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샴푸 테스트’를 치렀다. 바삐 손을 움직이는 동기들 사이에서 윤주는 머리에 물을 끼얹는 것조차 어색했다.

“너 나와! 들어온 지 일주일 됐는데 샴푸도 못 해?” 스물여섯살 ‘스태프장’ 선배가 소리를 질렀다. “서른명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나 자신이 버러지가 된 기분이었어요.” 다음날 윤주는 출근하지 않았고, 그길로 청담동을 떠났다.

하지만 배운 게 미용뿐이었고, 버릴 수 없는 꿈이었다. 1년 뒤 다시 청담에 돌아온 윤주는 그렇게 2년8개월을 살았고 어느덧 중간관리자인 ‘층장’이 됐다.

“이제는 좀 이해가 될 때도 있어요. 들어왔다가 이름도 외우기 전에 나가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새로 온 스태프는 귀찮은 존재인 거죠. 차 내는 법, 비품 놓는 자리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는 것도 귀찮았을 거고….”

미용업은 숙련 기술을 위한 도제식 교육 기간이 길고, 고객을 대면해 감정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 노동이다. 이 점에서 ‘미용노동’은 학력과의 연관성이 낮고, 표준화한 매뉴얼보다 오랜 경험에서 체득한 ‘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청담동은 ‘감’을 체득하는 기간이 더 길다. 자격증 취득 뒤 2~3년의 스태프 기간을 거쳐 디자이너로 승급하는 ‘외곽숍’과 달리 청담동 디자이너가 되려면 평균 5~7년의 스태프 기간을 거쳐야 한다. 스태프의 직급도 층층이 나누어져 있다. 스태프는 ‘비기너-주니어-시니어-인턴-인턴 스타일리스트’ 또는 ‘헬퍼-어시스트-주니어 화이트-주니어 블랙-인턴-인턴 스타일리스트-스타일리스트’와 같이 5~7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고객의 머리를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외곽숍’과 차별화된 청담동에선 연예인과 웨딩손님 같은 ‘특수고객층’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더 높은 수준의 숙련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동원된다.

서열과 위계로 꽉 찬 시스템은 서열 최상위 단계에 있는 헤어 디자이너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단, 디자이너의 서열은 경험이나 연차가 아니라 매출을 기준으로 나뉜다. 청담동 미용실에는 ‘월 매출 1000만원당 전담 스태프 1명’이라는 암묵적 룰이 있다. 매출이 낮은 디자이너에겐 ‘내 새끼’(전담 스태프)가 없다. 매출 스트레스 때문일까. 그런 디자이너일수록 “유난”은 더욱 심했다.

“디자이너는 직접 샴푸하는 걸 극도로 꺼려요. 커트 손님 한명뿐이라 상대적으로 한가한 선생님이 너무 손이 없어서 스태프 혼자 염색약 바르고 바로 다음 손님 펌 들어가야 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스태프가 해야지, 그럼 누가 해?’라고 샴푸를 시키면서 짜증을 내요. 그럴 땐 ‘선생님이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나는 층장이니까요. 다른 층에서 일할 스태프를 찾아 와야죠.”

그렇게 “여유도 없고, 그럴수록 ‘을’끼리 서로 쪼아대는” 상황은 디자이너에게서 선배 스태프인 ‘층장’에게, ‘층장’에게서 다시 후배 스태프에게 서열을 따라 고스란히 내려간다. “저도 안 그러고 싶은데 하도 난리를 치니까 어쩔 수 없어요.” 윤주는 청담동에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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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공장’ 두번째 동력, ‘저임금 착취’ 구조

“이 동네는 겉보기만 좋지 실속이 없어요. 친구들은 제가 유명 연예인 머리를 해주니까 돈을 많이 버는 줄 아는데, 그 돈 내가 받는 게 아니거든요.”

성훈(가명·26)이 길 건너편 ‘꿈의 공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훈은 3년 전 겨울 청담동에 왔다. 그해 최저임금은 5580원, 월 급여로 환산하면 116만6220원이었다. 그러나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미용실에서 일했던 성훈은 이 돈을 온전히 제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교육비 30만원, 식대 6만원, 비품을 넣는 공간 사용료 5만원, 미용실이 4대 보험을 들어주지 않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내야 하는 3.3%의 세금. 이런 비용을 공제하고 나면 ‘막내’의 월급은 70만원 남짓 남는다. 그즈음 미용실 대표는 아침 조회 시간에 스태프들을 불러 모아 “불경기라 힘들어도 서로 아낄 건 아끼고, 좀 더 열심히 잘해보자”고 말했다. 그날 대표는 새로 뽑은 ‘포르셰’를 타고 미용실을 떠났다.

“한달에 70만원 주는 미용실이 ‘꿈의 기업’인가요?” 성훈이 일했던 미용실은 몇년 전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입사 기회를 주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 프로그램의 부제는 ‘꿈의 기업 입사 프로젝트’였다.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최종 합격을 기뻐했던 후배들은 한달이 채 안 돼 모두 일을 그만뒀다.

