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짜뉴스 사서 스펙 만든 현대판 '김선달'

입력 2018.12.17. 13:08 수정 2019.01.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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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IT전문가·의사·부동산전문가 사칭한 서준혁씨
비결은 언론홍보대행사 통한 가짜뉴스 배포
대행사는 단가표 올려놓고 버젓이 기사 장사
언론사는 아무런 제재 받지 않아

과거에는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만 기사를 살 수 있었다. 대기업쯤 돼야 광고로 입맛에 맞는 기사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누구든 싼값에 기사를 살 수 있게 됐다. ‘보급형’ 기사 판매 시장의 등장으로 언론의 신뢰도는 더 떨어졌다. 누군가는 그 시스템을 비집고 저렴하게 사기를 칠 수도 있게 됐다. <한겨레21>은 전문가를 사칭하는 한 인물의 뒤를 좇았다. 그가 했던 방식 그대로 ‘기사 구매’를 통해 전문가로 변신해봤다.

조윤영 기자가 돈을 내고 언론사에 실은 가짜뉴스를 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서준혁(40). 그는 정보기술(IT) 전문가이자 의사이자 부동산 전문가다. 나이 마흔에 이리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걸 보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사가 된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도 출연해 유창한 화술을 뽐낸다. 그가 전문가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씨가 2016년부터 최근까지 주요 일간지를 포함해 수십 개 언론사에 자신을 소개한 내용을 모아보면 이렇다.

IT 전문가이자 의사이자 부동산 전문가

서준혁씨가 2016년 SNS 프로필로 썼던 의사 사칭 사진(왼쪽). 명찰에 ‘게이오대학병원’이라고 쓰여 있다. 서준혁씨가 ㅅ공단에 보낸 제안서에 포함된 이력서. 메디게이트뉴스

1978년 출생, 1997~2016년 일본 게이오대 IT 프로페서 코스(Professor Course) 조교수, 게이오대 병원 신경정신과 수련의,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임상시험센터 협력교수, 2017~2018년 LH 투자유치자문관, 서천군 투자유치자문관, 서울시 도시재생 연구위원, 일본 게이오대 MBA(경영학 석사), 한국토지정보연구소 수석컨설턴트, 글로벌 자랑스러운 인물 대상. (서씨가 공공기관에 보낸 이력서에 쓴 내용 포함)

현란한 프로필에 압도된다. 그런데 이 경력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서준혁씨는 이미 20살에 해외 명문대 교수가 됐다. 그러면서 의대 입학과 인턴·레지던트는 언제 했는지 신경정신과 의사로 변신한다. 그리고 2017년엔 부동산 전문가?

서준혁씨가 ㅅ공단에 제공한, LH 사칭 명함이 인쇄된 책자. ㅅ공단 관계자

거짓말이다.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일본 게이오대(“재직 사실이 없다”), LH(“사칭에 대해 이미 경고했다”), 서울시(“도시재생 연구위원이란 직함 자체가 없다”) 등 상당수 경력이 허위다. 실제 서준혁씨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왔던 일은 동대문 의류 도매상과 대리운전 기사 등이다.

그의 사칭이 처음 들통난 때는 2016년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할 때였는데, 서씨는 원격의료가 앞서 시행된 일본의 의료IT 전문가로서 각종 언론 인터뷰를 했다. 그러다 의학 분야 전문지에 ‘의사 사칭’ 사실이 걸렸고, 그는 잠시 사라졌다가 다음해 부동산 전문가로 변신해서 다시 나타났다. 2016년 서씨를 인터뷰하거나 다뤘던 수많은 매체는 기사만 삭제했지 정정 보도를 하지 않았다.

