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소바·캔디.. 후쿠시마에서 온 가공식품

백철 기자 2018. 12. 1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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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저희는 안전하다고 믿어서 수입한 겁니다.”

한 일본 식품 수입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이 업체는 올해 두 차례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식품첨가물을 수입했다. 최근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라멘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우리는 지금껏 후쿠시마 물건을 수입했다고 항의를 받거나 한 적은 없다. 일본에서 방사능 검사를 받고 수입했고, 국내에서도 검사를 통과했기에 우리 제품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식품 어떻게 국내 들어오나 2013년 9월,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등 8개 현(후쿠시마, 군마, 토치기, 치바, 이바라키, 이와테, 아오모리)의 수산물 수입을 완전히 중지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대량 유출된 직후였다. 이미 후쿠시마 등 13개 도·현 27개 품목의 농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조치도 내려진 상황이었다.

가공식품의 경우 전면 수입 금지조치는 없었지만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부터는 국내 수입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2011년 5월 1일,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및 주변 13개 도·현에서 난 식품을 수입하려면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방사능(요오드, 세슘) 검사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13개 도·현은 후쿠시마 등 8개 현에서 야마가타·니가타(이상 두 현은 후쿠시마현 서부), 가나가와·시즈오카·도쿄도(후쿠시마 남부 해안가), 나가노현을 더하고, 아오모리현을 제외한 것이다.

이 외 지역에서 만들어진 일본 식품들도 방사능이 오염되지 않은 지역에서 제조 및 가공되었음을 입증하는 내용의 증명서를 제출하게 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일본 식품은 각 지방 식약청에서 방사능 검사를 받는다. 그 전에 먼저 사람의 오감을 이용해 조사하는 관능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제품의 냄새, 색깔, 포장상태 등을 보고 해당 식품이 국내에 유통돼도 괜찮은지 판단하는 절차다. 수입업자가 신고한 제품의 성분과 제품의 실제 성분이 일치하는지 표본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관능검사가 끝나면 지방 식약청 건물 내에 있는 시험분석실에서 일본 식품에 대한 방사능 표본조사가 진행된다. 식약처는 일본 식품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식품의 표본을 채취한 뒤 방사능검사기에 돌려 세슘과 요오드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일본에서 이미 방사능 검사를 마친 식품도 예외 없이 국내 검사절차를 밟는다. 그 결과는 식약처 홈페이지의 ‘방사능 검사현황’란에 업데이트된다.

우리나라의 방사능 기준치는 세슘의 경우 ㎏당 100베크렐, 요오드는 ㎏당 300베크렐이다. 베크렐은 방사성 물질이 1초에 한 번 붕괴하는 것을 표현한 단위다. 기준치를 넘은 경우에는 당연히 반송된다. 또한 기준치 미만이라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될 경우 식약처에서 실질적으로 국내 유통을 막고 있다.

식약처는 기준치 미만이라도 방사능이 검출될 경우 수입업체에 플루토늄, 스트론튬 등을 추가로 검사한 결과인 ‘기타 핵종 검사증명서’를 추가로 첨부케 한 뒤 다시 수입절차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기타 핵종 검사증명서를 요구받은 업자들 중 지금까지 증명서를 제출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미량이라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제품이 국내에 유통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전한 불안감, 수입되는 후쿠시마 식품

식약처의 철저한 일본 식품 검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2014년부터 한국소비자연맹과 함께 ‘식품 중 방사능에 관한 인식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에는 일본산 수산물을 사지 않았거나 구입 빈도가 줄었다는 응답이 64.4%였다. 지난해 조사결과에서는 이 비율이 85.2%까지 늘어났다.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규제에 대해서는 2014년 조사부터 90% 이상이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조사결과에서는 응답자의 92.5%가 수입규제 강화에 답했다.

가공식품에 대한 불신은 수산물보다는 적다. 지난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본산 화장품 및 가공식품을 구입하지 않거나, 구입 빈도를 줄였다는 응답은 70.4%로 수산물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보다는 약간 낮게 나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쿠시마 라멘 사태가 터졌다. 유통사인 홈플러스에서 후쿠시마 라멘을 매장에서 전량 철수시키면서 논란은 일단락된 모양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확인해본 결과 지금도 후쿠시마 등 8개 현에서 만들어진 가공식품들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라멘, 소바 등 일본의 대표 음식은 물론이고 스낵류, 캔디, 와사비, 식품첨가물 등도 있다. 베이컨 등 술안주, 파스타 소스 등 각종 양념류도 보인다.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에는 수입식품의 정보를 검색하는 기능이 있다. 제조사 이름에 후쿠시마 및 8개 현의 이름을 넣어 봤다. 실제로 후쿠시마 및 8개 현에서 생산된 것만 추려도 지난 2년간 최소 342건의 가공식품 등이 국내에 들어왔다. 제조사명에 지명을 쓰지 않은 제품들까지 고려하면 342건보다 더 많은 수가 국내에 유통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화제가 된 후쿠오카 라멘의 정확한 명칭은 키타카타 라멘이다. 애초 후쿠시마현의 명물로 소문난 제품이었다. 그 외에도 참깨 드레싱, 밀크 캔디, 딸기향 식품첨가물 등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검색됐다.

