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선수에게 비즈니스석 양보 '따뜻한 박항서'
"말 안 통해 스킨십으로 마음 전달"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지난 6일 동남아시아 축구 국가대항전인 스즈키컵 4강 2차전에서 필리핀을 2-1로 꺾고 2전 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베트남 대표팀은 이튿날인 7일 스즈키컵 결승 1차전이 열리는 말레이시아로 이동하기 위해 비행기에 탔다. 감독은 비즈니스석, 선수는 이코노미석을 배정받았다.
이륙한 지 1시간쯤 지났을 때 박항서 감독은 갑자기 베트남 선수 도 훙 중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중은 2일 열린 필리핀과의 4강 1차전 도중 등을 다쳐 2차전엔 나오지 못했다. 박 감독은 비즈니스석에서 이코노미석으로 바꾸면서 “말레이시아까지 비행기로 3시간 이상 걸린다. 부상 당한 널 편안한 자리에 앉혀야 했는데. 잊어버려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박항서 감독이 선수들을 자식처럼 챙긴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는 한 선수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8초짜리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박 감독이 마사지기로 베트남 선수의 발을 정성스럽게 문지르는 영상이었다. ‘선수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감독님’이란 설명과 함께 영상은 베트남 사회에 빠르게 퍼졌다.
사실 박 감독의 ‘형님 리더십’은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부터 유명했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코치를 맡아 거스 히딩크 감독과 선수 간 가교 역할을 했다. 당시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서 첫 골을 터트린 황선홍은 히딩크 감독이 대신 박항서 코치에게 달려와 안겼다.
박 감독은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감독 시절 생일을 맞은 선수에게 책을 선물하곤 했다. 또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는 용기를 불어넣는 책을 골라줬다. 책 표지 안쪽에 손편지를 남길 만큼 세심하게 챙겼다.
박항서 감독은 발 마사지 동영상과 관련해 “부상자를 확인하러 의무실에 자주 간다. 의무진이 한두 명밖에 없어 손이 모자라 도운 것뿐이다. 언론에서 ‘파파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어떤 목적을 두고 선수들을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또 “모든 걸 내려놓고 베트남에 갔다. 베트남 문화, 선수들, 국민 모두를 존중하려 했다”며 “난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저 누구에게나 진정성 있게 대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선수들에게 마음을 전달할 방법이 스킨십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사지하는 게 찍힌 줄 몰랐다. 소집 기간에 소셜미디어를 금지하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 한 번 봐줬다”며 웃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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