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 vs "미혼 역차별"..여성 공무원 숙직 놓고 남녀 '으르렁'

김지연 2018. 12. 9. 08: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세계-직장 내 양성평등①] 여성 숙직제 도입 안팎

“회사 내 남녀평등을 원하면 숙직도 남녀평등 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가 내년부터 여성 공무원도 숙직 업무에 투입하기로 하면서 직장 내 양성평등과 업무 형평성에 바람직한 조치라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숙직 제외 대상자 선정 기준과 여성의 야간 근무 시 안전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여성 공무원 숙직제 도입이 양성평등에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그전에 안전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공무원 숙직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남성도 여성도 ‘여성 공무원 숙직’ 반겨…미혼 역차별 우려도

대다수 남성들은 “동등한 권리를 원하면 동등한 의무도 지키는 게 당연하다. 이런 게 진정한 남녀평등”이라며 서울시 여성 공무원 숙직제 도입을 반겼다.

회사원 김모(32)씨는 8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실질적인 남녀평등이 이뤄지지 않은 데는 남성들의 반대도 있었겠지만, 여성들의 이율배반적 행동도 있었다”며 “숙직도 남녀 가리지 말고 똑같이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남성만 숙직을 한다는 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꼬집었다.

여성 공무원들도 숙직 업무를 반기는 분위기다. 대구에 거주 중인 여성 공무원 서모(31)씨는 서울시 여성 공무원 숙직 투입 소식을 듣고 “‘숙직 안 해서 좋겠다’며 비꼬던 남직원들 눈치 안봐도 돼서 좋겠다”며 “숙직 다음 날은 비번이라 푹 쉴 수 있는데, 나도 숙직하고 당당하게 쉬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미혼 여성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육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이유로 당직 제외 대상자 기준이 기혼 여직원 위주로 마련되면 결국 여성 숙직제 도입으로 증가한 업무가 고스란히 미혼 여직원들에게만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숙직 도입’ 늘어나는 추세…풀어야 할 과제도

여성 공무원 비율 증가에 따라 일부 기초단체의 경우 이미 ‘여성 숙직제’를 도입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자체 여성 공무원 비율은 2006년 27.7%에서 2011년 30.0%, 2016년 34.9%로 높아지고 있다.

울산 남구는 남직원들의 숙직 과부하를 우려한 여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2002년 7월부터 여성 숙직제를 도입했다. 부산 사상구와 해운대구는 각각 2015년 1월과 지난해 7월부터, 연제구와 북구는 각각 올해 1월과 3월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고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 등도 여성이 숙직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직원들이 목요일에만 숙직에 참여하면서 반발이 생기기도 했다. 숙직을 선 다음 날은 비번이기 때문에 목요일에 숙직을 선 직원은 금·토·일요일을 내리 쉴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뷔페니즘’(뷔페+페미니즘, 뷔페에서 음식을 골라 먹는 것처럼 자신이 유리한 부분만 주장하고 불리한 부분은 회피하는 페미니즘)이라고 지적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숙직 제외 대상자 선정 기준도 지자체별로 달라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또 여성의 숙직 근무에 따른 조 편성과 안전 대책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지난 5월 여성 전용 숙직실에 들어가 음란행위를 하다 적발된 경찰관이 파면된 일이 있었고, 9월에는 천안시에서 여성 공무원이 민원인 수십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은 사건도 있었다.

◆전문가 “양성평등 가는 방향은 맞아…안전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전문가들은 여성 공무원 숙직제 도입이 양성평등에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그전에 안전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공무원 숙직이 꼭 필요한 것인지 숙직제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8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성 공무원 숙직제가 양성평등으로 가는 방향은 맞다”면서도 “단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있으면 안 될 것이다. 안전대책이 마련된 다음에 여성을 숙직에 투입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설 교수는 숙직 제외 대상자 선정 기준에 대해선 “일률적으로 정하면 문제가 많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협의를 거쳐 정해야 한다. 그러면 잘 만든 모범사례가 나올 것”이라며 “이것을 토대로 조금씩 수정·조정해 운영하면서 합의를 도출해나가는 방식으로 정착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러면서 “모바일로 비상연락이 가능한 시대에 공무원 숙직이 꼭 필요한 것인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며 “그런데도 숙직이 꼭 필요하다면 수당 등을 고려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 따져보고 민간에 위탁하거나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검토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내년부터 여성 공무원도 숙직한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남성 공무원만 하던 숙직 근무에 여성 공무원도 투입하도록 했다. 이는 여성 공무원 비율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남성 공무원만 숙직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남성 공무원의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에 남녀 공무원간 형평을 도모하려는 조치다.

서울시 당직은 주말 및 공휴일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하는 일직과 평일 오후 6시~다음 날 오전 9시 근무하는 숙직으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여성 공무원은 일직만 해왔고, 숙직은 남성 공무원이 맡아왔다.

최근 여성 공무원 비율이 40%에 달하면서 본청은 남 9개월·여 15개월, 사업소는 남 40일·여 63일로 남녀 간 당직 주기 격차가 1.7배까지 벌어져 남성 공무원의 피로 누적과 업무 과다의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어 역차별 우려와 함께, 당직 업무에 대한 남녀 구분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올해 4월 서울시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참여 인원의 63%(남성 66%, 여성 53%)가 여성 공무원 숙직 포함에 찬성했다.

서울시는 또한 당직 근무 제외 대상자를 기존 임신(출산)자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만 5세 이하 양육자, 한부모가구의 미성년자 양육자로 확대한다.

황인식 서울시 행정국장은 “시행에 따른 장애 요소를 지속해서 보완할 계획”이라며 “이번 조치가 남녀 역할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