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 논란, 카풀 이후가 더 문제

송진식 기자 2018. 12. 1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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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가 택시 노동자의 분신사망이라는 비극을 남긴 채 일단 도입이 무기한 연기됐다. 여러 논문에서 분신은 가장 극단적이고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꼽힌다. 그 목적도 저항이나 항의의 표현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분신사건이 드물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먼저다’가 국정철학인 문재인 정부에서 택시 노동자의 분신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13일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8.1%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카카오 카풀 논란은 단순히 이용자의 편의성 증대나 택시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국한돼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카풀은 세계적인 유행이자 흐름이라는 ‘공유경제’를 대표하는 서비스다. 카카오 카풀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유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이 때문에 카카오 카풀 논란은 앞으로 시작될 공유경제에 대한 논란의 서막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대통령 직속 4차위도 못 푼 문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카풀 서비스가 논란이 된 건 진작부터다. 2016년 5월 ‘풀러스’라는 카풀앱이 출시돼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후 현재는 카카오가 인수한 ‘럭시’라는 업체를 비롯해 유사운송업체 논란을 부른 ‘차차’와 렌터카를 통한 카풀 서비스를 선보인 ‘타다’ 등 유사 서비스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국내에서는 이미 글로벌 업체인 ‘우버’가 운송서비스를 하려다 불법 판정을 받고 사실상 퇴출된 바 있다. 카풀의 경우 현행 여객운수사업법에서 일정 부분 허용하고 있기도 하고, 초기에는 업체 규모도 크지 않아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논란에 불이 붙은 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지난해 카풀을 의제로 삼으면서부터다. IT업계에서는 이미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공유경제 기업이 등장한 상황에서 국내에서만 공유경제가 막혀 있다는 데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IT업계의 민간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하는 4차위에도 당연히 관련 민원이 쏟아졌다.

4차위 내부에서도 카풀이 비활성화되는 원인을 놓고 “정부가 규제를 앞세워 공유경제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4차위는 이에 정부, IT업계, 택시업계 등을 모아 카풀 서비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려 했다. 4차위는 1년 넘도록 택시업계에 논의 참여를 설득했지만 택시업계는 끝내 참여를 거부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1기 4차위는 카풀에 대한 이렇다 할 결론을 못 내리고 활동을 종료했다.

택시업계는 4차위가 카풀 논의에 나서는 배경 자체가 전면적인 카풀 허용에 있다고 봤다. 택시업계의 한 관계자는 “논의를 하자는 것 자체가 서비스 허용을 전제로 깔고 있다”며 “논의에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4차위는 단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먹거리만 발굴하는 곳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사회 변화와 그 영향, 문제점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런 4차위에서조차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카풀 문제는 정상적인 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살얼음판을 걷던 카풀 문제는 정부가 ‘혁신성장’을 본격 추진하면서 폭발 직전에 달한다. 정부는 혁신성장의 예로 공유경제를 거론했고, 경제부총리와 함께 혁신성장을 이끌 민간본부장으로 이재웅 쏘카 대표를 영입했다. 이 대표가 9월에 본부장이 되자마자 택시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쏘카는 교통·운송부문에서 공유경제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업이었고, 이 대표는 쏘카의 최대주주이기도 했다.

■카카오의 ‘무리수’가 화를 불렀나

혁신성장이 등장하면서 택시업계와 IT업계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카카오의 자회사로 ‘카카오택시’, ‘카카오대리’ 등을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10월 16일 “카풀 서비스를 위한 크루(운전기사)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택시업계는 대규모 집회와 함께 운송 중단 등 파업을 예고하며 강경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문제를 풀지 못하자 정치권에서 나섰다. 여당 내 카풀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지고, 국회에는 카풀 관련 여객운송법 개정안이 속속 제출됐다. 11월 들어서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본격적인 법안 심사에도 착수했다.

카카오가 12월 7일 “카풀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다. 17일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화약고에 불을 던져넣는 격이었다. 나흘 뒤 한 택시 노동자가 국회 앞에서 결국 분신사망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택시업계의 저임금 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주된 내용은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시작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었다.

