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먼나라 이웃나라 37년 이원복 "인도·아프리카도 가야죠"

민경원 2018. 12. 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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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개정판, 총 1500만 부 팔려
브렉시트·트럼프 무역갈등 넣어
"세상변화 못 담으면 이미 죽은 책"
대학총장 물러난 뒤 만화에 매진
터키편 추가한 '시즌2'도 스타트
"세계지도 펴보면 못간 곳 많아요"
만화가 이원복과 『먼나라 이웃나라』 1권 표지에 등장하는 네덜란드 일러스트를 겹쳐서 찍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먼나라 이웃나라’. 1981년 소년한국일보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교양만화는 지난 37년간 한국인과 함께 커왔다. 외국문화·역사를 보는 우리의 눈을 키워왔다. 83년 시행된 해외여행 자유화도 만화의 인기를 높였다. 지난해 한국인 해외여행객은 2650만 명을 넘어섰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보는 독특한 만화책, 덕분에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하는 동안 쌓인 누적 판매량만 1500만 부에 달한다.

시간의 무게만큼 작가 이원복(72)의 책임감도 무거워졌다. 87년 단행본 첫 출간 이후 『새 먼나라 이웃나라』(1998),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2003), 『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2012) 등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온 이유다. 지난달 말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출간 후 서울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가 쌓여 역사가 되는데 이를 반영하지 못하면 이미 죽은 책이 돼버리고 만다”고 말했다.

그가 다섯 번째 개정판을 내게 된 가장 큰 계기는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 영국은 투표 결과에 따라 유럽연합(EU)을 탈퇴하고,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는 미·중 무역 갈등을 야기하는 등 세계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2012년 개정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얼마나 바꾸느냐보다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담는 게 중요해요. 단행본은 분량이 제한돼 있으니 무엇을 새로 넣느냐 만큼 무엇을 빼느냐도 중요한 문제죠. 영국 편을 예로 들면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비중이 상당히 컸는데 이번에 많이 줄였어요. 아일랜드 독립 문제나 영국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지만 IRA가 2005년에 무장투쟁을 포기한 상황에서 브렉시트만큼 중요도를 갖진 못하는 거죠.”

변사 격에 해당하는 주인공 캐릭터. [중앙포토]
한국 상황도 주요한 변수 중 하나다. 굵직굵직한 세계사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독자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유의미한 컨텍스트가 형성될 수 없는 탓이다. “제가 75년에 독일 유학 갈 땐 여권을 발급받는 것부터 엄청 어려운 일이었어요. 잡지 ‘새소년’에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1975~81)을 연재했는데 비행기 타는 장면부터 나와요. 신기하니까요. 김포공항 가면 한 사람 환송한다고 20명씩 나올 땐데 지금이랑은 안 맞는 거죠.” 최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인디언’이란 표현을 전부 ‘원주민’으로 바꾸기도 했다.

만화가로서 이력도 독특하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재학 도중 독일 뮌스터대 디자인학부로 유학을 떠났다. ‘금수저’일 것이라는 오해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계형 유학’이라 답했다. 돈 없고 백 없는 집안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다는 것. “66년에 첫째 형이 부산항에서 배 타고 한 달 걸려 독일까지 갔어요. 돈 벌어서 비행기 티켓 보내준 덕분에 셋째 형, 넷째 형도 독일로 유학 간 거죠. 왜 독일이냐고요? 학비가 없잖아요.”

그는 62년 경기고 재학 시절 처음 받은 원고료 3000원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미국만화 ‘아이반호’를 습자지 대고 베껴 그려 받은 돈으로 1000원은 형 주고, 남은 돈으로 영한사전 한 권 사고, 대한극장에서 영화 ‘벤허’를 봤다. 그때 산 영한사전이 지금의 밑천이 됐느냐는 질문엔 “거들떠도 안봤다. 원고료로 똥차 사서 유럽 전역을 헤집고 다니며 10년간 머물다 온 유학(留學)이 아닌 잘 놀다 온 유학(遊學) 덕”이라고 답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호기심은 멈출 줄 몰랐다. 유럽 6개국(네덜란드·프랑스·독일·영국·스위스·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일본(2권)·한국·미국(3권)·중국(2권)을 거쳐 스페인 편까지 15권을 쓴 것도 모자라 지난 5월엔 시즌 2를 시작했다. 『가로세로 세계사』에서 다룬 발칸반도·동남아시아·중동 편에 더해 캐나다·호주·뉴질랜드를 1권에 집어넣었다. 이어 오스만제국과 터키 편까지 20권을 채웠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다음을 이야기했다.

“지난주에도 취재 여행차 러시아에 다녀왔어요. 러시아 편이 나오면 한국부터 중국·러시아를 거쳐 터키·유럽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든요. 터키 편은 학교 일과 병행하느라 5년 정도 걸렸지만, 러시아 편은 내년이면 나올 것 같아요.” 84년 덕성여대 교수 부임 이후 첫 석좌교수를 거쳐 2015년 총장에 취임한 그는 지난 6월 교육부 대학 진단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만화가로서 시계는 더 바삐 움직이는 듯했다.

그는 세계지도를 펼쳐 보면 “여전히 빈 구멍이 많이 보인다. 그 구멍을 채워나가며 배워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220개국을 다 다룰 순 없겠죠. 터키에 끌린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OECD 국가 중 갈등 비용이 제일 높은 나라란 사실도 한몫했어요. 그 다음이 한국이거든요. 터키는 지정학상 지역·인종·종교 갈등이 필연적이지만,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면서 후천적으로 생겨난 거죠.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은 권력을 계속 쪼개고, 동유럽은 반대로 권력집중의 역사를 써왔으니 터키나 러시아는 에르도안이나 푸틴 대통령 같은 독재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한국은 참 신기하죠. 그렇게 몰랐던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어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건강만 허락된다면 인도·아프리카까지는 하고 싶어요. 남미도 욕심은 나지만…. 마지막은 ‘새로운 조국을 연 지도자들’로 생각 중입니다. 한번 보실래요?” 거기에는 이미 아이티를 중남미 최초의 흑인 독립국으로 이끈 투생 루베르튀르부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김구까지 빼곡한 목차가 적혀 있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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