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텍은 정말 삼성의 핵심 기술을 중국에 팔았을까

송진식 기자 2018. 12. 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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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본사 전경. /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중견 디스플레이 장비 제조업체인 톱텍이 국가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되면서 디스플레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수원지방검찰청은 11월 29일 톱텍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올레드 패널 3D 흡착공정’ 기술을 중국의 A업체에 유출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사장 ㄱ씨 등 관련 임원 3명을 구속기소했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기며 순항해온 톱텍은 ‘디스플레이 신화’를 만들어낸 삼성과 25년을 함께한 협력사다. 삼성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톱텍이 빼돌린 혐의를 받는 기술이 바로 삼성의 기술이라는 점과 향후 3년간 예상되는 삼성의 잠정 피해액이 6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추정이 나오면서 톱텍 사건은 업계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주목받는 사안이 됐다.

■우등생이 하루아침에 퇴학생으로

기술유출의 진위 여부는 향후 법원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톱텍은 잇달아 공시자료를 내 검찰의 수사 결과를 부정하고 재판에서 오해를 풀겠다고 나선 상태다. 피해자로서 검찰과 한배를 타게 된 삼성도 재판에서 피해사실을 적극 소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재판이 본격 열리기 전에 궁금한 게 있다. 톱텍은 대체 왜 그랬을까, 그리고 정말일까.

기업간거래(B2B)를 하는 업체 특성상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톱텍은 중소·중견기업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나 삼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은 ‘우등생’이다. 1992년 자동차 팬벨트 개발업체로 시작해 삼성디스플레이와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급성장했다. 2009년에는 코스닥에 입성했고, 2010년 지식경제부 장관상, 2015년 삼성전자 선정 ‘강소기업상’, 2016년 대통령 산업포장, 지난해 수출 8억불 달성 포상을 받았다. 올해도 동탑산업훈장 포상 기업으로 내정된 상태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기소된 회사의 핵심 임원은 정부가 선정한 기능한국인이자 업계가 선정하는 정보디스플레이 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1조원 매출 달성과 함께 코스닥에서도 시총 1조원을 한때 넘기며 우량주로 각광받았다. 올 초에는 SK텔레콤이 톱텍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잘나가던 톱텍이 올 3월 1분기 실적 부진 발표에 이어 검찰 수사 착수 및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단 10개월 만에 풍비박산 났다. 매출과 주가 모두 작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코스닥에서는 주식거래가 중단됐고,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최대 거래처인 삼성은 톱텍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공언했다. 우등생이 하루아침에 퇴학생이 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톱텍 사건을 이해하려면 검찰의 발표 내용을 보기 전에 직전 시장 상황을 복기해봐야 한다. 사건의 발단이 톱텍과 중국 A사의 접촉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검찰과 톱텍 모두 인정하는 공통적인 내용은 톱텍이 삼성에 공급하던 디스플레이 제조장비를 A사에 판매했다는 ‘사실’이다. 재판과정에서의 최대 쟁점도 장비를 판 것이 기술유출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톱텍이 장비를 판매한 중국의 A사는 삼성과도 거래가 상당한 협력사인 동시에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최대 경쟁자이기도 하다. 더욱이 톱텍이 판매한 장비는 삼성과 비밀유지계약을 맺고 있던 장비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톱텍이 삼성을 배신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반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톱텍이 중국에 장비를 판매한 데에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1년 새 디스플레이 시장이 급변한 데 따른 결과라는 해석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판매로 매출의 90% 이상을 내는 톱텍은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렸다. 삼성 덕분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모바일 OLED 패널 수요가 늘 것으로 내다보고 충남 아산 탕정에 있는 OLED 제조 A3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장비 투자를 최근 몇 년 새 단행했다. 지난해 톱텍이 최대 실적을 낸 것도 A3라인의 장비를 수주한 영향이 컸다. 매출이 늘면서 톱텍도 인력과 설비를 늘렸다. 공시자료를 보면 2015년 379명이던 직원수가 지난해 479명까지 늘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2014년 선보인 플렉서블 OLED. /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갤럭시 ‘엣지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모바일 OLED 수요가 꺾이면서 시장이 급변했다. 당장 삼성에서 OLED를 공급받기로 한 애플도 주문량을 크게 줄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올해 탕정의 A4라인에도 설비투자를 크게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장이 얼어붙자 삼성도 투자를 보류했다. 그리고 그 직격탄을 톱텍도 맞았다. 수주 절벽에 부딪힌 것이다. 증권가는 “디스플레이 업계가 업황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한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톱텍이 작년 매출 증대에 맞게 회사 규모도 늘렸는데 올해 수주가 안돼 매출이 줄자 해법으로 꺼내든 게 중국으로의 수출”이라고 밝혔다. 톱텍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톱텍 관계자는 “매출 다각화를 검토하던 중 A사에서 제안이 와 수출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톱텍이 당초 A사와 거래를 하게 된 발단 역시 삼성이었던 셈이다.

