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커닝페이퍼] 겨울밤 피아노곡에 취해 '어니스트 레미' 샴페인

입력 2018. 12. 1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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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레미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면 어떨까? 좋다는 의견도 있고 종국에 싸우게 되어 좋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여기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가 있다. 부부가 샴페인을 만든다. 와인 양조나 포도 재배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둘은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만난 곳도 파리나 샹파뉴 지역이 아닌 스위스였다. 다만 여자는 샴페인과 인연이 있었다. 그녀는 1883년부터 프랑스 샹파뉴 지방 그랑 크뤼 포도밭을 소유한 가문의 딸이었다. 샹파뉴의 포도원은 부르고뉴처럼 등급이 있다. 제일 상위가 그랑 크뤼인데 그 밭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1948년부터 1959년까지 그 지역 시장직을 지내기도 했다. 말이 시장이지 인구가 많지 않으니 우리로 따지면 마을 이장쯤 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세계적으로 샴페인은 유명한 지역이니 아무나 시장을 시켜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역에 좋은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고 지역 사회에 기여도가 있고 리더십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가문의 포도원은 샹파뉴 지역 내에서도 샴페인의 수도라는 랭스와 에페르네 사이의, 그랑 크뤼 포도원만 있는 마을인 마이(Mailly)와 베르즈네(Verzenay) 지역에 있다. 둘은 결혼을 하고 부인의 선조들이 대대로 영위해온 샴페인 사업에 투신하여 부부가 함께 선조들의 유산과 정신, 스타일을 되살리기로 한다.

하지만 그냥 전통을 이어받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샴페인과는 차별성을 가진, 예상을 뛰어넘는 아주 독특한 샴페인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된 남자는 샴페인을 양조하는 셀러 마스터가 된다. 이들은 현재 일반 샴페인 회사들처럼 논 빈티지, 빈티지, 로제, 드미섹이라고 하는 약간 달콤한 샴페인 등 총 6종을 만들어내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어니스트 레미(Ernest Remy) 그랑 크뤼(Grand Cru)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브뤼트(Brut)이다. 샴페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이 세 가지인데 샤르도네는 화이트 품종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피노 누아와 피노 므니에라는 레드 품종이다.

화이트 품종인 샤르도네만으로 만든 것을 블랑 드 블랑이라고 하고 레드 품종만으로 만든 것은 블랑 드 누아, 그냥 세 가지를 모두 블렌딩한 것은 별다른 명칭이 없다. 여기서 블랑은 화이트라는 의미이고 누아는 블랙, 즉 검다는 뜻의 프랑스어지만 사실은 레드 품종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블랑 드 누아는 피노 누아에 피노 므니에를 일정 비율 블렌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샴페인은 자신들의 그랑 크뤼 밭에서는 피노 누아와 약간의 샤르도네만이 생산되므로 독특하게도 피노 누아만을 사용하여 블랑 드 누아 샴페인을 만들었다. 사실 두 개 품종을 블렌딩하는 이유가 한 품종만으로 하면 무언가 부족하니 그 부족한 향과 맛을 서로 보완하는 데 있는 것인데 이 샴페인은 원재료가 워낙 좋다 보니 피노 누아만으로 만들어도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것이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사과향과 배향은 기본이고 다양한 열대 과일향과 하얀 꽃향이 먼저 느껴지며 이어서 호두, 아몬드, 브리오슈 빵 향이 올라온다. 심지어는 꿀향까지. 이들은 어떻게 이런 샴페인을 만들까?

샴페인 양조 규정상 최소 12개월 동안 2차 병 속 발효를 하면 되지만 이들은 최소 36개월을 한다. 빈티지 샴페인은 72개월까지 한다. 당연히 향은 진하고 다양해지지만, 반면 효모향도 진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샴페인은 뜻밖에도 효모향이 다른 샴페인들에 비해 진하지 않아 효모향이 싫어서 샴페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좋아하게 만든다. 완벽한 밸런스의 예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산도 역시 지나치지 않아 깔끔하면서도 세련되고 선명하게 긴 여운을 남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다면 최고의 왕좌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우아하고 완벽한 균형감을 갖춘 샴페인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에는 양조 기술도 기술이지만 이 가문의 15㏊의 그랑 크뤼 포도원이 몽타뉴 드 랭스라는 산의 북쪽 사면에 위치하여 일조량이 적어 포도가 천천히 익게 해준다는 지리적 위치와 피노 누아 재배에 최적인 라임 스톤의 토양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위치상 겨울에 몹시 추운 지역이라서 포도나무가 죽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그 뿌리를 잘 보존하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튼 이들이 생산해내는 피노 누아는 이 지역에서도 가장 비싼 가격을 형성해왔다고 하니 원재료가 최고인 셈이다.

이 부부는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답게 국제 음악 경진 대회에서 로맨틱한 작품을 가장 잘 해석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매년 자신의 와인 브랜드 이름을 딴 어니스트 레미 상을 시상하고 있기도 하다.

샴페인도 음악처럼 기교와 이해도를 필요로 하여 어떤 의미에서 음악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활기차게 피어오르는 가늘고 균일한 거품들을 바라보면서 생기 있게 연주하는 피아노곡을 들으며 이 샴페인 한 잔을 기울인다면 완벽한 소확행이 될 것 같다. 이제 12월이고 진짜 겨울이다. 시리도록 맑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생기발랄한 피아노곡에 취한 채 이 샴페인 한 잔으로 겨울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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