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권력과 가까울수록 끝은 비극"..군정보기관장 김창룡부터 이재수까지 [박태훈의 스토리뉴스]

박태훈 입력 2018.12.11. 07:03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독이든 성배' 군 정보기관장, 비극의 역사

제41대 국군기무사령관이었던 이재수 전 육군중장이 삶을 중도에서 마감했다. 육사 37기 선두주자로 별 넷, 대장을 꿈꿨던 그의 죽음은 비운의 군 정보기관장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군 정보기관은 1950년 10월20일 출범한 육군특무부대를 모태삼아 육군방첩부대(1960년)→ 육군보안사령부(1968년)→ 군보안사령부(1975년)→ 국군 기무사령부(1991년)를 거쳐 2018년 9월1일 군사안보지원사령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군 정보기관은 정통성이 약한 정부나 독재정권일수록 센 힘을 발휘했다. 군부 장악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전반에 군 정보사찰기관의 힘을 악용할 필요성 때문이다.

군 정보기관장을 거친 이들은 초대 방첩부대장인 김형일 대령부터 군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한 남영신 중장까지 모두 44명. 계급은 1대만 대령이었을 뿐 모두 별을 달았고 대부분이 군 현역 서열 10위 이내였다.

하지만 44명의 군 정보기관장 중 9명은 이런 저런 일로 불행한 말년 혹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최고 권력자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일수록 더 큰 비극을 맛 봐야했다는 평가다. 
이승만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김창룡 특무부대장. 사진=전쟁기념관
◆‘이승만의 오른팔’ 김창룡, 결국 암살당해
군 정보기관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된 시초는 5대 특무부대장이었던 김창룡이었다. 일본 헌병출신이었던 김창룡은 광복후 국군 방첩대에 들어가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게 됐다. 군부내 좌익색출에 나선 김창룡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도 걸려들어 사형위기에 내몰렸으나 간신히 살아 남은 일은 유명하다. 1949년 6월26일 일어난 김구선생 암살사건 배후가 김창룡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분석이다. 김창룡은 너무 많은 전횡을 일삼다가 1956년 1월 30일 군부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오른팔을 잃은 이승만 대통령은 김창룡을 육군 소장에서 중장으로 특진시켰다. 
1973년 반란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당시 윤필용(오른쪽) 수도경비사령관. 연합뉴스
◆1960년대 군부 2인자 윤필용, 숙청당해
15대 방첩부대장을 지낸 윤필용 소장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오른팔로 군부 2인자로 통했다. 방첩부대장에 이어 청와대를 방어, 경호하는 수도경비사령관에 오르는 등 출세가도를 질주하다가 '차기를 노린다'라는 견제를 받은 끝에 반란음모론에 휘말려 군복을 벗고 불명예 제대, 권력에서 밀려났다. 13대 방첩부대장 정승화도 나중에 '반란' 혐의 등으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불명예 제대했다.
10·26 현장검증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연합뉴스
◆박정희 고향 후배 김재규, 사형장 이슬로

16대 군 정보기관장인 김재규는 박정희의 고향(경상북도 선산군)후배이자 육사2기 동기생이다.

배경에 걸맞게 육군보안사령관,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에 올랐다. 박정희의 독재에 절망한 그는 1979년 10월 26일 권총으로 박정희를 저격했지만 군부내 박정희 추종세력에 의해 제압당해 이듬해 5월24일 사형됐다.
법정에 나란히 선 전두환(오른쪽)과 노태우. 연합뉴스
◆‘박정희 양자’라던 전두환, 권력 잡았다가 사형선고까지

20대 정보기관장으로 격동기였던 1979년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박정희의 군부내 양아들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박정희는 1979년 3월 그를 1사단장에서 보안사령관이라는 막강한 자리로 보냈다. 전두환은 군 정보사찰망을 이용해 군부를 장악한데 이어 정권마저 차지했다. 그 대가는 1996년 8월 1심에서 사형선고(1997년 4월 무기징역 확정)였다. 특사로 풀려났지만 그후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11대 기관장 이철희는 장영자 사건으로 옥살이했고, 21대 기관장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나중에 징역 17년형을 최종 선고받는 등 4명이 군복을 벗은 뒤 죄수복을 입었다.
2013년 4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이재수 중장으로부터 진급신고를 받은 뒤 삼정도에 술을 매어주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를 '누나'라고 불렀던 이재수...가까움이 끝내 독으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와 중앙고 시절부터 절친. 자연스럽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불렀다.

박지만씨와 나란히 육사 37기(1977년 입교)로 군인의 길을 걸었던 이재수씨는 박 전 대통령 가족과 너무 가까운 것이 끝내 화가 돼 돌아왔다. 육사 37기 선두로 2013년 4월 중장으로 진급, 인사사령관을 거쳐 기무사령관이 됐으나 끝내 별 넷을 달지 못한 채 옷을 벗어야 했다.

박지만씨 절친이라는 사실이 이 전 사령관에게 족쇄가 돼 많은 견제를 받았다는 것이 군내부 정설이었다.전역 3년 뒤 이 전 사령관은 기무사령관 시절 세월호 관련 사찰 의혹을 받고 검찰에 불려 갔다.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며 막다른 길을 택했다. 박근혜-박지만 남매를 알지 못했더라면 과연 이 전 사령관의 운명은 어찌 됐을까.

한편 42대 조현천 중장은 쿠데타 문건 등으로 여권말소, 인터폴 수배등의 조치를 당한 채 현재 국외를 떠돌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