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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플라자 참사 5년.. '안전주권' 되찾으려는 방글라데시

심윤지 기자 입력 2018.12.03. 22:01 수정 2018.12.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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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3년 4월24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복합건물 ‘라나플라자’가 붕괴했다. 4층짜리 쇼핑몰이 무허가 증축된 8층짜리 건물에는 자라·망고 등 글로벌 의류업체의 생산 공장이 입주해있었다. 전날 건물 벽에 금이 가있다는 사실이 발견됐지만, 건물주와 관리인은 여공들의 등을 떠밀며 출근을 종용했다. 역대 건물 붕괴 사고 중 가장 많은 114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라나플라자의 비극은 방글라데시를 넘어 국제사회를 움직였다. 자신이 즐겨입는 저렴한 옷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인건비와 안전 비용을 절감해 얻은 대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구 소비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글로벌 기업 책임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는 원청인 글로벌 의류업체 200곳으로 하여금 현지 노조와 함께 ‘방글라데시 화재 및 건물 안전 협약’을 출범하게 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이 협약의 존폐 여부가 위태롭다.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이 지난달 30일 기한으로 다카에 있는 협약 사무소를 폐쇄하라고 결정하면서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내부 반발을 이유로 유럽 주도 협약의 안전관리 권한을 넘겨받겠다고 나섰다. 협약이 엄격한 안전 기준을 강요하면서도 이에 필요한 비용 부담은 외면하고 있다는 하청 공장주들의 반발 때문이다. 반면 국제사회는 방글라데시의 섣부른 ‘안전자립’이 노동 환경 악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협약을 보는 두 가지 시선 협약은 기업들이 조성한 기금으로 안전점검에 나섰다. 공장주들에게 방화문과 스프링클러 등 안전 설비를 갖추도록 요구했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협약에 서명한 기업들로부터 일감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성과는 극적이었다. 지난 4월 기준, 초기 조사를 시행한 의류 공장 2022곳 중 85%가 안전 문제를 개선했다. 사망자 5명, 부상자 10명 이상을 낸 대형 안전사고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협약의 활동 기한은 출범 5년째인 지난 5월이었지만, 2021년까지로 연장됐다. H&M을 비롯해 대부분 기업이 연장에 동의했다.

반면 방글라데시 공장주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협약 측이 지나치게 엄격한 안전 기준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장 6곳을 소유한 한 공장주는 현지 일간 더데일리스타에 “협약 측 요구로 스프링클러와 방화벽을 설치했고, 전기 배선과 외벽 공사도 진행했다”며 “지난 5년간 3억8000만타카(약 50억원)을 썼지만 협약은 또 추가 지시를 내놨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장주는 “글로벌 기업들은 옷값을 점점 더 내리면서, 작업장 안전 개선을 위한 비용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협정이 내세운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서명 기업과의 거래 관계가 끊길 것이라고 압박하면서, 이에 드는 비용은 하청 공장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 불만의 핵심이다.

■ 국제 사회는 우려 공장주들의 불만은 이제 정부로 향하고 있다. 현지 일간 다카트리뷴은 지난해 7월 안전 기준을 맞추지 못해 협약과의 거래 관계가 끊긴 기업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현지 공장주들 사이에서 외국 기업이 주도하는 협정이 자국 기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방글라데시 정부가 ‘안전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도 협약을 해산하고 규제 당국이 직접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토파일 아흐메드 통상장관은 지난해 베트남·중국·인도 등 경쟁국보다 방글라데시 의류업계 노동 환경이 훨씬 더 안전해졌다며 “이제 더이상 협약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반면 협약 측은 안전 자립이 시기상조라며 대법원에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협약은 다카사무소가 폐쇄되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사무소로 업무를 이관해 계속 운영한다는 방침이지만, 활동 반경에는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럽의회와 국제노동기구는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의류산업에 의존하는 방글라데시에서 정부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가장 염려한다. 가디언은 30일 사설에서 “협약 관리 대상인 1450개 기업은 여전히 안전상의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협약 폐지 결정을 우려했다. 신문은 방글라데시 독자적인 규제 역량에 회의를 드러내면서도 공장주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며 “서구 국가들이나 소비자들도 공정한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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