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시간씩 6년간 '지하철 집필'.."정의가 늘 승리하진 않아"

김고금평 기자 2018. 12. 14.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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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기파' 대상 수상자 박해울 작가.."사회적 약자 목소리에 관심 많아"
머니투데이 주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장편 '기파'로 대상을 수상한 박해울 작가. 박 작가는 \


머니투데이 주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백기를 들뻔했다. 작년만큼 기발한 작품도, 본선 작에 올릴 이렇다 할 작품도 찾지 못했기 때문. ‘기파’라는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응모작을 보는 심사위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을 정도였다.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뽑힌 장편 대상작 ‘기파’는 “어디 하나 빠진 것 없는 균형의 결정체”(김창규) “글은 기술이 아닌 인격으로 쓴다는 걸 보여준 따뜻한 작품”(김보영) 등 찬사가 잇따랐다.

‘기파’라는 작품명은 신라 경덕왕 때 충담이 화랑 기파랑(耆婆郎)을 추모해 지은 10구체 향가 ‘찬기파랑가’에서 따왔다. 이 작품을 쓴 박해울 작가는 “대학원(단국대 문예창작과) 수업에서 삼국유사를 배웠는데, ‘기파랑’에서 힌트를 얻었다”며 “고전문학에 SF를 접목하면 신선하지 않을까 해서 시도했다”고 말했다.

박해울 작가. /사진=임성균 기자

작품은 2070년 달 정거장에서 목성까지 항행하는 호화 크루즈 선 ‘오르카 호’가 출항한 뒤 지구와의 교신이 끊기고 선내 전염병까지 퍼지자 의사 기파가 사람들을 살리는 과정을 그렸다. 기파가 지구에서 영웅으로 칭송되지만 현상금 사냥꾼이 난파선을 찾으면서 알게 된 진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숨죽이는 행보를 이어간다.

과학적 재미와 반전의 구성이 뛰어난 작품은 그러나 김은국의 ‘순교자’처럼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인문학적 주제의식으로 향한다. 신부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순교자’란 훈장을 달았는지 존재의 속성이 드러나듯 ‘기파’ 역시 선과 악의 경계에 아슬아슬 서 있는 존재들의 태도를 조명한다. 단순히 SF적 재미로만 투영할 수 없는 성찰의 의미가 고스란히 새겨진 작품이다.

“영원한 선이나 악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정의를 좋아하지만 정의가 항상 승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도 그런 가치나 철학의 문제에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소재였어요.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 아닌, 로봇을 이용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태도들 말이에요.”

박 작가는 이 작품에 6년을 매달렸다. 처음엔 단편으로 집필했던 습작이었는데, 주변에서 더 긴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분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대학원 수료 후 전기 차단과 밸브 만드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그는 퇴근 지하철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쓰고, 출근 지하철 플랫폼에서 본문의 글을 다듬는 작업에 몰두했다. 80매에서 800매로 늘리는 데 매일 1시간씩 6년의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 셈이다.

장편 '기파'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박해울 작가. 박 작가는 난판된 우주선에서 의사 기파가 사람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숨겨진 진실을 통해 인간의 속성과 정의에 대한 문제를 파헤친다. /사진=임성균 기자


박 작가는 “고1 때 600페이지 분량의 미스터리 소설을 써 본 경험이 있어 장편에 대한 부담감이 적었다”며 “전기회사 다닌 경험도 장면 묘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심사위원의 평가처럼 박 작가 작품에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물씬 풍긴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고등학교 때 캄보디아로 해외봉사 가서 정미소를 문화센터로 만드는 작업을 그곳 친구들과 같이했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정미소 밖 사람들이 더 필요한 존재들인데, 그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화려한 곳을 가면 이 화려함을 위해 힘들게 일한 사람들을 보게 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박해울 작가. /사진=임성균 기자

최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어머니와 같이 사설 ‘바라지 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어둡고 그늘진 이들을 향해 내민 따뜻한 미음 같은 행보다.

박 작가는 어쩌다 SF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SF에 미쳐 작가의 꿈을 꿨다고 했다. 과학동아로 시작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을 거쳐 해리포터로 완성하는 SF에 대한 관심은 꾸준한 글쓰기로 이어졌고 SF의 현실적, 인문학적 고찰까지 투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전 SF가 마이너리티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예전 SF영화들은 잘 사는 과학자가 대개 주인공이고 외계인 침략에 맞서 싸우는 얘기가 많았죠. 하지만 앞으로 빈부격차가 더 심화하면서 현실적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아요. 신기술이 상용화하면 많은 사람이 그걸 이용할 테고, 더 많이 가진 자의 권력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대두할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느낄지가 제겐 관심사예요.”

그는 가난하게 살지 않았지만, 그의 시야는 가난한 이들의 반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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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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