‘꿈의 공장’을 돌리는 두번째 동력은 꿈을 갈아 넣어 만든 ‘저임금 착취’ 구조다. 청담동을 비롯한 미용업계에는 ‘교육비’와 ‘식대’ 명목의 돈을 공제해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를 지급하는 ‘꼼수’가 오랜 관행이다. 청담동 스태프들은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통상 6월과 12월 2차례의 승급 시험을 치러야 한다. 미용은 손기술이고, 단시간에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에 “천재”가 아닌 이상 전 단계를 한번에 통과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소 4~5년, 중간에 미용실을 옮긴 경우 6~7년 걸린다. 승급 시험 직전 3개월 동안 진행되는 ‘기술교육’은 미용실이 스태프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명분이 된다. 그 3개월을 명분으로 교육이 없는 달에도 매달 급여에서 교육비를 공제한다. 최저임금이 올랐을 때도 최저임금 기준액이 오른 만큼 교육비를 올린다. 스태프들에게 실제 기술교육을 했든 안 했든 미용실이 교육비를 급여에서 공제하는 건 불법이다.

성훈의 월급은 올해 4년차가 되면서 140만원으로 올랐다. 여전히 올해 최저임금 157만3770원에 미달한 액수지만 청담동에선 ‘업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140만원에서 미용실 근처 반지하방 월세로 50만원을 내면 성훈은 “치과에 갈 때 겁이 날” 정도로 궁핍해진다. 그러니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돈을 받는 스태프들은 자주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수도권의 한 미용실에서 스태프 생활을 하다 뒤늦게 청담동에 입성한 민호(가명·27)는 지난해 여름 96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고향을 떠나 혼자 서울살이를 하는 민호는 이 가운데 52만원을 고시텔비로 냈다. “한달 생활비가 40만원 정도인데, 돈을 모으는 건 둘째 치고 마이너스가 되더라고요. 미용 재료 살 돈도 없으니까 당황스럽고, 빚을 지면서까지 청담에 있어야 하나 싶고요.”

디자이너들도 스태프들의 이런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선생님’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나 때는 30만원 받았어. 너넨 좋아진 줄 알아.”

지난날 이를 악물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버텼던 청담동 스태프들은 오늘날 화려한 미용실의 ‘디자이너 선생님’이 된 제 모습이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다. 내가 ‘노오오력’을 해서 지금 이 자리에 올라왔듯, 내 스태프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청담동 디자이너’란 타이틀을 얻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관문으로 여긴다.

■ ‘꿈의 공장’ 세번째 동력, 승자독식 시스템

이렇게 청담동은 내가 당한 착취를 곧 너를 착취해야 하는 이유로 정당화하면서 돌아간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말뿐인 정당화가 아니다. 청담동 디자이너들은 실제로 스태프들을 착취해서 수익을 올린다. ‘꿈의 공장’을 돌리는 세번째 동력, 성공한 자에게 모든 이익을 몰아주는 ‘위너 테이크 올’(Winner Takes All) 승자독식 시스템이다.

“패션잡지에 나오는 머리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위해 청담동에 온 지원(가명·25)의 소원은 “일한 시간만큼 돈 받는 것”이다. ‘시아게’(일본어로 ‘마무리’라는 뜻)급 스태프인 지원은 디자이너 선생님을 대신해 드라마 야외 촬영 현장에 나간다. 디자이너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는 배우가 작품에 들어가면 미니시리즈 드라마 기준 3개월 동안 야외 촬영이 이어진다. 지원은 현장에서 꼬박 배우의 머리를 만진다. ‘디졸브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살인적인 드라마 촬영 스케줄은 배우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디졸브 노동’은 밤샘 촬영이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고 다시 오전에 촬영을 시작하는 노동 환경을 끊김 없이 두개의 화면을 겹쳐서 장면을 전환하는 영상 기법 ‘디졸브’에 빗댄 말이다. 아침에 지방 촬영이 잡히면 배우를 1~2시간 더 재우려는 소속사 요청에 따라 지원은 새벽 3시에 배우의 집 앞으로 출근해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최근 장시간 노동으로 방송 스태프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지난 3월 고용노동부는 4개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미용실 스태프들은 이 대상에서 빠졌다. 방송사나 외주제작사 소속이 아니고 개인사업자인 연예인과 계약을 맺은 미용실 소속 스태프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원이 하루 18시간 배우의 헤어스타일을 손봐준 대가로 급여 이외에 받은 돈은 시간당 3000원꼴인 조기출근 수당이 전부였다. 연예인 소속사가 미용실에 결제하는 한달 출장비 300만원은 모두 ‘디자이너 선생님’의 매출로 돌아간다. 재주는 스태프가 부리고 돈은 디자이너 선생님이 번다. 국외 촬영이라고 다르지 않다. 선생님을 대신해 4박6일 국외 로케이션 출장을 다녀온 지원이 ‘출장비’로 받은 돈은 4만원이 전부였다. ‘1박에 1만원’으로 계산된 숙박비 명목이었다.

