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탈원전 중단'을 주장한 익명의 교수님들께 / 이원영

2018. 12. 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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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수원대 교수·국토미래연구소장
며칠 전 대만 국민투표 결과에 힘입어 국내 교수 218명이 ‘익명’으로 ‘탈원전 정책 중단’을 주장하고 나섰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공동대표 이덕환) 공동대표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숨긴 채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대만 정부는 2025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한다는 조항만 없앨 따름이지 ‘수명연장이 중단된 1~3호기와 공사가 중단된 4호기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정책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실은 대만은 1999년에 규모 7.6 지진으로 수천명의 희생자를 내었고, 2016년에도 규모 6.4 지진으로 140명의 사망실종자를 내었다. 이런 지진 때문에 2011년 보수 쪽인 국민당이 먼저 탈원전을 선언한 것이다. 이번 투표는 ‘국민청원’에 가깝다.

익명의 218명은 무엇 때문에 나선 것일까? 그들을 보자니, 원전 추진을 내세우던 이명박 정부 시절 ‘실명’으로 탈원전을 주장한 1052명의 교수들과 비교가 된다.

이미 한반도는 탈원전시대로 깊이 들어가고 있다. 첫째, 시민사회뿐 아니라 종교계가 무게중심을 옮겼다. 가톨릭은 2013년 주교회의가 탈원전을 공식화하였고, 불교와 원불교도 그해 원전해체 국제세미나를 열어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개신교도 침묵하지 않았다. 종교계의 꾸준한 생명과 안전에의 염원이 2017년 대통령의 선언을 뒷받침한 것이다.

둘째, 핵폐기물, 즉 사용후 핵연료 문제다. 국제 세미나에서 만난 핵폐기물 전공 교수의 고백이 인상 깊다. “어떻게 해도 핵폐기물은 방법이 없어요. 머리가 아파요.” 원전 증설은 핵폐기물 문제와 쌍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를 따로 다루어왔던 것이 지난 정부들의 치명적 실책이었다. 그리고 이번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도 이를 간과했다.

셋째, ‘한반도 비핵화’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에 핵 재처리 요구를 몇차례 건넸지만 미국은 계속 거절했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 폐기를 하더라도 기술은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한국’의 한쪽 동네가 여전히 플루토늄 원료를 생산한다면 북한 기술과 결합한 ‘핵폭탄의 가능성’이 의심받을 것이다. 일본에 적대적인 북한까지 포함되는 통일한국이 핵보유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미국의 핵우산이 무너지고 지구촌이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남쪽의 탈원전은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가 아닐 수 없다. 지구촌에 희망을 줄 절호의 찬스다.

넷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수십년에 걸친 장기 과제이고, 지금 그 일이 착착 진행 중이다. 앞서가는 독일과 미국을 보면 에너지 전환은 일자리 창출 성과도 눈부시다. 물론 과제는 있다. 원전 전기 30%를 대체하는 일은 에너지절약 부문의 역할이 더 크다. 독일처럼 건물 리모델링을 지원하면 동네 경제도 힘이 난다. 태양광은 화석연료 감축과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서라도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 산업용 전기값도 제대로 매겨야 경제체질이 건전해진다.

다섯째, 무엇보다 위험 때문이다.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할 때 중시한 것은 바로 안전과 생명이었다. 지난해 포항과 지지난해 경주의 지진은, 원전이 밀집해 있는 한반도 동남권이 지진빈발지대라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앞일은 더욱 모른다. 더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쩌면 ‘맹목적인 신앙’에 가깝다. ‘지진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무사하리라’는 믿음, 핵폐기물 처리할 곳이 없으면서 ‘어떻게 되겠지’라는 믿음, ‘미국이 앞으로도 원전 가동에 찬성하겠지’라는 믿음, 이 모두가 ‘괴력난신’이 아닌가. 218명의 교수는 ‘괴력난신’에 빠졌다. 그들에게 과연 ‘위험을 감시’하고 ‘해체’하는 일에 나서야 할 제자들의 앞길이 눈에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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