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예산 깎더니..시한폭탄 된 노후 '지하SOC'

이지용,임성현,전범주 2018. 12. 5. 17: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국 열수송·상하수도 배관
30%가 20년 넘어 사고 우려
백석역도 낡은 파이프가 원인
30년된 1기신도시 '발밑 안전' 빨간불
SOC정비 급한데..지자체 복지 올인
낡은 상하수도가 땅꺼짐 불러
백석동도 2005년부터 사고조짐
정부는 지자체에 책임 떠넘겨
뒷전으로 밀린 안전..시민위협

◆ '시한폭탄'된 노후 지하SOC ◆

지난해 초 새해 벽두 부산 화명동 시민들은 난데없이 한겨울 '물폭탄'을 맞았다. 이 동네 왕복 6차로 도로 옆에 매설된 상수도관이 파열되면서 도로 곳곳이 물바다·빙판길로 변했고 5000여 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뚝' 끊어졌다. 인근 금곡동에서도 대형 상수관이 파열돼 7000여 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다. 각각 1987년, 1995년에 매설됐던 노후 상수관이다.

이 사고는 그나마 '급수 대란'에 그쳤지만 이번엔 사망자까지 나온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일산 백석동에서 지역난방공사가 관리하는 27년 된 노후 온수·온열 배관이 터져 1명이 사망하고 화상 환자가 속출했다. 인근 수천 가구 아파트 단지는 '한파주의보'에 온수·난방이 끊기는 등 한밤중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열수송 배관은 지역난방공사가 관리하는 도시의 온수·난방 등 열공급 파이프라인이다. 열을 공급한다는 수단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도시민들의 음용수와 하수처리를 담당하는 상하수도와 같은 도시의 '혈관'이다. 이런 혈관 역할을 하는 사회간접자본(SOC)이 썩고 낡아가는데 정부가 투자를 되레 줄이면서 곳곳에서 대란을 일으키는 셈이다.

5일 매일경제가 전국의 열수송관, 상하수도관 등 파이프라인의 노후도를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이번 사고 파이프와 같이 사용 20년을 훌쩍 넘은 열수송관, 상하수도관 등 인프라스트럭처 비율이 전체 30%를 훌쩍 넘었다. 전국의 2164㎞(2열 기준)에 이르는 열수송관 중 이번에 사고가 난 백석동 열수송관처럼 20년을 경과한 라인은 686㎞로 32%에 이른다. 음용수 등을 수송하는 상수관로는 전체 20만3859㎞ 중 30.9%(6만3190㎞)가 20년을 넘었고 12.8%는 아예 사용 연한을 경과해 누수사고 등 각종 사고 발생 위험도가 상존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수도는 더 심각하다. 총 14만3168㎞의 하수관로 중 21년 이상으로 노후화해 보수가 요구되는 시설은 5만3079㎞로 전체의 37.1%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파열사고가 발생한 고양시 지역난방공사의 열수송 배관은 사용 연한이 재질·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30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영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일산신도시 일대는 옛날 '뻘' 지역에 만들어진 신도시이며 사고 지점인 백석동 일대는 싱크홀 사고 등이 빈번한 연약 지반 지역"이라며 "열배관은 고온·고압을 받으면서 파이프가 수축했다 늘어났다 하는데 지반이 약하면 용접 부위가 뒤틀리면서 파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호 대한토목학회 부회장(상지대 교수)은 "열수송관이나 상수도관 같은 압력관은 그 자체 하중이 무거운 데다 안에 고압의 내용물이 흐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지나면 관 자체 결함이나 지반 침하의 위험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며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일산과 분당 등 1기 신도시에서는 이런 위험이 계속 상존하기 때문에 설사 사용연한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 구간씩 나눠서 노후 배관을 교체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1000만 인구 밀집지이자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은 인프라 투자를 하는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시가 보고한 자료를 보면 서울시 상하수도 시설의 하수관로 1만682.2㎞ 중 절반가량인 5382.1㎞(50.4%)가 건설된 지 30년이 넘었다.

노후 상하수도 시설은 이번처럼 배관 파열 사고뿐 아니라 싱크홀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누수로 인해 토사 유실을 일으켜 도로 함몰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백석동 일대는 누수·침수가 잦고 지난해 두 차례 싱크홀이 발생한 바 있다.

포항 대지진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문제는 이런 눈에 안 보이는 필수 SOC를 관리하기 위한 '투자'에 국가가 인색하다는 점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국가 전반적으로 SOC를 일방적으로 '토목예산'으로 취급하며 예산 감축 기조로 돌아섰다. 지자체들 역시 투자 재원을 '표'에 도움이 되는 도서관·체육관·박물관·휴식시설 등 복지성 또는 눈에 보이는 곳에 투자하고 있다.

열병합발전소에서 나오는 열수송관의 관리 유지 책임은 한국난방공사에 있다. 노후관 수리나 교체 비용도 정부 예산이 아닌 한국난방공사 수익금에서 지출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노후 파이프라인 점검이 정기적이고 꾸준히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정 연한이 지난다고 무조건 노후관을 교체하는 것은 아니고 검사를 통해 노후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교체 작업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기 신도시 개발 등 대규모 관망 공사가 종합적으로 진행된 지 30년이 넘은 시점에서 이 정도의 예산도 부족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열수송관과 유사 기능인 상하수도관만 하더라도 아파트에서 장기적인 시설 유지 관리를 위해 관리비를 통해 적립하는 '장기수선 충당금' 같은 유지비용이 거의 전무하다.

이영환 연구본부장은 "SOC를 짓고 나면 소유·관리 책임이 지자체로 가는데 지자체장들은 선거에서 '표'가 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SOC와 복지예산 늘리기에 '올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최근 30년 이상 노후화한 하수관로 중 308㎞의 긴급 보수 구간을 지정했는데 2020년까지 들어갈 예산이 4596억원에 이른다.

이날 뒤늦게 국회 법사위는 노후 인프라를 지속 관리·정비할 재원을 충당금 형태로 적립해 관리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관리 기본법(안)'을 통과시켰다. 내일 본회의에 최종 통과되면 적어도 예산을 마련할 근거법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은 가용 예산을 실제 적립하고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 어느 구간을 보수·교체해야 하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는 실태조사와 상시 검사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석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기술정책실장은 "예산은 항상 모자란 것이기 때문에 전국 단위로 노후 인프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상시적인 검사작업을 통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사업 예산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지용 기자 / 임성현 기자 / 전범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