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침묵 깨고 美에 불만 쏟아내..제재 완화 압박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미 비핵화 협상의 정체국면에서 북한이 13일 침묵을 깨고 미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및 북미 고위급 회담 무산 이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열린 한미 및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 등을 지켜본 뒤 나온 첫 입장으로 미국에 대한 불만으로 일관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정현이란 개인 명의의 논평에서 북미 비핵화 정체국면의 책임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며 제재 완화 같은 미국의 상응 조치 없이, 나아가 대북 압박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먼저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논평은 "우리는 지금…미국이 허튼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있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조미 관계 개선과 제재 압박은 병행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개인 필명의 논평이긴 하지만 "우리에게서 선사품들을 받아안을수록 피 냄새나는 야수처럼 더 으르렁대며 취하는 새로운 제재와 '제재주의보'의 연발, 날로 광포해지는 대조선 인권압박소동" 등 그동안 자제하던 거친 표현도 동원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정체국면에서 지속해서 요구해온 제재 완화는 고사하고 갈수록 고삐를 조이는 데다 최근에는 인권문제까지 내세워 압박을 가하는 데 대한 불만을 쏟아낸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 가진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제재가 완화될 기미가 없고 인권문제까지 부각되는 상황에서 협상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수 있다는 북한 지도부 내부의 답답한 인식과 판단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리용호 외무상이 G20 정상회의 기간 열린 미·중 정상회담 직후 중국을 방문해 회담 결과를 청취한 결과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중 정상이 G20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에 100% 협력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미·중 무역 전쟁으로 중국이 할 수 있는 건 공개적으로 제재 완화의 목소리를 높일 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현 논평은 "시간은 미국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의 소강 국면이 장기화 되도 급할 것 없다는 입장도 드러냈다.
미국이 '선(先) 비핵화·검증' 입장을 고수하며 시간에 쫓겨 북한의 페이스에 말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태도에 대한 맞대응인 셈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성장 목표가 급하지만, 출발부터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비핵화 전 과정에서 계속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며 양보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 속에서 '우리도 급할 것 없다'는 점을 부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지난 10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개최한 '비핵화 이후 한반도' 국제 콘퍼런스에서 북미 교착상태와 관련해 "미국 측에서는 북한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선희나 김영철에게 10번, 20번 넘게 전화를 했지만, 평양으로부터 답이 없다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미국이 제재의 일부 완화 같은 상응 조치가 없는 한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물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케 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런 강경 입장을 외무성 등 기관이 아닌 개인의 논평 형식으로 밝힘으로써 협상의 판을 깨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 특보는 "이미 북한의 지도자는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고 일부 구체적 행동도 취하고 있다"며 "북한의 항복을 요구하는 듯한 일방주의적 태도는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긍정적 행보에 대한 보상과 격려는 상황 진전을 위해 상식에 가까운 것"이라며 "북측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불가역적 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과 국제사회도 상응하는 제재완화 조치를 취하는 게 순리"라고 밝혔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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