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70만명 죽는데..항생제 발굴 연구 133건 출구가 없다

김진호 기자 2018. 12. 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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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 막막..국제 공동 연구서 활로 찾아야
슈퍼박테리아 위험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비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여러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다제내성균(슈퍼박테리아)에 죽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매해 70만 명에 이른다. 2050년에는 이보다 약 14배 이상 증가해 1000만 명이 사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간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균은 피부나 코, 호흡기에 분포하는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과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VRSA), 카바페넴 내성균(CRE) 등 총 9종이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많은 슈퍼박테리아 연구는 이들 균에 대항할 수 있는 물질을 찾는 데 집중돼 있다.

하지만 정작 새로운 후보물질을 찾아도 약물 개발로 이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국제 협력 연구를 위한 기구를 만들어 자금을 모으고, 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해 슈퍼박테리아에 대비하자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한국도 더 적극적으로 국제 협력 연구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항생 물질 찾아도 그다음이 없다”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진행이 완료됐거나 아직 진행 중인 항생제 관련 연구과제는 총 197건이다. 여러 세균의 생체 내 활동 과정을 밝히거나, 이를 막을 수 있는 항생제 후보 물질을 찾는 연구가 133건으로 가장 많았다.

슈퍼박테리아의 진단과 새 항생물질이 성능 검증(30건), 인간과 동물의 활동으로 인한 확산 감시(22건), 내성균의 환경 침투(7건), 세균 간 상호작용(3건), 감염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법(2건) 등의 연구가 포함된다.

김경규 성균관대 항균내성치료제연구소장은 “사람 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항암물질 연구보다 미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물질 연구가 비교적 다루기 쉽다”며 “미생물 쪽에 종사하는 많은 연구자가 항생 물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항생제로 개발될 수 있는 후보물질을 많이 확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발굴한 후보 물질은 적극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김경규 성균관대 항균내성치료제연구소장이 국내 항생물질 개발 현황과 약물 개발 가능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진호 기자 twok@donga.com

김 소장은 "과제당 수 억 원 수준의 정부연구비로는 그 이상을 하기 힘들다”며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다 보니 국내 제약사들이 항생제 개발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물질을 많이 찾고 있지만, 국내에선 후보물질 발굴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통계에 따르면 항생 물질을 발굴하고도 실제 허가와 판매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린다. 평균 개발비도 약 8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동아ST나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등 일부 제약사가 항생물질을 개발하고 있지만,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대형 제약사의 연구개발비가 1000억 원 안팎인 상황에서 실패할 경우 감수해야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으로 국제 협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동은 연세대 진단검사의학교실 교수는 “항생물질을 발견해도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해외의 개발 체제나 자원에 국가 자격으로 뛰어들어 보다 활발히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슈퍼박테리아는 전지구적 문제, 국제 협력 진행 中

세균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공존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질을 획득해 진화한다. 따라서 진화하는 세균을 망가뜨리거나 약하게 만들 새로운 신호체계를 찾고, 이를 정확히 따라가 공격하는 물질을 찾는 것은 기본이다. 또 사회에 얼마나 많은 내성균이 퍼져있는지, 얼마나 빠르게 생성되는지 폭넓은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세균은 모든 곳에 퍼져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질을 획득하고 있다. 이에 전 지구 생명체의 건강을 위한 ′원헬스′ 개념이 등장해 슈퍼박테리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이혁민 고려대 교수

국제기구들은 슈퍼박테리아 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뿌리를 두고 지난 2014년 3월 만들어진 ‘조인트 프로그램 이니셔티브 안티마이크로비알 레지스턴스(JPIAMR)’는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 27개국 연구진이 정보를 공유해효율적인 연구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도 지난 2월 한국연구재단과 성균관대 항균내성치료제연구소가 주도해 JPIAMR에 가입했다. JPIAMR 한국 대표를 맡고 있는 김 소장은 “항생제 연구를 수행하는 각 나라 연구자가 정보를 공유해 중복연구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 최소한의 재정으로 성과를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독일 머크와 프랑스 로슈 등 글로벌 제약사와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이 2008년 만든 ‘이노베티브 메디슨 이니셔티브(IMI)도 슈퍼박테리아 연구에 약 6090억을,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 주도로 생긴 ’글로벌 항생제 R&D 비영리 국제단체(GARDP)‘는 약 3400억을 모금해 항생제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김 소장은 “JPIAMR 가입했지만 아직 국내 연구 성과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제기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거시적인 연구를 진행하려면 합당한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JPIAMR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국내 연구진은 아직까지 없다. 김 소장은 향후 국제 기금을 지원받기 위해 국내 항생물질 연구 성과를 집계하는 중이며, 이를 JPIAMR측에 소개할 계획이다.

공공의 성격을 띠는 항생제 개발을 위해 공공-민간 협의체를 구성해 연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한편에선 공공과 민간 협의체를 조성해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혁 한국화학연구원 의약바이오연구본부장은 “국제기구처럼 거금은 아니더라도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며 “학계에서 찾은 약물 후보 물질이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명확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원빈 동아ST 의약화학실장은 “수 백만 명 이상이 슈퍼박테리아로 죽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공공의 성격을 띠는 항생제 연구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호 기자 tw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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