의문이 드는 부분은 ‘카카오가 굳이 이 시점에 왜 카풀 서비스 도입을 선언했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택시업계의 반발과는 달리 카카오는 카풀로 인한 수익 창출이 택시업계에 위협이 될 수준이 아니라고 봤다는 것이다. 카카오가 카카오택시 서비스 출시 후 발간해온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는 택시 서비스 이용자들의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정확도가 높은 각종 통계를 공개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리포트를 보면 이용자 한 명당 택시 1회 이용시 평균 이동거리는 약 8.3㎞다. 서울시청에서 반포 정도까지의 거리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가 하루 2회로 제한되는 점을 감안하면 카카오의 카풀 크루가 하루에 기대할 수 있는 운송수입은 1만6000~2만원 내외. 여기서 기름값과 수수료 등을 빼면 공휴일을 제외하고 22일을 일해도 한 달 수입이 30만원을 넘기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카카오가 “택시가 부족한 시간대에 기존 시장을 침범하지 않고 운행이 가능한 카풀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나설 수 있던 배경에도 이 같은 데이터가 있다.

하지만 카카오가 의존해온 동시에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카카오라는 플랫폼이 갖는 ‘위력’이다. 택시업계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통해 카카오가 시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해 왔다. 2015년 3월 카카오택시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 올 9월 기준 카카오택시 가입자는 2020만명에 달한다. 이 중 실제 택시 서비스를 이용한 사용자도 1600만명이 넘고, 하루 최대 90만건의 서비스 이용이 이뤄진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택시운전자의 83%인 22만명이 카카오택시앱을 이용한다. 3년 만에 카카오는 택시 시장을 평정한 것이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관계자는 “카카오 카풀이 처음엔 하루 2회만 운행한다고 하고 일단 진입한 뒤 시장이 확대되면 하루 3회, 4회 등 계속 운행량을 늘려나갈 게 뻔하다”며 “궁극적으로는 과거의 우버처럼 돼 결국은 택시업계를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카오가 여론에 힘입은 ‘밀어붙이기’를 통해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카풀 서비스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반면 국회에서 현재 논의 중인 여객운송법 개정안들을 보면 결코 카카오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에는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개정안 중 황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아예 카풀을 못하도록 현행법을 고치자는 쪽이다. 카카오로서는 가장 피해야 할 개정안이다. 문 의원과 이 의원 법안의 경우 카풀의 운행시간을 오전 7시~오전 9시, 오후 6시~오후 9시 등으로 명확히 규제하는 방향이다. 이 경우 일일 운행횟수만 2회로 제한하되 운행시간에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방침과 배치된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혁신성장 차원에서 카풀을 해야 한다는 정부·여당과는 달리 야당에서 카풀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 강해 카카오 입장에서는 강하게 사업 의지를 보여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카카오가 어려운 싸움을 하느라 무리를 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도 분신사태로까지 문제가 커지자 말을 아끼면서도 카카오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한 정부 관계자는 “택시 노동자 사망 이후 원망과 욕설을 퍼붓는 전화가 종일 걸려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전국택시산업 종사자들이 10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약탈 경제’ 논란 앞으로가 더 문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2일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하고 택시업계와 계속 대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여당 내 TF도 추가 논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도 카카오가 카풀을 본격 시작하기 전에 현재 택시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점 개선 및 택시 노동자 처우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벼랑 끝으로 내달리던 카풀 논란이 한 택시 노동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멈춘 셈이다.

카풀 논란의 정점에 있는 카카오가 굴지의 대기업이라는 점과 카풀에 이용되는 플랫폼 역시 시장의 절대적인 지배자 위치에 있다는 점을 들어 카카오의 카풀을 ‘약탈 경제’로 비판하는 시각도 나온다.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혁신이나 공유로 포장됐지만 카카오 카풀의 실상을 뜯어보면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기존 중소사업자의 시장을 흡수해 독식하는 방식으로 흐르게 된다. 카카오대리 서비스도 그랬다”며 “카풀 역시 결국 대기업이 중소상인의 먹거리를 빼앗아가는 약탈 경제”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정부도 내부에선 일자리를 늘린다는 차원에서 카풀을 생각하는 거 같은데 운송사업에 각별한 규제와 관리가 있는 이유가 바로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부분”이라며 “반면 카카오카풀은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도 정부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공유경제의 약탈 논란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 기업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동안 미국과 스페인 등지에서는 기존 택시, 숙박 사업자들의 피해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유경제 앱을 통한 프리랜서·임시직 형태의 경제를 뜻하는 이른바 ‘긱 경제’의 경우 노동자의 기본권 문제나 착취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카풀을 시작으로 아직 본격화되지 못한 공유숙박 등 카풀과 유사한 모델의 공유경제가 속속 등장할 전망이다. 공유경제의 약탈성에 대해 카풀 논란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이광석 교수는 저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을 통해 “최근의 공유경제는 무늬만 재화와 노동을 나눌 뿐 나눈 것의 민주적 분배나 보상, 사회적 증여 효과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오히려 우리를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평등화하는 긱 경제로 몰아넣고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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