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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피해자가 용서 안 했는데 왜 법원이.." 어금니아빠 피해자 부모 인터뷰

이지훈기자 입력 2018. 12. 03. 18:47 수정 2018. 12. 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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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오면 두 팔 벌려 안아주면서 ‘아빠 수고했어’라고 등을 두드려주던 딸을 볼 수 없다는 게 미치도록 괴롭습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37)에게 딸 민정 양(가명·14)을 잃은 김모 씨는 딸을 ‘보물’이라고 불렀다. 1일 서울 도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씨에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자 “보물이 없어졌으니까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집을 내놨는데 안 나가서 이사를 못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딸의 사진과 물건들을 정리했지만 흰 줄무늬 셔츠만은 버리지 못하고 매일 안아본다고 한다. “사고 이틀 전에 한 번 입었던 옷이어서 아이의 체취가 조금 있어서…”라며 김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 “피해자가 용서 안 했는데 법원이 용서해주나”

김 씨는 지난해 9월 민정이를 나무 사이에 묻었다. 집에서 두 시간 가량 떨어진 곳이지만 김 씨는 매주 도시락을 싸서 딸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영학의 대법원 판결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에도 민정이 어머니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가지고 다녀왔다. “민정이는 과일만 빼고 다 잘 먹었다. 특히 자장면과 김치볶음밥을 가장 좋아했다”고 김 씨는 기억했다.

민정이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아빠, 엄마와 살아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해주던 착한 딸이었다. 김 씨는 “민정이의 어릴 때 꿈은 동물사육사였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검사나 판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토록 소중했던 아이를 떠나보낸 뒤 부부의 삶은 파괴됐다. 김 씨는 “원래 주량은 소주 1병 정도인데 사고 뒤에는 2, 3병을 마셔도 잠이 안 오더라”고 말했다. 김 씨는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됐고 아내 역시 운영하던 미용실을 접었다. 김 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어도 하나 남은 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 못 간다”고 털어놨다.

민정이의 목숨을 빼앗은 이영학은 마땅히 사형을 선고받아야 한다고 김 씨는 믿었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오래된 건 알지만 죄인을 영원히 격리시키는 건 사형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1심은 사형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지난달 29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정에 있던 김 씨는 선고 직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의신청 합니다!”라고 절규했지만 법정 경위들이 그를 제지했다.

무기징역은 이영학의 목표이기도 했다. 이영학은 변호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실제로 무기징역이지만 정신 차리고 다른 세상 살 수 있다. 꿈이지만 25년, 30년(만 징역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김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면 풀어주겠다는 것 아니냐”며 “피해자가 용서를 안 했는데 왜 법원이 용서를 해주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 법원 “우발적 범행…재범우려낮아”

항소심 재판부는 이영학을 감형하면서 “피고인을 이성적이고 책임감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밝혔다. 학력이 낮고 어려서부터 난치병을 앓았으며 장애인 판정을 받은 이영학에게 온전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이영학의 범행 중 강제추행·살인·사체유기는 우발적이라고 봤다. 범행에 고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1·2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영학은 자신의 딸에게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친구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수면제를 음료수에 나눠 담는 등 피해자를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짰다.

항소심은 이영학에겐 성범죄·폭력 전과가 없고 성욕 분출 대상은 배우자에게만 국한돼 있어 교정의 여지가 있고 재범 우려가 낮다고 봤다. 원심 16회, 항소심 26회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점도 참작했다. 하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변태성욕을 가진 이영학은 아내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계부와 성관계를 갖게 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범행 전후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하거나 딸과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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