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수산물 WTO, 첫 단추를 잘못뀄다

이하늬 기자 2018. 12. 1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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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에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 재개를 중단하고 방사능 오염 폐기물 수입을 금지시키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수입식품은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 등장했다. 식품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 고철, 폐기물, 시멘트 등의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7년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첫 단추를 잘못 뀄기 때문이다.

의외로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과 2012년에는 식품보다는 폐기물과 화물이 논란이 됐다. 2012년 5월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석탄재에서 최소 검출치 한계를 초과한 세슘이 검출됐고,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재활용 원료로 일본에서 수입한 폐배터리와 폐플라스틱에서 한계치 이상의 세슘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은수미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은 일본에서 수입한 폐플라스틱 등에서 최소 한계를 초과한 세슘-134와 세슘-137 등이 검출됐다고 지적했다. 박원석 당시 정의당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 반경 250㎞ 이내 지역에서 국내로 반입된 컨테이너 및 벌크화물 33만6713건 중 3.7%만 관세청의 방사능 검사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일본산 식품에 대한 논란이 적었던 이유는 일본이 자체적으로 후쿠시마와 인근 몇 개 현에서 생산된 농산물 27개 품목에 대해 출하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산물은 예외여서 계속 수입됐다.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당시 중국, 러시아, 대만 등 많은 나라가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지만 한국 정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농산물도 일본이 출하하지 않은 것이지 한국 정부가 막은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일본이 막았지 한국은 한 게 없다?

일본산 식품에 대한 논의는 2013년부터 국회에서 활발해졌다. 2013년 8월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해양 오염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정부는 9월 6일 ‘임시특별조치’를 시행했다.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생산하는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였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전수검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쿠시마를 비롯한 인근 현의 모든 식품을 잠정적으로 수입 중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당시 무소속 의원은 “원전사고 후 식약처가 단 한 차례도 일본 현지실사를 하지 않았다”며 식약관 파견과 현지실사를 주문했다.

일본산 식품을 원산지를 속여 수입하려다 적발된 경우도 있다. 2011년 1억4030만원어치의 일본산 명태를 중국산으로 둔갑시켜 수입하려 한 게 대표적이다. 김현미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 8월까지 1억5349만원어치 일본산 식품을 국내산, 중국산 등으로 원산지를 속여 수입하려다 적발됐다.

이런 지적에도 후쿠시마와 인근 현에서 생산된 식품과 수산물 유입은 꾸준히 증가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후쿠시마산 식품은 원전사고 직후인 2012년에는 전년 대비 32.6% 줄었으나 2015년 21.5%, 2016년 52.1% 증가했다. 2011년 수입량 급감도 일본의 출하 금지 영향이 크다.

후쿠시마뿐 아니라 일본산 식품 수입 전체규모도 증가했다. 남인순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원전사고 이후 2017년까지 일본산 가공식품과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등의 수입 추이는 2012년 7만5099톤에서 2017년 16만4916톤으로 증가했다. 6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별다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손쓰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 5월, 한국의 수입 규제조치가 ‘위생 및 식품위생(SPS) 협정’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는 2018년 2월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방사능 측정장비를 이용해 수산물 방사능을 검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서 정부 대응 촉구해야

WTO는 한국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봤다. ▲후쿠시마 인근 8개현 수산물 수입 금지와 일본산 식품에 기타 핵종물질 추가 요구 등의 목적과 위험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설명을 듣지 못했고 ▲한국 민간전문가위원회는 후쿠시마 인근 해저토와 심층수 채취 조사를 하지 않았으며 ▲한국 정부가 2014년 9월 수입 규제 검토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활동 및 기록이 없고 ▲검토 중단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기호 민주당 통상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꾸려진 ‘민간전문가위원회’가 방사능 위험 보고서 작성이라는 최종 절차를 끝내지 않고 해체된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WTO에 “민간전문가위원회는 한국 정부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다.

송 부위원장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특별임시조치’를 대외적으로도 ‘임시’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한국은 해당 조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임시가 아닌 통상의 조치를 해야 했다. 통상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WTO가 규정하는 ‘위험평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위험평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통상조치도 못 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WTO에서 패소한 직후인 4월 상소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지만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기도 해 비공개가 원칙이다. 때문에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도 경과보고나 정보보고를 받아볼 수 없다.

이에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간사는 “정부가 바뀌었지만 이미 이전 정부에서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지금 바로잡기가 더 힘들어졌다. 민간전문가위원회가 일본 현지 조사만 제대로 했어도 이 상황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7년째 같은 걸 요구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남인순 의원실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한국 국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1차에서 패소했기 때문에 상황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꾸 의원들이 발언을 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에 계속 대응을 주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TO는 2심제로 이번 상소가 최종 판결이다. 최종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 정부가 설정한 조치가 유지된다. 만약 한국이 WTO에서 최종 패소하게 된다면 후쿠시마 인근 8개현의 수산물이 내년부터 수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최종 패소하더라도 일본산 모든 식품이 전면 수입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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