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아고라의 퇴장과 유튜브의 부상

이균성 총괄 에디터 2018. 12. 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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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칼럼] 광장과 편견

(지디넷코리아=이균성 총괄 에디터)#포털 사이트 다음의 여론 게시판인 아고라가 내년 1월7일부터 문을 닫는다. 2004년 12월 서비스를 개시했으니 꼭 15년만이다. 서비스 주체인 카카오는 아고라 폐쇄 이유와 관련해 “소임을 마쳤다”는 짤막한 입장을 내놓았다. 여러 이유로 사용자가 줄어든 게 폐쇄 배경인 듯하다. 다음 아고라는 그동안 사라진 여타 인터넷 서비스와 달리 ‘문제적’이었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적지 않다.

#아고라(agora)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에 형성된 광장(廣場)이다. 아고라는 처음엔 시장(市場)의 의미에 가까웠지만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시민들이 민회(民會)를 여는 공간이었으며, 도편추방(陶片追放)을 위한 집회나 재판도 이곳에서 열렸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에는 공적인 의사소통이나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다음 아고라 또한 이를 지향했다. 그리스 아고라를 21세기 한국의 가상세계에 건설하는 것. 환경은 마련됐다. 기술적으로는 국민의정부 이후 초고속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상태였다. 정치적으로는 ‘610민주항쟁’으로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1987년 체제’가 만들어지고 대선을 네 번 치른 이후다. 그 사이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도 있었다. 광장이 주어져도 좋을 만큼 언로가 트인 것.

다음 아고라 '희망해' 화면

#다음 아고라가 ‘문제적’이 된 건 그 사이 정권이 다시 교체되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막 출범하면서다. 특히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인한 ‘광우병 사태’ 이후다. MBC PD수첩의 방영을 계기로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우려가 증폭됐다. 정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100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3개월여 지속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최대 위기에 빠진 대사건이었다.

#당시 촛불집회는 새로운 시위양상을 보였다. ‘1987년 체제’ 이전 시위는 주로 대학생이나 노동자 중심으로 된 ‘조직’이 주도했다. 하지만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서 ‘조직’의 세(勢)는 약해졌다. 대신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시위의 중심이 됐다. 개인 시민이 어떻게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사이버 광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은 개별 시민들은 ‘사이버 광장’에 모였고 발언했으며 서로 공감했다. 또 같이 행동했다. 시민들이 모이는 ‘사이버 광장’은 여러 개가 있었고 그중 대표 주자가 바로 다음의 아고라였다. 지난 15년간 1천만 명 이상이 약 3천만 건 이상의 글(발언)을 작성하고 20여만 건의 청원이 제기됐으며 4천500여만 개의 서명이 진행됐다. ‘사이버 광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 탓에 포털 다음은 당시 집권당과 정부에 의해 ‘좌빨’로 낙인찍혔다. 그렇게 믿는 국민도 많았다. 심지어는 다음 직원을 좌파로 생각하기도 한다. 기술기업인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했지만 이 낙인은 박근혜 정부 때도 이어졌다. 2015년 11월. 카카오 서비스에 대한 정부 감청을 거부한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이석우 대표가 물러난 건 정부의 압력에 대한 카카오의 ‘항복선언’으로 읽혔다.

#이 코너를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지만 다음 아고라나 네이버 댓글 공간을 비롯한 ‘사이버 광장’은 그 자체로 좌(左)도 우(右)도 아니라는 점을 이참에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그 공간은 그저 광장일 뿐이다. 그 광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건 전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에 달렸다. 그 공간에서 정치적 발언은 당연히 야당보다는 집권당과 정부 실정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아고라가 좌파였던 게 아니다. 시민들은 언제나 집권당과 정부를 비판했고, 지난 15년 역사동안 초기 4년과 최근 1년을 제외한 나머지 10년은 우파가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주로 우파였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지형이 다시 한 번 크게 바뀌었다. 10년 만에 정권이 다시 교체 됐고, ‘사이버 광장’을 제공하는 IT 미디어의 판도 또한 달라졌다. 유튜브가 그 중심에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다음 아고라가 최대 눈엣가시였다면 지금 정부와 집권당에는 유튜브가 그렇다. 한때 IT 미디어를 활용한 정치적 발언은 좀 더 젊은 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아고라를 좌파로 보는 것과 같은 착시일 뿐이다. 유튜브가 입증하고 있다. 텍스트보다 동영상 올리기가 훨씬 수고롭지만 유튜브에선 좌파보다 나이든 우파 논객이 득세하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런가. 현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가깝고 죽은 권력에 대한 비판은 멀기 때문이다. 가까우면 공감이 커지고 멀면 약해진다. 그게 시민의 일반적인 감성이다. IT 미디어가 제공하는 ‘사이버 광장’은 그 점에서 당파성을 갖는 기성 언론과 다르다. ‘사이버 광장’은 무차별적인 개인 시민이 주체여서 언제나 현실 권력을 비판하는 쪽이 우세하다. 그게 시민이 ‘사이버 광장’에 몰리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제 다음 아고라에서 좌빨 딱지는 떼 주는 게 ‘사이버 광장’ 특히 과거 '대한민국 제1의 여론광장'의 운명(殞命)을 대하는 민주주의자들의 예의다. 또 유튜브에 우빨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을 지혜를 배우는 게 ‘사이버 광장’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자들이 갖춰야 할 태도다. 하나 더. 광장은 주장으로 채울 것이로되 허위사실로 도배하는 일은 철저히 배격하는 것이 공중(公衆)의 일이다.

이균성 총괄 에디터(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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