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위법행위' 알면서도 세월호 유족 사찰했다

2018. 12. 1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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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기무사 문건으로 보는 '세월호 유가족 사찰'
전 국군기무사령관 목숨 끊은 뒤
보수정치인 중심 "표적수사" 주장

기무사 문건에 '민간인 사찰' 뚜렷
현장엔 "실종자 가족 위장" 지침도
'정치적 중립의무 인식 명확히 해야'
옛 국군기무사령부 로고.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7일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목숨을 끊었다. 기무사령관으로 있던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보수세력 재편을 앞둔 보수정치인 등은 “전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 “참군인의 안타까운 죽음” 등 ‘정치적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할 경우 누구도 처벌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명확한 인식 없이는 민간인 사찰 등은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사실이 여럿 드러났지만, 제대로 된 징계나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박근혜 정부에서도 재연됐다는 것이다.

지난 7월2일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티에프(TF)는 “기무사의 여론조작 행위를 조사하던 중, 기무사가 세월호 사고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 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14일 국방부 자체 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된 기무사 내부 문건과 <한겨레>가 자체 확보한 문건 등을 보면, 당시 기무사가 군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희박했는지 드러난다.

기무사는 세월호 사고 발생 13일째인 2014년 4월28일 세월호 관련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티에프를 구성하고, 사고 발생 28일째인 5월13일엔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을 티에프장으로 하는 ‘세월호 관련 티에프’로 확대하는 등 10월12일까지 약 6개월간 티에프를 운영했다.

‘세월호 관련 티에프’는 참모장을 티에프장으로 해 사령부 및 현장 기무부대원 60명으로 구성됐다. △군 구조·인양 지원팀 △군내·외 여론관리팀 △불순세(력) 관리팀 △대외제공 첩보처리팀 등으로 업무를 분장했고, 이를 정보융합실장이 종합하도록 했다. 기무사령관에게는 매일 오후 5시까지 △군 구조·인양 작전 지원 동정 △대외부서 및 국회 조치·관심사항 △북한 및 종북세(력)·투입장병 동향 △언론 및 사이버 네티즌 반응을 보고하도록 했다. 종북세(력) 동향 파악을 위해 △반정부 집회·시위 현황 △촛불집회를 매개로 세력 확산 시도 여부 등을 분석한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티에프 증편 이후에는 정보융합실장 관할로 △BH(청와대) 보고서 작성 △여론 및 언론 관리 등을 맡도록 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의 자필서명 결재가 들어간 문서에는 ‘사령관님 지침’으로 “우리 부대 차원의 정책 대안 액션플랜 제시 및 선제적 첩보 발굴”을 주문하고 있다.

당시 기무사는 유가족들이 머물던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도 기무부대원을 3~4명씩 상주시켰다. 기무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문건을 보면 상주 목적이 민간인 사찰에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건 내용을 보면, “○○○ 등 2명이 사체 전원 수습을 강하게 주장. 나머지 가족들은 온건한 편이나 강경 성향자 2명에 끌려다니는 분위기” “○○○씨의 이성적 판단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태로 심리 안정을 위한 치료 대책 강구 및 온건 성향자로부터 개별 설득 필요” “강경. 직업은 공사장 식당에 음료수 납품. 4대 독자 희생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 지대” “강경. 실종자 가족들의 여론 주도, 실질적 대표 자격 행사. 남편도 아내의 극단적 행동에 부담 토로, 같이 있는 것을 기피” 등이다. 유가족과 대책위 인사들의 활동 동향과 관계, 경력 등을 정리하고 성향을 강경·중도 등으로 분류한 것이다.

기무사가 자신들이 하는 행위의 위법성을 잘 알고 있었던 사실도 문건으로 확인됐다. 당시 현장 상주 부대원들에게는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우발 상황 때는 실종자 가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답변하라”는 내용과 함께, △통화·문자 보고 시, 충성구호 등 군 관련 용어사용 금지 △문자 발송 시 현장 이탈 뒤 송수신 후 즉시 삭제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사복착용 사진) 외 일체의 신분증 소지 금지 등의 지침이 하달됐다.

이런 민간인 사찰 동향은 보수우익단체 쪽에도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 문건에는 세월호 촛불집회 등에 실시간 맞불 집회를 열 수 있도록 좌파집회 정보를 달라는 보수우익단체 쪽 요청에 응해, 세월호 사고 관련 시국집회 정보를 제공한 사실도 확인된다.

앞서 군검찰이 기소한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 김병철 전 기무사 3처장의 공소장에는 이들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지시를 받아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가 담겼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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