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탄압' 방법도 업그레이드..기업들 새 무기 된 교섭창구 단일화

남지원 기자 2018. 12. 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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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창구단일화 제도를 악용하는 사업주를 제재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지부 제공

2010년 12월, 월 8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하루 10시간씩 일하던 홍익대 청소·경비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자 학교는 한 달 만에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노조가 두 달 가까이 본관을 점거해 농성을 하고 여론이 악화되자 학교와 용역업체는 49일만에 이들을 복직시켰다.

서울시내 대학의 청소노동자 노조결성 바람을 일으킨 이 싸움 이후 8년이 흐른 지금, 이제 기업들은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어졌다. 회사에 우호적인 노조에 힘을 실어줘 규모를 키운 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활용하면 불편한 노조와는 교섭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용자들이 민주노조의 교섭권을 빼앗는 수단으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회사에 교섭을 요구한 노조들이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를 정하지 않으면 조합원이 가장 많은 과반수노조가 교섭권을 갖는 제도다.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될 때 함께 도입됐다.

교섭권이 없는 노조는 회사에 요구사항을 전달할 법적인 틀을 잃는 것은 물론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하기도 어렵다. 반면 사용자는 소수 노조와 교섭하고 싶으면 ‘개별교섭’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사측에 친화적인 노조가 다수노조이면 창구단일화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개별교섭을 택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노조의 힘을 빼는 ‘꽃놀이패’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광운대 청소노동자 노조인 서울지부 광운대분회는 이달부터 회사와 교섭을 할 수 없게 됐다. 이 노조는 2013년 11월 청소노동자 83명 중 58명이 가입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두 달 만인 2014년 1월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새로 생겨 세를 불려나가기 시작했고 올해 조합원 수가 역전됐다. 올 초 입찰 당시 노동조합과 ‘모든 노조와 개별교섭을 한다’는 합의서를 썼던 용역업체는 새 노조가 다수노조가 된 뒤 교섭창구를 단일화했다. 한국노총 측은 이에 대해 “원청에서 지급한 퇴직금을 횡령해 용역 자격을 박탈당한 이전 업체에게 한국노총이 퇴직금을 받아내면서 많은 조합원들이 소속을 변경하게 된 것”이라며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회사와 친화적이라 조합원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스코에서도 교섭 대표노조 지위를 놓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새로 생겨 3500명이 가입했는데,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노조가 한국노총에 가입한 뒤 갑자기 조합원 확대에 나서면서 6500여명으로 커졌다. 현재로선 한국노총 측이 교섭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 노조 쪽에선 “회사가 한국노총 가입을 종용하며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면서 대구지방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낸 상태다. 한국노총 노조는 “포스코 조합원들의 성향상 민주노총과는 맞지 않는 조합원들이 다수 있어 예전 기업별 노조일 때처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가입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업노조와 한국노총, 민주노총 3개 노조가 있는 파리바게뜨에서도 지난 8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기업노조와 한국노총이 연합해 교섭대표노조가 됐다. 그후 민주노총 쪽에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다가 기각되는 등 갈등이 빚어졌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창구단일화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의 한대정 지회장은 “회사가 대항노조를 조직적으로 지원해 민주노조가 대표교섭권을 갖지 못하게 막고 있다”며 “소수노조도 일정부분 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법적으로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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