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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한 인민군 아들.. 소식 듣지 못한 아버지

박도 입력 2018.12.1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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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한국 근현대사 자료를 발굴하고자 4차에 걸쳐 80일간 미국에 체류했다.

그곳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버지니아 주 남단 노퍽의 맥아더기념관을 찾아가서 한국 근현대사 관련 자료들을 일일이 검색한 뒤 입수해 왔다.

기자는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미군정 3년사> 에 수록할 자료를 위해 2017년 10월 22일부터 10월 29일까지 NARA에 드나들면서 주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지역에서 주둔하면서 수거해 온 자료들을 일부 검색, 수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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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의 북한 측 노획물①] 배달되지 못한 전사통지서

[오마이뉴스 글:박도, 편집:김지현]

기자는 한국 근현대사 자료를 발굴하고자 4차에 걸쳐 80일간 미국에 체류했다. 그곳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버지니아 주 남단 노퍽의 맥아더기념관을 찾아가서 한국 근현대사 관련 자료들을 일일이 검색한 뒤 입수해 왔다.

제1차 2004. 1. 31. ~ 3. 17.(48일간), 제2차 2005. 11. 29. ~ 12. 10.(12일간), 제3차 2007. 2. 27. ~ 3. 10.(12일간), 제4차 2017. 10. 22. ~ 10. 29.(8일간) 등 그동안 약 2300여 점의 자료를 발굴했다. 

그리하여 <오마이뉴스>에 1차로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2004. 2. 14.~5. 14.)을 30회 연재했고, 2차로 [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 (2017. 6. 13.~9. 24.)을 30회 연재했다. 이에 이어 3차로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2017. 10. 16. ~2018. 7. 1.)를 50회 연재한 바, 통산 110회에 이르는 연재였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일 [NARA의 북한 측 노획물] 연재는 주로 미국 문서기록관리청에 수장된 북한 측 노획자료 중심으로 꾸릴 예정이다. 기자는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미군정 3년사>에 수록할 자료를 위해 2017년 10월 22일부터 10월 29일까지 NARA에 드나들면서 주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지역에서 주둔하면서 수거해 온 자료들을 일부 검색, 수집해 왔다.
 
한국전쟁 당시 초기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한국정부가 허겁지겁 서울을 떠나간 것처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의 북진에 북한 역시 황급히 후퇴했다.

그때 미정보당국자는 북한 지역 공공기관에 산재된 각종 서류 자료들을 마치 빗자루로 낙엽 쓸어 담듯이 모조리 자루나 박스에 담아 왔다. 그런 뒤 이들을 군함에 실어 날라 현재 NARA에 정리 수장하고 있었다.
 
기자가 이들 자료들을 검색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동포 박유종 선생을 비롯하여 이흥환, 이선옥, 윤미영씨 등 전문연구사(Researcher)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내가 이 일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애초부터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성원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애써 소장하고 있는 모든 자료들을 최대한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4차 자료들은 잘 정제된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 연재물과는 달리 선명도도 크게 떨어지고, 설명도 다소 부정확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것은 미군들이 북한에 진주하여 무차별, 무작위로 쓸어담아 온 자료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연재물들이 당시의 북한 사회 및 한국전쟁사 연구 자료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문학, 영화, 연극, 방송 등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1차 자료로 쓰이기를 바란다. 사실 그동안 우리 문화 예술인들은 이런 역사적 실증 1차 자료, 특히 북한 측 자료는 매우 빈약했다. 

인민군이 죽었다, 부친에게 편지가 갔다

▲ 전사통지서 : 조선인민군 제469군 부대장 김천복이 1950년 8월 15일 자로 인민군 정택용 부친에게 보낸 전사통지서다. 정택용 부친은 당시 황해도 안안군 용문면 석양리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가 NARA에 보관 중인 점을 미뤄봤을 때, 전사자 정택용의 부친은 자식의 전사 소식을 끝내 듣지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전사통지서
ⓒ NARA/ 박도
  
"존경하는 정택용 부친 귀하

조선인민군 제 469 군부대 지휘부는 귀하의 령식(영식)이 진정한 애국자로서 우리 조국의 통일과 자유독립을 위한 정의의 투쟁에서 용감히 싸우던 중 장령하게 전사하였다는 것을 깊은 비애로서 통지하는 바입니다.

우리들은 귀하의 령식 정택용와(과) 영결하면서 우리 조국의 평화로운 도시와 농촌을 폭격하며 수다한 우리 조선인민들을 학살하는 강도 미제와 리승만 매국도당에 대하여 불붙는 적개심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반드시 원쑤를 격멸 소탕하고야 말 것을 맹서하는 바입니다.

승리는 정의를 위하여 조국의 통일과 자유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우리의 영웅에게 영구불멸의 영광이 있으랴!

조선인민군 제469군 부대장 김천복
1950년 8월 15일" 
 
 대소정세판단 문서
ⓒ NARA / 박도
  
대소정세판단 : 이 문서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주둔 일본군 첩보요원들이 만든 대소정세 수집 판단 자료로 보인다. 일본과 러시아(소련)는 19세기부터 줄곧 한반도를 두고 서로 차지하겠다는 야욕으로 늘 으르렁거려 왔다. 당시 일본이 항시 소련의 동향을 경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관동군정보부지휘계통개요도
ⓒ NARA / 박도
  
▲ 관동군정보부지휘계통개요도 : 일제 패망 직전의 문서로 일본 관동군정보부 지휘계통 개요도로 보인다.
 
 정치상학 교재
ⓒ NARA / 박도
  
▲ 정치상학 교재 : 북한
민족보위성 문화훈련국에서 제작한 인민군 정치 교재로 보인다. 1950년에 제작된 듯하다. 이 교재는 인민군을 "해방된 조선 인민의 군대이며 그 리익(이익)의 충실한 방위자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민군 제121부대의 방어전투 준비 지령문
ⓒ NARA / 박도
  
▲ 지령 : 인민군 제121부대의 방어전투 준비 지령으로 보인다. 1949년에 작성된 이 문서는 당시 정세를 "조국강토를 양단하여 동족상쟁을 꿰하는 망국이승만괴뢰정부도중들은 미제의 앞자비(앞잡이)로서 우리 공화국북반부를 침범할여고(하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 있다"라고 진단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필수적 과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곱 가지에 달하는 지령을 내렸다.

[자료출처; NARA RG 0242 cotainer #2 NM-44-229-A 및 UD300C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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