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조원 내보내라.. 회사 박살내겠다" 공장 돌아다니며 협박

포항/장상진 기자 입력 2018. 12. 14. 03: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수사기록으로 본 민노총 포항지부 간부들 행태

2015년 경북 포항시내 한 전기공사 전문업체 사무실에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조끼를 입은 남성들이 들이닥쳤다. 민노총 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사장 김모씨에게 "당신 회사 직원들의 노조비를 우리가 원천징수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시 이 회사가 수주한 공사를 위해 고용한 근로자는 비(非)노조원이거나, 플랜트 노조원이더라도 포항지부가 아닌 광양지부(전남) 소속이었다. 김 사장이 "곤란하다"고 말하자, 이들은 "회사를 박살 내버리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들의 요구대로 노조비 460여만원을 송금했다.

포스코 경비 에워싼 '민노총 선봉대' - 2016년 8월 민노총 플랜트건설노조‘선봉대’(검은 옷 입은 이들)가 포스코 경비 직원(가운데 마이크 든 사람)을 에워싸고 사과를 받아내고 있다. 노조는 포스코 측이“회사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조끼와 머리띠를 벗어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요구했다. /플랜트건설노조 홈페이지

민노총 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장 B씨와 수석지부장 C씨, 사무국장 E씨는 2015~2017년 이 사건을 포함해 총 39건의 협박·공갈·강요 등을 저지른 혐의로 1·2심 재판에서 징역 1년~10개월을 선고받은 뒤 상고(上告)해 13일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1·2심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포항지부 소속 노조원 2000여 명을 '소대·분대' 등 군대식 조직으로 편성해 기업체와 공권력을 상대로 불법 집단 행동을 벌였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노조원들의 일자리를 빼앗았고, 집회 참석률이 저조한 노조원들은 고용주를 압박해 해고시켰다.

법원은 "범행으로 관련 업체들이 상당한 재산 손실을 본 점, 공사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고용관계에 피고인들이 부당하게 개입해 인력 수급에 악영향을 준 점, 그 결과 징계 대상 노조원과 그들을 고용한 하도급업체가 피해를 감수해온 점 등을 감안할 때 징역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비노조원 노조비까지 받아

민노총 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 간부들은 인근 기업체를 돌며 "포항에서는 비노조원이 일할 수 없으니, 내보내고 노조원을 채용하라"고 했다. 사측이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봐라"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들은 기업 상당수가 노조의 요구를 들어줬다.

노조는 지난 2016년 11월 기계 관련 전문업체를 찾아가 "노조원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임금의 1%를 노조비로 원천징수하겠다"며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공장 정문을 막아 공사를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 업체는 비노조원 13명에 해당하는 '노조비'를 노조에 줬다.

같은 해 4월 포스코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던 D업체에 찾아가선 비노조원이 근무하는 것을 문제 삼아 "현장 작업자 명단을 내놓지 않으면 공사를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업체는 비노조원인 직원 5명을 내보냈다. 판결문에 따르면 7개 업체에서 일하던 60여 명이 피해를 봤다.

◇"모친 암 걸려 집회 못가도 예외 불허"

노조원도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비노조원보다 더한 피해를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노조는 2016년 9월 현대제철 포항2공장에서 '블랙리스트 노조원 20여 명이 포항2공장 개보수 공사장에서 근무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회사 경비직원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현장에 진입했다. 그해 10월에는 포스코 공사를 맡은 하도급업체 근로자 명단을 확보한 뒤, 하도급업체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이○○와 안○○는 블랙리스트 대상자이니 당장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하도급업체는 이들을 해고했다.

판결문에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노조 간부 C씨와 D씨가 현대제철 공장 안을 돌아다니다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안모씨를 발견하자 "아직도 이 사람이 여기 있네?"라고 말한 뒤, 현대제철 관리직원을 불러 "이 사람 안 내보내면 다른 작업자들 모두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결국 안씨는 짐을 쌌다. 다른 공장에서 일하던 박모씨에게는 "안타깝게도 집회 참석률이 80%에 못 미치네요. 나가세요"라고 말해 내쫓았다.

익명을 요구한 사건 관계자는 "한 조합원은 어머니가 암에 걸려 대구 큰 병원에 입원시키느라 집회 참석을 못했고, 그런 사정을 집행부에 알렸음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며 "그 조합원은 경주·광양 등 주변 지역을 떠돌다가 상대적으로 플랜트노조가 덜 강성인 중부지방 한 지역에서 여관에 묵으며 일을 했다"고 전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