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놈이 들어오면 작은 놈들은 강해진다는데..노려라 '넷플릭스 메기 효과' [콘텐츠 태풍 넷플릭스]

김경학·고희진·이유진 기자 2018. 12.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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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④스스로 변할까

그래픽 | 현재호 기자 hyun@kyunghyang.com

|미디어 생태계 ‘생존 전쟁’ ‘거대 천적’ 넷플릭스 등장으로 각자도생 걷던 콘텐츠 업체들 위기 벗어날 잠재력 찾기 나서 |메기의 성장 막는 ‘문화 할인’ 영어 기반 콘텐츠라는 점과 유료에 인색한 소비 분위기 넷플릭스 성장에 걸림돌 예상 |공정 경쟁을 위한 전제 조건 방송법 적용 안 받는 넷플릭스 통신망도 저렴해 역차별 논란 적정 세금·공적 책무 부과 등 종합적으로 법규 재정비해야

과거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정어리를 산 채로 운반하는 노르웨이 어부가 한 명 있었다. 주변 어부들은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함구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법이 알려졌는데, 비법은 메기였다. 정어리가 가득 담긴 수조에 천적인 메기를 넣으면 정어리들이 생존을 위해 꾸준히 움직여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죽지 않았다.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 일명 ‘메기 효과’다.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위와 같은 북유럽설도 있지만 중국 등 동양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양 버전에선 정어리 대신 미꾸라지가 등장한다. 현재 넷플릭스는 콘텐츠 또는 미디어 업계의 ‘메기’로 불린다.

넷플릭스 콘텐츠 분야를 총괄하는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 테드 사란도스는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아시아 시장 전략에서 한국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며 “ 계속 한국 스타·제작진과 같이 성장하고 일하기를 기대하며 투자를 더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아시아, 나아가서는 전 세계 구독자(회원) 확대를 위한 ‘콘텐츠 생산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투자에 매우 공격적이다.

2016년 콘텐츠 제작에 투입한 금액은 49억7000만달러(5조5411억원)로, 올해는 이 규모가 약 80억달러(8조9192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지상파 3사 제작비 총합(2016년 기준)의 10배 가까이 된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부당한 처우와 불합리한 관행에 시달렸던 국내 콘텐츠 제작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메기 효과는 ‘강자의 논리’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거대한 천적의 등장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존 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방송협회는 넷플릭스와 LG유플러스의 제휴를 가리켜 “미디어산업 생태계 파괴의 시발점”이라며 정부 당국에 국내 미디어산업 보호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아직 뚜렷한 대응은 없어

한국방송협회는 지난달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가 제휴를 통해 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하자 LG유플러스에 넷플릭스 제휴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넷플릭스에 납품하는 소수 제작사만 살아남고, 그마저도 대부분의 수익은 넷플릭스가 가져가 “재주는 국내 콘텐츠 제작사가 부리고 돈은 해외 거대사업자인 넷플릭스가 버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긴장하는 것은 ‘유튜브 학습효과’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유튜브 도입 초기 방송계에서는 1인 크리에이터 등이 제작자의 다수를 이루고 짧은 분량의 질 낮은 콘텐츠라는 이유로 유튜브는 방송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현재는 위상이 뒤바뀌었다. 지상파 방송에서 유튜브 인기 크리에이터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유튜브 방송을 차용한 형태의 모방 프로그램도 다수다.

그러나 한국방송협회의 성명과 달리 실상 업계 대응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KBS의 ‘국내형 넷플릭스’, SBS의 콘텐츠 제작사 연합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업체) ‘그랜드 플랫폼’(가칭) 등 일부 언급은 있어도 여전히 각개전투에 불과하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위기의식이 없지는 않지만, 소수고 아직은 사분오열된 상태”라며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려면 지상파 인력들과 통신사업자의 자본 플랫폼이 결합해 한류를 토대로 중남미나 동남아까지 진출해야 답이 나온다. 그런데 사업자 간 이견으로 아직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OTT 업계도 마찬가지다. ‘티빙’을 운영하는 CJ ENM 측은 “넷플릭스와 경쟁할 위치는 아닌 것 같다”며 “지금처럼 라이선스 계약을 하면서 상생할 여지도 있어 당장은 어떻게 대응을 한다기보다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OTT 사업자는 티빙 외 지상파 3사와 EBS가 투자해 만든 ‘pooq’,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 KT의 ‘올레TV 모바일’, LG유플러스의 ‘LTE 비디오 포털’, 네이버의 ‘네이버캐스트’, 카카오의 ‘카카오TV’, 아프리카의 ‘아프리카TV’, 프로그램스의 ‘왓챠플레이’, HCN의 ‘에브리온TV’ 등이 있다.

방송계뿐 아니라 영화계도 아직은 큰 대응의 움직임이 없다. 영화계 관계자는 “넷플릭스 같은 후발 플랫폼이 영화나 미디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각자의 생각만 많고, 공식적인 논의나 대응은 없다”며 “넷플릭스가 모든 콘텐츠를 다 빨아들일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봉준호 감독이 <옥자>를 넷플릭스에서 만들었지만 차기작을 또 넷플릭스랑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넷플릭스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할인과 낮은 유료방송 소비

국내 업계가 다소 관망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는 ‘과연 넷플릭스가 얼마나 국내 시청자들에게 먹힐까’라는 의구심도 한몫한다. 업계에서는 동일한 문화상품이 다른 문화권에서 소비될 때 자국 시장보다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일명 ‘문화할인’이 존재할 것이라고 본다.

