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 외출·외박으로 먹고 사는데.." 접경지 주민들 뿔났다

화천·양구=서승진 기자 2018. 12. 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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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지역 폐지'대신 외박구역 확대 軍 조정안에 지역 상인들 반발
지난달 24일 강원도 양구군 남면 보건지소 앞 공연장에서 열린 ‘평화이음콘서트’에서 군장병들이 걸그룹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강원도는 군장병의 문화혜택을 위해 지난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접경지역 5개 지역에서 ‘평화이음콘서트’를 열고 있다. 양구=권현구 기자
육군 2군단은 지난달 30일 화천군에서 외박구역 설정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화천군 제공
최문순 화천군수

휴전선과 인접한 접경지역 주민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군(軍)당국이 접경지역의 아킬레스건인 ‘군장병 위수지역 폐지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위수지역 논란의 시작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 적폐청산위원회는 당시 외출 및 외박구역 제한 제도 등 11건의 제도개선안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군 적폐청산위는 군 장병들의 위수지역 이동 제한이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불합리한 제도로 판단된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비상상황이 아닌 평상시에도 장병들의 이동권을 제한한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국방부는 당시 위수지역 폐지 권고안을 수용할 예정이었으나 군부대 인근 지역 상인과 지자체 등이 강하게 반발해 ‘폐지안 보완’으로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군당국이 최근 위수지역 확대로 가닥을 잡으면서 접경지역이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3일 강원도 화천과 양구·고성·인제·철원 등 접경지역 자치단체에 따르면 군당국은 지난달 30일 화천과 양구에서 외박구역 설정 주민설명회를 갖고 현재 부대별 책임 지역 중심으로 설정된 위수지역을 ‘대중교통으로 2시간 이내 복귀할 수 있는 거리’로 조정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김혁수 육군 2군단장은 설명회에서 “복귀 가능 거리를 늘리는 대신 현재 시범 운영 중인 장병 평일 외출을 내년 화천지역 3개 사단에서 전면 시행하고, 간부 영외 식사도 월 1회에서 2회로 늘리는 등 주민들과의 상생을 위해 부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위수지역이 확대되면 경기도 고양과 파주, 동두천과 연천지역을 포함하는 1군단의 현재 위수지역이 서울과 인천, 구리와 남양주까지로 늘어난다. 6군단은 경기도 포천, 연천, 동두천에 더해 파주와 의정부, 강원도 철원까지 외박 가능지역이 확대된다. 3군단은 강원도 인제와 홍천에서 강원도 춘천과 속초, 양양까지 늘어난다. 2군단은 철원과 화천에서 춘천으로, 5군단은 철원과 포천에서 춘천과 화천, 연천과 의정부까지 확대된다.

논란 이후 군 장병에게 많은 공을 들인 강원도와 접경지역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강원도는 군장병에게 문화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10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걸그룹이 출연하는 ‘평화이음콘서트’를 열고 있다. 화천군은 군 장병 바가지요금과 불친절 등의 근절을 위해 민·군·관 상생발전협의회를 만들어 문제점을 고쳐나가고 있다. 나머지 접경지역에서도 바가지를 없애고, 친절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자정결의대회를 여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위수지역 확대는 지역에 직격탄을 날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성복(53) 양구군 남면상가번영회장은 “20대 군인 대부분이 춘천으로 외박을 나가길 원한다”며 “먹거리와 서비스 질 향상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군 장병들의 요구 수준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규 인제군 평화지역발전 담당은 “위수지역이 확대되면 군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식당과 여관 등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접경지역은 군 장병의 외출·외박이 먹여 살리고 있다. 접경지역이 위수지역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강원도내 5개 접경지역 인구는 모두 15만1000명이다. 이들 5개 지역에 주둔하는 군인은 12만7000명으로 주민 수와 맞먹는다. 3개 사단이 주둔하는 화천의 경우 군인 숫자가 주민 숫자보다 더 많다. 화천군 관계자는 “주말에 외출·외박을 나오는 군인의 지출이 지역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군 장병들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한 장병은 “가격 자체가 시골스럽다”라는 한마디로 접경지역을 표현했다. 이 장병은 “PC방 이용요금이 도시에선 1000원 초반인데 이곳은 1600원”이라며 “PC방과 노래방, 먹을 것 등 모든 것이 다 비싸 부담이 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장병은 “바가지는 없어졌지만 비싼 요금은 여전하다”며 “먹을 것, 놀 것, 잠잘 곳 등이 많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화천·양구=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 최문순 화천군수 “수십년 재산권 행사 제약받은 접경지역 불이익도 감안해줘야”

최문순(사진) 화천군수(전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장)는 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군인들이 기본권을 찾는 데 대해서는 접경지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다만 접경지역 주민들이 군사시설보호로 인해 지난 65년간 제약받은 기본권도 똑같이 인정해 달라”고 말했다. 최 군수는 “국방부가 지난 3월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와의 간담회에서 약속했던 사전 주민의견 수렴 및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협의도 없는 일방적 설명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화천군에는 3개 육군 보병사단이 주둔 중이다. 주민등록상 주민들은 2만7000여명인데 군인은 3만5000여명에 이른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군인이 주민들보다 많은 지역이다 보니 군부대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최 군수는 “군인들이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60% 이상이지만 경제가치를 창출하는 여건도 그만큼 잠식하고 있다”며 “화천 전체면적의 65%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접경지역에선 지금도 고도제한과 출입제한 등에 따른 재산권 행사 불이익 탓에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문제는 그대로 놔두고 위수지역 문제만 이해해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수지역 폐지 논란의 발단이 된 친절 서비스·시설 개선 등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최 군수는 “장병들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장병들이 쉴 수 있는 공간과 시설 마련에 민간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행정에서 적극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위수지역이 확대되면 접경지역은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며 “접경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화천=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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