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료원은 기피시설" 이전반대 나선 서초구, 속내는 '개발 이권'?

이혜인 기자 2018. 12. 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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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지어질 예정인 국립중앙의료원 가상도.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 예정인 국립중앙의료원이 지역개발 이권 다툼에 휘말렸다. 서초구 측은 지역 주민들이 질병 감염 위험 때문에 불안해한다며 의료원 내 건물 중 하나인 중앙감염병병원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 얼핏 ‘기피시설’을 꺼리는 흔한 님비현상처럼 비치기 쉽지만,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초구와 지역구 국회의원이 감염병병원을 ‘위험시설’로 몰아가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구는 지난달 27일 의료원 이전계획에 대한 주민 의견을 듣기 위해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박성중 의원과 서초구가 공동으로 주최했고 보건복지부·서울시·중앙의료원 관계자와 주민 600여명이 참석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복지부가 감염병센터를 중앙감염병병원으로 확대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초구와 소통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불안했다”며 “(앞으로) 모든 것은 주민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서초구가 감염병병원 이전건립에 드러내놓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부터다. 서초구는 당시 복지부, 서울시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병원 건립 후에) 어떤 감염병이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주민들 저항에 부딪혀 추진이 불가할 것이며, 서초구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10월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서초구 의료지원과에서 주민들을 동원해 병원 건립을 막으려고 ‘국립중앙의료원 중앙감염병병원(병동) 별도 건립 저지대책’이라는 내부 문건을 만든 사실이 드러났다. 의료원 이전 부지 중에서 감염병병원을 만들 땅은 서초구청장이 용도 변경을 해줘야만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서초구의 이런 반대 움직임을 의아해하는 반응들이 나왔다. 서초구는 중앙의료원 안에 감염병 진료·관리시설이 반드시 들어간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2009년 제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에는 중앙의료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감염병 및 비감염병 또는 재난으로 인한 환자의 진료 등의 예방과 관리’가 적혀 있다. 서초구는 2014년 이전이 확정됐을 때 ‘국립중앙의료원이 원지동에 새 둥지를 틀고 중증외상, 국가 재난, 감염병 등 국가 공공의료 중앙병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첫발을 내딛었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4년이 지난 뒤 서초구는 “지금의 이전계획은 협약 체결 내용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의료원의 ‘감염병센터’가 독립된 ‘감염병전문병원 신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 이후로 1인 음압병실을 확충해야할 필요성을 느껴서 현재 의료원 내에 있는 70개의 음압격리병실을 100개로 늘리고 감염내과 진료실 등을 추가해 별도의 건물을 짓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본원에 감염병센터가 있는 것보다 오히려 안전성이 높아지는 것이며, 이를 여러차례 서울시와 서초구에 설명했다”는 것이다.

서초구는 ‘감염 위험’을 반대 근거로 들고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주변 지역 개발이권과 관련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03년 서울시가 ‘기피시설’인 서울추모공원(화장장)을 원지동에 만들겠다고 했더니 주민들이 보상을 요구했다. 중앙의료원 이전은 그래서 결정됐다. 당시만 해도 중앙의료원은 주민들을 위한 보상이자 ‘선호시설’이었던 셈이다. 추모공원 주변 9개 마을 주민들은 또 이 일대를 1종 전용주거지역에서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종상향)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2층으로 묶여 있던 건물 층수 제한이 4층으로 높아져, 빌라나 상가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주민들 요구에 2009년 시가 종상향을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했고, 검토 결과 난개발이 우려돼 종상향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초구가 지역구인 박성중 의원은 감염병병원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종상향’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 온 나라 사람들이 서초구로 몰려들 것이고, 주민들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원이 보상 차원에서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감염병원 기능이 커지면서 주민들이 꺼리는 시설이 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화장터 때문에 땅값이 떨어져서 주민들이 자식들에게 땅을 물려주지도 못하고 있는데, 의료원이 들어오면 땅값이 더 떨어질 것이니 ‘종상향’ 해주겠다는 약속을 서울시에서 지켜야한다”고 말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중앙의료원은 2021년 완공된다.

지난 27일 공청회에 참석했던 복지부·서울시·서초구·의료원 관계자들은 모두 “주민들이 감염 우려에 대한 질문은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 서울시에서 ‘종상향’을 언제 해줄거냐는 질문을 했다”고 전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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