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특파원리포트] '내 뒤에는 러 폭격기가 있다'..마두로, "美 암살 조종" 맹공

이재환 입력 2018.12.15. 13:09 수정 2018.12.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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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략폭격기 '백조' 카라카스 배치】

지난 10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외곽 마이케티아 공항에 육중한 비행체 2기가 무게에 걸맞지 않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착륙했다. '백조'라고도 불리는 최대 중량 270톤의 이 거대한 비행기는 소리의 속도보다 2배 빠르게 비행할 수 있는 러시아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투폴례프(Tu)-160 이다.

재래식 무기와 사거리가 5천5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핵 순항미사일을 탑재하고도 7천3백 킬로미터의 작전 반경을 갖는 러시아의 핵심 전략 자산이다. 또, Tu-160 외에 대형 수송기 1대와 여객기 1대, 그리고 100명의 러시아 공군 조종사와 정비요원 등도 함께 도착했다.

러시아 공군기들은 대서양과 바렌츠해, 노르웨이해 등을 지나는 항로를 따라 무려 만 Km 이상을 비행했다. 베네수엘라 국방장관은 러시아의 공군기 배치는 필요할 경우 최후 순간까지 베네수엘라를 방어할 준비를 보여준다며 러시아와의 끈끈한 연대감을 강조했다.


【미국 '뒷마당' 카리브해 상공 연합훈련】

러시아 국방부는 12일 이 전략폭격기가 중미 카리브해 상공을 약 10시간 비행했고, 양국 조종사가 공중 협력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합 훈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함정 나포 이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긴장이 커진 상황 속에서 이뤄졌다.

카리브해는 미국에게는 뒷마당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이런 연합 훈련은 베네수엘라를 쿠바와 함께 미국 견제를 위한 중남미 지역의 핵심 동맹국으로 삼으려는 러시아의 계획과, 외부의 적을 만들어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의 불만과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는 마두로 정부의 계획이 맞아 떨어진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은 폭격기 배치와 관련해 " 두 부패 정부가 국민들이 고통받는 사이에 국가 자산을 낭비하면서 자유와 독립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연합 훈련에 대한 대응은 나오지 않았다.

【"연간 물가상승률 130만 퍼센트"】

연간 물가상승률이 '백만 퍼센트'가 넘는다는 게 상상이 될까?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남미 베네수엘라 의회가 최근 밝힌 1년간 물가상승률은 129만9천 퍼센트이다. 이러한 살인적 물가 상승을 최저임금도 숨가쁘게 따라가고 있다. 12월 1일 올린 임금 상승률은 150%, 올들어 6번째, 2013년 마두로 대통령 집권 이후 25번째다. 그렇지만 임금을 수십 배 올려도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기에는 벅차 보인다.


【저조한 투표율, 민심 이반】

최근 치러진 2,400여 명의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투표율이 27%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과거 차베스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차비스타' 핵심 지지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로부터 정부 신뢰가 추락하고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마두로 정권에게 남은 유일한 지지 세력은 군부다. 이 때문에 현직 군 장성들에게 공기업의 수장을 맡기는 등 군부 달래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강화는 자신의 외교 역량을 과시하고 대외적으로도 자신의 건재함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추진했을 것이다. 더욱이 러시아 전략폭격기가 마두로 대통령에게는 만용을 부릴만한 여유를 준 것일까? 폭격기가 배치된 뒤 얼마 되지 않아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나섰다. 경제 위기는 미국의 봉쇄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 온 데 이어 이번에는 미국 백악관이 자신의 암살을 계획하고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군기지에서 용병 훈련 조종"】

마두로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기 위한 계획을 주도했다"며 볼턴은 콜롬비아와 미국에 있는 군 기지에서 용병 훈련을 조종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현직 경찰에 의한 대법원 청사 등 건물에 대한 헬리콥터 공격과 올해 8월에 일어난 드론 폭발 등 자신을 겨냥한 암살 기도의 직접적 배후가 미국 백악관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마두로 대통령은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11월 미 언론의 보도가 있던 터에 국민들의 반미 감정을 자극하고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될 경우 경제가 더 악화될 것에 대한 비난을 미국으로 돌리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현금 대신 타이어 10개 지급한 이유는】

타이어 제조사 피렐리와 브리지스톤, 베네수엘라 국민 75%가 아침 식사로 먹었던 시리얼을 제조했던 켈로그사 등 베네수엘라내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폐쇄한 데 이어 최근 미 타이어 제조사 굿이어도 철수를 결정했다.

달러 대비 볼리바르 소베라노 화폐의 가치가 끝없이 추락하자 기업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굿이어사는 근로자들에게 퇴직에 대한 보상으로 임금 대신 타이어 10개씩을 지급했다. 화폐가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경제 상황에서 품질 좋은 현물이 암거래 시장에서 더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국민, 기업 모두 엑소더스를 하는 상황. 기업 주재원들의 자녀가 다니는 외국인 학교까지 문을 닫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4일에는 '엘 나시오날' 베네수엘라 신문이 마지막 발행을 끝으로 75년 만에 인쇄를 멈췄다. 수입 용지의 부족과 경제 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엘 나시오날은 종종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가하는 등 정론지의 길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탄압과 방해에 시달려 왔고, 세무감사와 각종 소송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엘 나시오날' 편집진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중요 뉴스를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이라며 온라인 판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지난달에는 독일 프리랜서 언론인이 경제 위기 상황과 국민들의 국외 탈출 상황을 취재하던 중 스파이 혐의로 베네스엘라 정부에 억류됐다. 마두로 정권의 실정을 감시하고 이를 알릴 언론사가 인쇄를 중단하고 언론인까지 억류되는 언론 환경에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눈과 귀는 정부의 발표만을 보고 듣게 되는 암흑의 나라로 변해 가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 또한 자신의 실정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힘이 작용해 일어난 것이라며 국민들의 불만을 또 돌리려 하지 않을까.

이재환 기자 (happyjhl@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