톱텍이 판매한 장비는 OLED와 일명 ‘고릴라글래스’라고 불리는 유리판을 접합할 때 필요한 흡착장비다. 얇디얇은 필름 형태의 OLED를 유리판에 흠없이 붙이는 건 어려운 공정이다. 특히 톱텍의 장비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인 ‘갤럭시’ 시리즈 고유의 ‘엣지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흡착장비다. 끝부분이 곡면 형태를 띠는 엣지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특히 곡면부위의 유리와 OLED를 빈틈없이 잘 붙이는 게 중요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수년간 연구 끝에 곡면부위의 흡착을 제대로 할 수 있는 ‘3D 라미네이션’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톱텍에 기술을 현장에서 구현할 장비 개발을 의뢰했다. 이렇게 탄생한 장비를 통해 내놓은 제품이 바로 세계 최초 엣지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 엣지(2014년)’다. 이후 엣지 디스플레이는 갤럭시에 차별성을 부여하는 상징적인 디자인이 됐다.

여기까지의 사실 역시 검찰과 톱텍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검찰은 이렇게 개발된 흡착장비를 중국 업체에 넘긴 행위 자체가 기술유출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해당 기술의 특허는 삼성에 있다”고 주장했고, 검찰도 이를 받아들였다. 반면 톱텍은 판매한 장비 자체는 톱텍 고유의 기술력으로 개발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국내 특허등록 현황을 보면 톱텍은 2016년 1월 3D 라미네이션을 구현할 흡착장비에 대한 특허를 낸 것으로 확인된다. 톱텍은 이 특허에서 “거의 직각에 달하는 곡면에서도 빈틈없이 OLED와 유리판의 흡착이 가능하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엣지 디스플레이의 경우 곡면부위가 직각에 가까울수록 흡착이 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톱텍이 “고유의 기술력”이라고 주장한 장비가 바로 이 특허에 기반한 장비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톱텍 관계자는 “재판을 앞두고 있어 구체적인 사실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최초 3D 라미네이션 흡착장비 개발 당시 삼성이 의뢰를 하고 기술도 전달해 개발이 이뤄진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톱텍이 가진 자체 기술력 역시 장비 개발에 작용했으므로 정확하게 장비에 대한 특허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이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에서 자립(굴기)을 선언하면서 중국으로의 국가 핵심기술 유출사건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검찰이 기소하는 모든 사건이 기술유출로 결론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2016년 9월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반도체 핵심 정보를 유출해 중국에 빼돌렸다며 그를 구속기소했다. 1년여간 진행된 재판에서 대법원은 해당 임원이 기술유출을 한 사실이 없다고 무죄 판결했다. 최근에는 톱텍과 유사한 장비사업을 하는 B업체도 기술유출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부분은 혐의가 소명돼 가벼운 처분만 받은 사례도 있다.

톱텍 아산 사업장 전경 / 톱텍 홈페이지

■기술유출 차단으론 중국 추격 못막아

검찰은 톱텍이 기술을 유출한 정황으로 범행과정에서 위장회사 설립, 차명 휴대전화 사용 등도 증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톱텍 관계자는 “중국과 거래를 하려면 불가피하게 페이퍼컴퍼니(위장회사)를 설립해 운용한다는 건 업계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차명 휴대전화도 회사 업무용으로 개통한 것일 뿐 범죄 목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검찰과 톱텍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는 만큼 결국 톱텍 사건도 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아봐야 진실이 가려질 전망이다.

톱텍이 판매한 장비가 실제로 삼성에 향후 6조5000억원의 손실을 가져올 것인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전자업계는 일단 화웨이가 올 10월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메이트20’을 의심하고 있다. 메이트20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중 갤럭시 이후 나온 최초의 엣지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이다. 갤럭시만의 차별적인 엣지 디자인이 무너진 것이다.

물론 엣지 디스플레이의 기반이 되는 ‘플렉서블 OLED’ 기술을 가진 곳이 삼성만 있는 건 아니다. LG디스플레이도 수년 전 개발을 마쳐 시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메이트20의 경우 이번 톱텍 사건과 연루된 중국의 A사로부터 엣지 디스플레이를 공급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자업계에서는 A사가 톱텍에서 장비를 수입해간 덕분에 시행착오 없이 곧바로 고품질의 엣지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화웨이에 공급했다고 보고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단지 흡착장비만 사갔다고 해서 곧바로 엣지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시행착오를 줄여 시간과 비용면에서는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검찰이 톱텍의 장비 판매로 인한 손실을 6조5000억원으로 잡은 것도 A사가 양질의 엣지 디스플레이를 만들게 된 것을 기반으로 한 계산으로 추정된다. 그럼 이 책임과 비난 역시 톱텍이 져야 할까. 이 부분 역시 재판에서 명확히 가려질지 여부도 관건이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중국이 3~4년 전부터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이후 삼성과 LG, 하이닉스 등지에서 스카우트한 전문인력만 100여명에 달한다는 소문이 돈다”며 “인력을 단속하든, 장비업체를 단속하든 중국의 추격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추격이 턱밑에 왔을 때 어떤 혁신기술로 차별화를 가져올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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