“가끔 내가 왜 이 돈 받고 일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죠. ‘그냥 동네 미용실 갈걸 그랬나’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동네는 디자이너가 빨리 되니까 일찍 돈을 벌 수 있잖아요. 그런데 또 내가 만든 머리가 드라마에 나오고, ‘연예인 ○○○머리’로 불리는 맛도 있어서…. 마약인 것 같아요.”

이러니 청담동 미용실은 연예인을 유치하기 위해서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홍보 효과를 위해 연예인 한명을 유치하려면 그만큼의 협찬을 해줘야 한다. 일반 고객이었다면 수십만원을 받을 머리와 화장을 공짜 내지는 재료값만 받고 해주는 식이다. 그래서 청담동에서 연예인은 ‘협찬 거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톱스타를 전담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데려오기 위해서 미용실과 디자이너 사이에 3년 또는 5년 계약을 전제로 수천만원의 돈이 오갑니다. 여자 연예인의 결혼식은 특히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서비스를 받는 연예인에게 오히려 돈을 주고서라도 데려오는 분위기가 있어요.” 청담동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온 헤어 디자이너 ㄱ씨의 말이다.

뒤에서 ‘협찬 거지’라고 욕해도 청담동의 ‘위너’는 연예인, 그리고 연예인에게 빌붙어 고수익을 내는 디자이너들이다. “너도나도 연예인 협찬을 하면서 임대료와 재료값은 못 줄인다는 거죠. 미용실이 줄일 수 있는 건 스태프 인건비예요. 그러니 청담동 미용실의 최후 승자는 스태프들의 임금을 아껴서 협찬을 받는 연예인인 거죠.”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미용실에서 제품 진열대 앞을 지나가는 직원의 모습이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고 있다. 커튼이나 가림막으로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간판으로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청담동 미용실’의 특징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꿈의 공장’ 네번째 동력, 청담동이라는 자부심

철저한 서열과 위계 구조가 있고, 저임금으로 착취를 당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승자가 되기를 꿈꾸는 곳. 그런 청담동에서 ‘꿈의 공장’을 돌리는 네번째 동력은 청담동에서 일한다는, 학습된 자부심이다.

민호는 ‘마음가짐’이란 말을 좋아한다. “외곽숍은 마음가짐이 설렁설렁한 사람도 손쉽게 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청담은 일하는 사람의 자세나 마음가짐이 되어야지만 계속 써주는 곳이거든요.”

청담동 미용실에서 일한 지 2년이 된 민호는 청담동 스태프로서 자신의 남다른 ‘서비스 마인드’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샴푸는 스태프가 고객과 만나 처음 하는 서비스예요. 스태프가 샴푸를 못하면 ‘목 아픈데 빨리 헹궈나 주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잘하는 경우에는 ‘이 사람 실력이 좀 되나 보다’라고 느끼죠. 그러면 (디자이너가 아니라) 스태프인 제가 펌을 말아도 믿고 맡겨요.”

청담동 스태프들은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장기간 교육을 받는다. 높은 시술비용에 걸맞은 차별화한 서비스를 영업 전략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매장 안에서 앉는 것을 일절 금지하는 원칙이다. 스태프는 언제든 고객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로 서서 대기해야 한다.

“청담에선 손님이 없어도 스태프는 절대 앉으면 안 되거든요. 계속 서 있거나 거울을 닦거나. 끊임없이 자기가 할 일을 찾아다녀야 해요.” 그래서 윤주는 이따금 돈이 필요할 때 해오던 외곽숍 ‘스페어’(일당을 받고 아르바이트처럼 미용실 일을 하는 것)를 더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외곽숍은 손님이 없거나 염색·펌 시간을 기다릴 때 스태프가 앉아서 쉴 수도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주는데, 윤주는 이런 편안함에 길드는 제 모습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어쨌든 저는 청담에서 미용을 할 사람인데 편한 곳에 있으니까 마음도 해이해지는 것 같아서요.”

청담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스스로 다잡고, 때로는 해이해지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스태프들의 학습된 자부심을 고객들도 맞춤하게 부추겨준다. 청담에서는 ‘진상’ 고객의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이 동네가 그래도 돈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진상 손님은 없어요. 머리가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짜증은 내도 스태프들한테 많으면 5만원씩 팁은 주고 가요.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봐요. 그나마 팁도 나눠 가질 때가 많고요.”(성훈)

“갑질은 논현동 드라이숍에 많다고 들었어요. 그쪽 미용실에는 업소에 나가는 언니들이 많이 오는데, 샴푸 중에 자기 귀에 물이 들어갔다고 스태프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윤주)

아침 8시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담역 9번 출구. 이른 아침부터 20대 남녀 30~40명이 가발을 꽂을 삼각대와 미용 도구가 가득 든 캐리어, 대형 종이가방을 들고 한 건물로 들어갔다. 모두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미용실 업계 1위 ㅈ헤어 아카데미에 교육을 받으러 온 스태프들이다.

여기서 또 다른 윤주와 성훈, 민호와 지원이 탄생하고 그들을 짓밟으면서 ‘청담뷰티공단’은 오늘도 화려하게 돌아가고 있다. 선담은 송채경화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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