수산물 수입이 완전 금지된 8개 현에서 만든 수산물 가공식품도 다수 눈에 들어왔다. 수산물 가공식품 수입 횟수가 가장 많은 곳은 후쿠시마현 북쪽의 이와테현이다. 이와테현에서 만든 연어 후레이크, 꽁치 조림, 정어리 데리야키 등이 국경을 넘어 국내에 유통됐다. 후쿠시마현 남쪽인 이바라키현에서는 냉동 간장절임 연어알 제품이 국내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먼저 수출을 금지한 품목도 공교롭게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이다. 지난해 6월부터 일본은 4차례에 걸쳐 자국 상품의 출하를 제한했다. 출하가 제한된 제품의 생산지는 이와테현, 니가타현, 미야기현, 군마현이다. 모두 후쿠시마와 맞닿은 곳들이다.

일본 방사능 위험 지금은 줄었나 후쿠시마 등 8개 현은 2011년부터 방사능 피해를 가장 크게 본 것으로 손꼽혀 왔다. 이바라키·치바현은 후쿠시마 남부 해안가, 미야기·이와테·아오모리현은 후쿠시마 북부 해안가다.

후쿠시마현 남서쪽의 토치기현과 군마현은 내륙지역이라 과거에 민물고기만 한국에 수출한 적이 있다. 2011년 11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방사성 물질 오염지도에 따르면, 사고 직후 방사성 물질이 가장 많이 퍼져나간 곳이 토치기·군마현이었다.

7년 전에 비해서는 방사능 오염도가 많이 줄어들긴 했다. 올해 12월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방사성 지도에 따르면 핵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현 오쿠마정의 경우 아직도 시간당 8마이크로시버트에 해당하는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 국내 피폭 기준치는 연간 1밀리시버트(1000마이크로시버트)다. 이를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대략 0.2마이크로시버트가 나온다. 다만 오쿠마정에서 30㎞ 이상 벗어난 지역은 시간당 방사선량이 0.2마이크로시버트를 밑도는 곳이 많다.

시민단체에서는 일본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간사는 “일본 정부의 발표를 우리 시민들이 그대로 믿을 이유가 없다. 후쿠시마와 그 주변 지역은 산악지역이 많기 때문에 제염(방사능 오염물질 제거)이 완전히 됐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의 한 실장급 인사는 여전히 후쿠시마 일대가 방사능으로 오염됐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일본은 토양의 특성 등으로 인해 우리보다 자연 방사성이 낮게 나온다. 그런데 후쿠시마현에서 아직도 피폭기준치 방사선량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해당 지역이 오염됐다는 것을 나타낸다”며 “일본 정부에서 열심히 제염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사고가 났을 때보다 방사선량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2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계무역기구(WTO)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방사능 식품 공포심은 왜 원자력 전문가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두 번에 걸쳐 방사능 테스트를 거치는 만큼 일본 식품에 대해 막연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원자력 학자는 후쿠시마산 라멘 사태에 대해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냐보다 중요한 건 어떤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검출됐느냐다”라며 “두 번이나 방사성 검출이 안된 것으로 판명난 제품이면 안심해도 되는데 후쿠시마라는 단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승숙 여성원자력전문인협회 회장은 전문가들이 ‘사실’ 전달에만 그쳐서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의 인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팩트를 전달하겠다고 열심히 활동한다 해도 오히려 반감만 얻을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전문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특히 방사능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의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 문제라고 봤다. 이 교수는 ‘핵마피아’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국내 원자력 최고 전문가들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테스트한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원전 비리가 나오고, 원전사업과 연결된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하니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원전 마피아들은 윤리성이 없는 집단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박혀 있다 보니 전문가들의 정보가 권위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전문가들이 잃어버린 신뢰성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공개로 투명성을 높이자

한편, 시민단체에서는 지금보다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경숙 간사는 “지금은 원산지 표시가 국가명만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고 지역명은 의무가 아니다. 일본 식품에 대해서만큼은 현 단위까지 원산지 표시를 하는 등 보다 자세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에서 국내에 수입되는 모든 수입식품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또한 식약처 홈페이지에는 수입식품 방사능 검사현황이 매일 업데이트된다. 방사능 검사현황에서는 일본의 어떤 현에서 만든 식품을 검사했는지 나오지만 업체명과 상품명은 나오지 않는다. 식약처와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만 들여다봐서는 소비자가 내가 산 일본 식품의 정확한 출처까지 알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식품 중 방사능에 관한 인식조사’도 식약처가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은 자료다. 지난해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5.5%가 ‘후쿠시마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일본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답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을 통해 내용의 일부가 공개되거나, 인식조사에 관여한 한 전문가가 학회 등에서 발표하면서 그 내용이 알려진 게 전부다.

특히나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 수입 금지조치에 대해 일본 정부로부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당한 상태다. 환경단체, 원자력 전문가 너나할 것 없이 우리 측의 WTO 패소를 우려하고 있다. 지금도 일본 식품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WTO 패소로 인해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이 들어오면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올해 2월, 1심에서 일본 정부에 패소했다. 이덕환 교수는 “우리가 패소했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수산물 수입 금지조치가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정부에만 요구를 해서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자유무역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무역규제를 하면 할수록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뿐이라는 얘기다. 대신 이 교수는 수입업자를 상대로 한 소비자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국제기준에 맞게 무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 식품 수입을 원천금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수입업체가 후쿠시마 등 몇 개 현의 물건을 수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간섭할 수는 없다”며 “소비자들이 수입업자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원산지를 속여서 수입하는 업자를 퇴출시킨다면 소비자의 불안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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