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중 '휴전'한 날..화웨이 회장 딸, 미 요청으로 체포

입력 2018.12.06. 21:06 수정 2018.12.0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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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연행
외신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
화웨이 '연매출 100조' IT기업
중 기술강국 부상 견제 해석도

중 "강력 항의..즉각 석방" 요구
휴전 합의 무색 '뒤통수' 때린 꼴
"미, 글러브 완전히 벗어던졌다"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46)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 당국에 체포됐다. 사진은 멍완저우가 대학 강연을 하는 모습. 신랑(시나) 블로그 갈무리

세계 최대 통신장비 기업인 중국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그룹 후계자로 꼽혀온 멍완저우(46)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 당국에 체포됐다. 1일 미-중 정상회담의 ‘무역전쟁 90일 휴전 합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대형 악재’가 돌출한 것이다.

6일 캐나다 언론 보도와 화웨이의 설명을 종합하면, 멍완저우는 1일 밴쿠버에서 항공편을 갈아타는 과정에서 체포됐다. 캐나다 법무부는 “미국이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있으며, 7일 보석 심리가 열린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그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은 소식통을 인용해 멍완저우가 미국의 이란 제재를 어긴 혐의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2016년부터 이란·쿠바·수단·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처 위반과 관련해 화웨이를 조사해왔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올해 초 상무부와 재무부가 화웨이에 대한 조사를 법무부에 요청했으며, 뉴욕 동부검찰청이 사건을 맡았다고 전했다.

혐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미국 기업의 기술이 포함된 제품을 계약 조건을 어기고 이란에 수출한 게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 정부는 4월에 대북한·대이란 제재 위반을 이유로 중국 통신장비업체 중싱(ZTE)에 7년간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처벌을 가했다. 미국 기업의 핵심 부품 공급이 끊겨 폐업 위기에 내몰린 중싱은 거액의 벌금 납부와 경영진 교체, 미국 지정 감시인 배치를 수용하고서야 제재가 풀렸다. 시진핑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처를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이 국내 조처를 적용해 제3국에서 중국 경영자를 체포한 아주 이례적인 상황에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주캐나다 중국대사관은 “캐나다가 어떤 미국 및 캐나다 법률도 위반하지 않은 중국 시민을 미국의 요청에 따라 체포했다.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행위에 결연히 반대하며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도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멍완저우가 체포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무역 담판을 벌인 1일이다. 이날 미·중은 무역전쟁의 ‘휴전’에 합의했다. 백악관은 정상 간 만찬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체포 사실을 보고받았는지 확인해주지 않았다. 미국은 90일간 중국 상대 협상을 이끌 인사를 ‘온건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바꾸기도 했다. 중국 입장에선 연달아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멍완저우는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74) 회장과 전처 멍쥔 사이의 딸이다. 1993년 입사해 2011년 최고재무책임자가 됐고, 올해 3월엔 이사회 부의장에도 올랐다. 런 회장은 “화웨이는 가족 기업의 길을 가지 않는다”고 말해왔지만, 중국에서는 멍완저우가 후계자가 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1987년 설립된 화웨이는 통신장비 판매 세계 1위, 휴대전화 판매 2위에 오르면서 중국인들의 자존심이자 대표적 첨단 기업으로 떠올랐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반도체, 통신장비 등을 만들며, 올해 매출은 1022억달러(약 114조원)로 예상된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월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폰을 감청한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아이폰 감청이 걱정되면 화웨이 스마트폰을 쓰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미국 애플을 앞질렀고, 1위 삼성전자를 추월하려고 한다.

이런 맥락 때문에 멍완저우의 체포는 제재 조항 위반이라는 ‘기술적’ 요인과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의도뿐 아니라 중국을 제압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컨설팅사 유라시아그룹은 “경기장에서 글러브를 완전히 벗어던졌다”며, 미국이 전면전을 불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이미 중국 대표 기업 화웨이를 노골적으로 경계해왔다. 2012년 하원 정보위원회가 화웨이·중싱의 장비를 가리켜 ‘중국이 미국 기업·기관을 감청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낸 이래 사실상 미국 판매는 중단됐다. 영국 브리티시텔레콤은 5일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 사업에서 화웨이를 제외한다며 기존 화웨이 장비도 교체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뉴질랜드도 “통신 안보 위험”을 이유로 화웨이 장비 금지 조처를 내렸다. 미국은 최근 일본,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런 회장이 인민해방군에서 기술직으로 근무했다는 점도 우려의 근거로 제시된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무역적자 축소뿐 아니라 중국의 기술 강국 부상을 막으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기술력이 최고 수준에 이르러 시장을 잠식하고 중국의 패권 부상에 이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구상이다.

멍완저우의 체포 소식까지 겹치자 무역전쟁이 재점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짙어지면서 6일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는 1.55% 하락한 2068.69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은 3.24% 급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9%,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7% 떨어졌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