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0도 물기둥 "지옥불 보는 듯"..주민들 "싱크홀 여러번 신고"

전현진·이주영 기자 2018. 12. 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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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백석역 온수관 파손…사망자 블랙박스·부상자 증언들

파열 온수관 복구 5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근처에서 전날 밤 발생한 온수관 파열 사고 현장에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욱한 수증기가 치솟고 뜨거운 물이 솟구쳐 물바다가 됐다” 27년 된 850㎜ 열 수송관 터지며 도로 갈라져 ‘열탕’ 방불 2800여가구 난방 중단…경찰, 지역난방공사 압수수색 검토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4일 오후 8시40분쯤 경기 고양시 지하철 3호선 백석역 인근 거리 위로 갑자기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딸, 예비사위와 함께 백석역 근처에서 식사를 한 뒤 차를 몰고 귀가하던 송모씨(69)가 희뿌연 증기를 보고 잠시 멈춰 섰다. 그 순간 갑자기 땅속에서 100도에 달하는 고온·고압의 물기둥이 뿜어져 나와 송씨의 차량을 덮쳤다. 송씨 차량의 블랙박스에 담긴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송씨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블랙박스 녹화는 뚝 끊겼다.

송씨는 사고 발생 2시간 만에 전신에 화상을 입고 뒷좌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배관이 터진 지점 근처에서 피해자 차량이 발견된 점, 앞 유리가 깨진 점 등으로 추정할 때 순간적으로 치솟은 뜨거운 물이 한꺼번에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화상을 입고 고립된 피해자가 탈출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목격자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자욱한 수증기가 지옥불 같았다”고 표현했다. 시민들은 도로를 가득 채운 물 때문에 발에 화상을 입고 비명을 질렀다. 물 위를 달리던 오토바이 배달부는 “뜨거워. 살려줘”라며 소리 질렀다. 사망한 송씨 외에도 이모씨(48) 등 손과 다리에 중화상을 입은 시민을 포함해 25명이 다쳤다. 사고 수습에 나선 소방관들도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사고는 한국난방공사 고양지사가 관리하는 27년 된 낡은 850㎜ 열 수송관이 파열되면서 발생했다. 사고 현장은 파열 당시 충격으로 땅이 흔들려 금이 가고 도로 곳곳이 움푹 파헤쳐져 있었다. 이 부근은 지역 주민이 ‘싱크홀’이 계속해서 생기는 곳이라고 지적해오던 곳이다. 뜨거운 물이 지나는 열 수송관이 갑작스럽게 떨어진 기온과 노후화 때문에 파열,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자정 백석2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보고회에서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100도 가까운 온도이고 직접 닿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통상적으로 수송관이 파열되면 (파열 전에) 징후가 나타나는데 이번 사건은 어떤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내구연한이 통상 50년인데 1991년 매설된 사고 수송관이 지반 침하로 주저앉는 상황도 있고 노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철저히 조사하고 노후된 곳은 교체하겠다”고 했다. 황 사장은 관련 내용을 전하면서 웃는 표정을 지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고 직후부터 백석동 흰돌마을과 호수마을, 강선마을 등 인근 지역 2800여가구에 난방이 중단됐다. 파열된 수송관은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가 관리해왔다. 고양지사는 일산서구와 일산동구 등 경의선 남쪽 지역과 북쪽 일부, 덕양구 일부 지역 등 총 19만가구에 난방열을 공급하고 있다. 마침 이날 올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난방은 5일 오전 9시가 돼서야 다시 들어왔다.

경찰은 열 수송관 파열 사고 원인 파악에 나섰다.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관련 업체 등에 대한 조사와 압수수색영장 신청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현장에 과학수사 요원 등을 투입해 파손된 배관의 상태 등을 조사했고, 지역난방공사 직원 및 하청을 받아 배관을 관리하는 업체 담당자 등을 상대로 사고 원인 파악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피의자 입건 단계는 아니며, 관계자 조사 이후 필요한 자료를 압수수색 형태로 확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과실이 인정될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난방공사는 피해 상황을 파악한 뒤 피해자 보상 협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지역난방공사 관계자는 “아직 파손 현장 복구에 집중하느라 협의를 시작하진 못했지만 최대한 전폭적으로 보상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역난방공사는 치료 중인 사람들의 병원비, 간병인 선임비 등은 미리 지급하고 있다.

고양시도 보상 관련 협의체 구성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재준 고양시장은 사고대책회의에서 “인명 피해에 대한 합당하고 빠른 피해보상이 이뤄지도록 원인자인 지역난방공사와 피해자 간 보상 관련 협의체 구성을 중재하겠다”며 “사망자 장례절차 진행 및 피해자 치료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역난방공사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전현진·이주영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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