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가까울수록 끝은 비극"..군정보기관장 김창룡부터 이재수까지 [박태훈의 스토리뉴스]
제41대 국군기무사령관이었던 이재수 전 육군중장이 삶을 중도에서 마감했다. 육사 37기 선두주자로 별 넷, 대장을 꿈꿨던 그의 죽음은 비운의 군 정보기관장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군 정보기관은 1950년 10월20일 출범한 육군특무부대를 모태삼아 육군방첩부대(1960년)→ 육군보안사령부(1968년)→ 군보안사령부(1975년)→ 국군 기무사령부(1991년)를 거쳐 2018년 9월1일 군사안보지원사령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군 정보기관은 정통성이 약한 정부나 독재정권일수록 센 힘을 발휘했다. 군부 장악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전반에 군 정보사찰기관의 힘을 악용할 필요성 때문이다.
군 정보기관장을 거친 이들은 초대 방첩부대장인 김형일 대령부터 군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한 남영신 중장까지 모두 44명. 계급은 1대만 대령이었을 뿐 모두 별을 달았고 대부분이 군 현역 서열 10위 이내였다.
16대 군 정보기관장인 김재규는 박정희의 고향(경상북도 선산군)후배이자 육사2기 동기생이다.
20대 정보기관장으로 격동기였던 1979년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박정희의 군부내 양아들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박정희는 1979년 3월 그를 1사단장에서 보안사령관이라는 막강한 자리로 보냈다. 전두환은 군 정보사찰망을 이용해 군부를 장악한데 이어 정권마저 차지했다. 그 대가는 1996년 8월 1심에서 사형선고(1997년 4월 무기징역 확정)였다. 특사로 풀려났지만 그후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와 중앙고 시절부터 절친. 자연스럽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불렀다.
박지만씨와 나란히 육사 37기(1977년 입교)로 군인의 길을 걸었던 이재수씨는 박 전 대통령 가족과 너무 가까운 것이 끝내 화가 돼 돌아왔다. 육사 37기 선두로 2013년 4월 중장으로 진급, 인사사령관을 거쳐 기무사령관이 됐으나 끝내 별 넷을 달지 못한 채 옷을 벗어야 했다.
박지만씨 절친이라는 사실이 이 전 사령관에게 족쇄가 돼 많은 견제를 받았다는 것이 군내부 정설이었다.전역 3년 뒤 이 전 사령관은 기무사령관 시절 세월호 관련 사찰 의혹을 받고 검찰에 불려 갔다.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며 막다른 길을 택했다. 박근혜-박지만 남매를 알지 못했더라면 과연 이 전 사령관의 운명은 어찌 됐을까.
한편 42대 조현천 중장은 쿠데타 문건 등으로 여권말소, 인터폴 수배등의 조치를 당한 채 현재 국외를 떠돌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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