넷플릭스에 있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영어를 기반으로 한다. 영어권이 아닌 지역 시청자들은 자막을 통해 보게 되는데, 비영어권 시청자들은 잠시라도 눈을 콘텐츠에서 딴 곳에 두기 부담스럽다. 통계상으로도 미국·캐나다·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 비해 비영어권 국가에서 넷플릭스의 시장점유율 확장세가 상대적으로 더디다.

한국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성향상 ‘유료방송 가입자 1인당 평균 결제 규모’, 일명 아르푸(Average Revenue Per User·ARPU)가 낮다는 점도 넷플릭스 확대의 걸림돌로 거론된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콘텐츠 대다수는 tvN·JTBC 등 국내 방송사가 방송하고 있거나 이미 방송한 콘텐츠다. 대부분 기존 국내 콘텐츠 환경에서 접하기 힘든 해외 콘텐츠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이용한다. 넷플릭스를 기존 방송 대체재가 아닌 추가적인 선택 사항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다수의 한국 시청자들은 극장을 찾아가서 보는 영화가 아닌 TV·컴퓨터·휴대전화 등으로 소비하는 동영상의 경우 굳이 돈을 추가로 지출하면서 볼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실 LG유플러스 제휴는 IPTV 업체 중 처음인 것이지, 실제로 딜라이브 등에서 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일부 영향이 있긴 하지만 넷플릭스로 가입자가 크게 늘고 주목하는 정도는 아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은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단기간 내에 시장에 피드백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콘텐츠 분야를 총괄하는 테드 사란도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

■ OTT는 미디어계 미꾸라지

업계의 대응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당국의 규제나 조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탓도 있다.

법규상으로 보면, 넷플릭스와 같은 OTT 업체는 까다로운 규제가 많은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등의 적용을 받는 방송사업자가 아니다.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된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등을 적용하려면 ‘실시간 방송’ 등이 있어야 하는데, OTT 업체들은 실시간이 아닌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사와 달리 넷플릭스는 규제에서 자유로워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통신망 이용료와 관련해 역차별 논란이 크다.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와 제휴하는 과정에서 국내 콘텐츠 제공업체(CP)보다 유리하게 수익을 배분받고 통신망을 헐값에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한국방송협회는 LG유플러스에 넷플릭스 제휴 철회를 요구했다. 이 같은 통신망 이용료 역차별 논란은 넷플릭스만 아니라 구글·페이스북 등 해외 기업과도 연계돼 있다.

방통위는 통신망 이용료 논란과 관련해 올해 안에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지만 지지부진하다. 이제 해외 사례 조사를 마치고 검토를 시작한 단계다. 방통위 관계자는 “넷플릭스나 OTT사업자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있는 건 인지하고 있다. 이제 실무진 선에서 규제하는 게 옳은가 아닌가부터 논의하는 단계”라며 “만약에 규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논의해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시방편식 대처보다 종합적인 법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넷플릭스의 사업적 지위를 무엇으로 할 건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해 적절한 세금을 과세하도록 하는 구조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며 “단편적이고 지엽적 개정보다 이참에 정보방송통신 콘텐츠 관련 법을 다 모아놓고 통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넷플릭스에 세금 부과해야”

전문가들은 아직은 넷플릭스 초기 단계라 전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도 미디어·콘텐츠 업계 전반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국내 업체들이 스스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넷플릭스 등장이 순기능을 하고 있다”며 “사업자들은 정부의 손을 빌려 대응할 생각을 하지 말고 스스로 혁신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자본력에서 차이가 난다면 이번 기회에 합종연횡하고 인수·합병이나 제휴를 해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동안 혁신의 동인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규제 움직임과 관련해 “정부가 규제할 수도 없고 규제해서도 안된다. 규제 논의보다 국내 업계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정부 기관은 독려해야 한다. 정부는 사업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게 아니라 이용자 관점에서 어떤 편익이 있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국내 콘텐츠 업계가 지닌 문제점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곽 교수는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 가장 아픈 지점을 건드렸다”며 “국내 업계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던 분야가 제작 분야다. 넷플릭스는 국내 업체들이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막대한 제작비를 주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힘들더라도 제작 주체인 독립제작사나 작가·배우·연출진에게 처우나 이익 공유를 진정성 있게 하도록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 업계 혁신과 별도로 국내에서 이윤을 내는 사업자로 방송사처럼 공적 책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영주 EBS 정책연구위원은 한국방송협회 계간지 ‘방송문화’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해외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플랫폼 사업자를 대처하고 자국의 산업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실용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며 “아직 BBC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밝히지 않았지만, BBC처럼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해 그 비용을 국내 방송 보조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시리즈 끝>

■ 시리즈 목차

기반 맞춤 서비스 누가 왜 볼까 (1)

레이어(생산자)들 선호 이유 (2)

(leak·유출) 둘러싼 전쟁 (3)

스로 변할까?(4)』

김경학·고희진·이유진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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