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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치바이스가 누구길래..예술의전당으로 들어온 중국국가미술관

홍진수 기자
입력 2018. 12. 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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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치바이스가 그린 ‘강위의 범선들’ ‘대년’ ‘분향승’(왼쪽부터)/예술의전당 제공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가 1년여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전시장도 똑같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다. 수많은 중국의 예술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거장이라지만, 그의 작품 일부는 지난해 7~10월 한국인들에게 이미 충분히 선보인 터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작가길래 이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수 밖에 없다.

지난 4일 전시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역시 가장 먼저 그 질문이 나왔다. “지난해 대대적으로 했는데, 왜 또?”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수석큐레이터가 대답했다. “예술의전당에서 30년 근무했는데, ‘호두까기 인형’ 공연은 해마다 한다. 또 피카소는 그렇게 자주와도 왜냐고 안 묻는다. 치바이스는 동아시아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가장 잘 해석해낸 작가다. 나는 이런 전시는 10번, 20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를 소화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더 이상 관련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피카소만큼 대단하고, 수십번을 봐도 괜찮은 작가라고 담당 큐레이터가 단호하게 주장하는데, 더 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 남은 일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 뿐이다.

대년(치바이스)/예술의전당 제공
팔대산인이 그린 ‘기러기’ ‘물고기와 수초도’ ‘사슴’(왼쪽부터)/예술의전당 제공

예술의전당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지난 5일 막을 올린 특별전의 정식명칭은 ‘같고도 다른: 치바이스와의 대화’다. 지난해 열린 전시회의 명칭은 ‘치바이스-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였다. 지난해 전시가 ‘치바이스는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에 중점을 뒀다면, 올해는 ‘치바이스란 거장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영향을 미쳤나’로 그 폭을 넓혔다. 치바이스를 중심으로 위로는 팔대산인(八大山人·1624∼1703)과 오창석(吳昌碩·1844∼1927), 아래로는 우쭤런(吳作人·1908∼1997), 중국국가미술관장 우웨이산(吳爲山·1962~) 등의 작품을 함께 가져왔다.

치바이스의 작품 목록 역시 새롭다. 지난해에는 치바이스의 고향인 후난성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 50여점과 유물 80여점이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중국국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치바이스의 작품들이 중심이다. 치바이스 작품 80여점에 팔대산인과 오창석의 작품 등을 더해 총 116점이 전시장에 나온다. 중국국가미술관은 한국으로 치면 국립현대미술관에 해당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온 우웨이산 관장은 “치바이스와 팔대산인, 오창석의 작품은 중국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해외로 반출 할 수 있다”며 “특히 이번에 나온 팔대산인의 대표작 7점은 이전에는 미술관 밖으로도 나간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13억 중국인 중에 치바이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식당마다 새우나, 게, 물고기 등을 그린 모조품이 많지만, 정작 치바이스의 작품을 직접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며 “이번 한국전시는 중국이 그만큼 한국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란(치바이스)/예술의 전당 제공

치바이스는 중국안에서의 명성을 과시라도 하듯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11년 베이징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그의 작품 ‘송백고립도’(1946)는 4억2550만 위안(약 718억원)에 낙찰돼 현대 중국회화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해만 따졌을 때는 피카소와 클림트를 넘어선 최고 경매가였다. 이듬해에는 피카소를 제치고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낙찰 총액이 가장 큰 작가가 되기도 했다. 2017년 베이징 바오리(保利) 추계 경매에서 ‘산수십이조병(山水十二條?)’이 9억3150만 위안(약 1500억원)에 낙찰되며 전 세계 중국 예술품 가운데 최고 가격도 경신했다.

치바이스는 1864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샹탄(湘潭)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너무 힘이 약해 14살부터 농사대신 목공일을 배웠고, 일감이 없는 밤이면 글과 그림을 익혔다. 27살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시작(詩作) 지도를 받았고, 30살 이후에야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정식으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해 시와 글씨, 그림, 조각 등을 모두 독학으로 익혔지만, 4개 분야 모두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1957년 9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작품을 생산했다. 스스로도 “80살이 넘어서야 그림다운 그림이 나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번 전시는 육체와 정신을 다시 빚는다는 ‘중소형신’(重塑形神), 옛것을 배워 훤히 안다는 ‘사고회통’(師古會通), 내 그림을 그리다를 의미하는 ‘화오자화’(畵吾自畵)로 구성됐다. 예술의전당은 보도자료에 “이번 전시는 ‘사여불사(似與不似·같으면서도 같지 않다)’를 화두로 사의(寫意·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에 치중해 그리는 일)그림의 전통과 맥을 ‘치바이스와 대화 형식’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분향승(치바이스)/예술의전당 제공

어려운 한자가 연달아 나온다고 해서, 지레 기죽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보면 치바이스의 그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붓을 많이 댄 것 같지도 않은데 표현하고 싶은 사물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게나 새우, 물고기 등을 즐겨 그렸는데, 공통적으로 ‘예쁜 눈’을 하고 있다. 명랑만화 주인공의 원형이 치바이스가 그린 동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많은 문인화가들은 매란국죽과 같은 고고한 대상을 주제로 삼았지만, 치바이스는 우리네 주변에 더 큰 애정을 줬다. 문인화 못지 않게 농민화도 많이 그렸다. 결국은 농민화를 문인화와 같은 반열에 올렸다. 치바이스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놔두고 신기한 것을 그리는 것이야 말로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한점한점 꼼꼼히 보다보면 치바이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치바이스가 그림 한쪽에 써놓은 ‘관지(款識)’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림을 그릴 때의 감상을 참 자세히도 알려준다. 때로는 불만도 적었다. 이를테면 1920년에 그린 ‘게’ 그림옆에는 이런 글을 함께 남겼다. “이 종이는 먹이 스미지 않아서 맘껏 붓질을 할 수 없다.” 전시는 2019년 2월17일까지 이어진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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