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40년의 기적..G2 부상 이후 커지는 도전 과제들

2018. 12. 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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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2월18일 11기3중전회로 개혁·개방 포문
"실제 상황 따라 경제 발전시켜야"..사상해방 선언
GDP 60배 확대·7억명 빈곤선 탈출..유례없는 성장

'중국제조 2025' 야심찬 계획 경제 최강국 노리나
성장률 저하 속 미국의 견제와 부채 등 한계 우려도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바로 개혁·개방 성공의 증거다.”

광둥성 포산의 에어컨 업체 즈가오의 창업자인 리싱하오(65) 회장은 개인사와 중국 경제 발전사를 분리할 수 없는 인물이다. “28살 때 길거리에서 막대 아이스크림 몇위안짜리를 팔던” 포산의 농민 출신인 그는 옷 상표를 만드는 업체에서 시작해 플라스틱, 금속, 생수 등 다양한 분야의 100여개 기업을 창업했다. 1990년대 들어 시작한 에어컨 수리업이 94년 대만 기업가와 합작한 즈가오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1만3천명의 직원을 둔 즈가오는 지난해 매출이 107억위안(약 1조7500억원)에 이르고, 200여 나라에 진출해 있다.

중국 에어컨 업체 즈가오의 리싱하오 회장이 자사 홍보모델인 배우 청룽(성룡)의 세움간판 앞에서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포산(광둥성)/김외현 특파원

중국공산당은 1978년 12월18일 11기3중전회를 통해 지도 사상을 ‘계급투쟁’에서 ‘경제건설’로 바꿨다. “실제 상황에 따라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침이 나왔다. 2년 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흑묘백묘론과 선부론의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 시점이었다. 덩샤오핑은 폐막연설에서 “사상 해방”이란 말로 대변혁의 시작을 알렸다.

직전인 그해 11월, 안후이성 펑양현 샤오강촌 농민 18명은 공동 농지에서 가구별로 할당한 생산량을 뺀 잉여 생산물은 각자 갖기로 하는 ‘불법’ 결의를 했다. 이듬해 1인당 수입이 크게 뛰었다. 나중에 중국공산당은 사유화와 시장경제의 힘을 보여준 이 마을을 개혁·개방의 발원지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은 위나 아래나 교조적 사회주의를 벗어나지 않고는 전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초 개항지이기도 한 광둥성이 ‘시장경제의 실험실’이 됐다. 덩샤오핑의 지침을 받들어 개혁·개방 초기 광둥성의 변화를 이끈 시중쉰 광둥성 제1서기는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다.

40년 만에 중국의 경제 규모는 60배 넘게 커졌다. 7억명 이상이 빈곤을 벗어났다. 배고픔을 달래던 시대에서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2010년 세계 2위 경제 일본을 추월한 중국 경제 규모는 2030년이면 미국도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있다.

강주아오대교. 강주아오대교 관리국 제공

중국은 개혁·개방 40돌에 발맞춰 10월 말 세계 최장 해상다리 강주아오대교를 개통했다. 대교는 주장 하구가 갈라놓은 동쪽(홍콩·선전·둥관)과 서쪽(마카오·주하이·포산)을 연결한다. 경제 발전의 상징인 주장삼각주 이곳저곳을 잇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찾은 강주아오대교는 55㎞에 걸맞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중국은 광둥성에 홍콩·마카오를 합친 연간 생산 규모가 약 10조위안(약 1640조원)으로, 한국(지난해 총생산 약 1730조원)에 필적할 수준이라고 자랑한다. 개혁·개방 10년이 된 1988년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개혁·개방을 “부패와 비효율로의 공개 초청”이라고 혹평했지만, 성공 스토리는 그 뒤로도 30년 더 이어졌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지구상 최대 국가를 급격한 변화의 길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수억 노동력을 자본주의 분업 구조에 편입시켜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준 사건이다. 처음에는 중국이 서구와 시장경제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지만, 지금은 중국을 빼고는 세계 경제를 얘기하기 힘들다. 가진 것은 노동력밖에 없던 중국은 초기에는 노동시장을 내주면서 자본과 기술을 얻는 ‘기술-시장 교환 전략’을 썼다. 이제 양적·질적으로 성장한 중국은 ‘자주 발전 전략’을 추구한다. 제조업 각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중국 제조 2025’는 이런 의지를 집대성한 계획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중반에 이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전 몇해 동안 10%를 웃돌던 경제 성장률은 이제 6%대로 내려앉았다. 경제가 커질수록 예전 수준의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100을 10%를 늘리려면 10을 보태면 되지만 1000을 그 비율로 키우려면 100을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등 고도 성장을 경험한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현상이다.

중국 전문가로 <덩샤오핑 평전>을 쓴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인구가 10억명이 넘는 큰 나라의 개혁·개방은 따라갈 수 있는 전례가 없다. 돌다리 두들기며 건너듯 한편으로는 실험하고 한편으로는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지닌 가능성과 위험을 표현했다.

포산 광저우 장먼/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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