서씨는 올해 전국 이마트 문화센터를 돌며 부동산 강의를 했다. 서씨는 취재진에게 “포항, 통영, 울산, 강릉 등 1년간 130회 강의를 했고 총 232만원을 받았다”며 “차비를 계산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말했다. 손해를 감수하며 전국으로 강의를 다니는 이유에 대해선 “부동산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을 구제하려는 순수한 공익 목적”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공공기관인 서울 ㅅ공단에서도 11월에 강의를 했다. 공단 관계자는 “서준혁씨가 LH 로고가 박힌 명함을 줬고, LH에서 발간한 책자를 나눠줬다”고 말했다.

서씨는 사칭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오해’라고 둘러댄다. 취재진과 한 통화에서 “서천에서 투자유치자문관을 할 때 LH가 관련된 사업도 있어서 직함을 사용해도 괜찮은 줄 알았다”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방송에 출연할 때 사용하는 ‘지자체 투자유치자문관’ 직함의 지자체는 어디냐고 묻자, 서씨는 “충주라이트월드 투자자문위원”이라고 답했다. 충주라이트월드는 빛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로, 충주시는 부지만 임대하고 투자는 민간회사인 ‘라이트월드 유한회사’에서 한다. “충주라이트월드는 지자체가 아니지 않냐”고 되묻자 서씨는 “오해가 있다면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소된 강의 기사를 6개 매체가 일제히 보도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은 최소한의 검증 절차도 없이 서준혁씨를 부동산 전문가로 5~10분가량 출연시켰다. 서준혁씨는 누리집과 방송 화면을 갈무리해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전문가도 아닌 서씨가 사칭을 하며 강의까지 다닐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바로 ‘기사’다.

<한겨레21>이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서씨의 직함이 거짓이라는 말에 “기사에 나왔는데…”라며 당황스러워했다.

12월13일 현재 네이버와 다음에서 ‘서준혁 자문관’으로 검색해보면, 제목에 “서준혁” 이름이 박힌 기사가 쏟아진다. 올 한 해만 서준혁씨와 관련해 50건 이상의 기사가 실렸다.

자세히 뜯어보면 이상한 기사가 많이 보이긴 한다. 예를 들어 “서준혁 자문관, 14일 울산 이마트 문화센터에서 ‘부동산 명견만리’ 강연”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다. 올해 8월13일 <동아일보> <중앙일보(미주)> <디지털타임스> <한국농어촌방송> <파이낸스투데이> <스페셜경제> 등 언론에 일제히 보도된 기사다.

생각해보자. 전국 80여 개 이마트 문화센터에서 날마다 수백, 수천 개의 강의가 열린다. 그중 하나인 서씨의 강의는 평균 참가자가 한 자릿수인 비인기 강좌였다. 서씨가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아니다. 최소 6개 매체가 동시에 보도할 정도로 기사 가치가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8월14일 강의는 기사가 나오기 사흘 전인 8월10일 취소됐다. 6개 매체는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아 오보를 낸 것이다. <동아일보> <한국농어촌방송> <파이낸스투데이> <스페셜경제>의 기사 하단에는 각 언론사 기자 이름이 적혀 있다. <중앙일보(미주)> 기사에는 작성한 기자 이름이 없다. <디지털타임스> 기사는 ‘인터넷 마케팅 기자’가 작성했다. <한겨레21>의 취재가 시작된 뒤 <동아일보> 기사는 삭제됐다.

서준혁씨는 주요 방송에도 출연했다. SBS <생활경제>, SBS CNBC <성공의 정석 꾼>, JTBC <아지트>, 채널A <김현욱의 굿모닝>, 서울경제TV <조영구의 트랜드 핫이슈> 등 정보 프로그램에 비중 있게 소개됐다. 부동산 전문가로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과 사기 피해를 본 사람을 상담해주는 장면이 연출됐다.

앞서 서씨도 실토했듯 방송 출연 시점에서 그가 쓴 ‘지자체 투자유치자문관’이라는 호칭은 근거가 없다. 방송사는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그를 5~10분가량 출연시켜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현재 SBS <생활경제> 방송분은 누리집에서 ‘비공개’로 바뀐 상태다.

그동안 사실이라 믿었던 정보가 거짓으로 드러날 때 사람들은 혼란을 겪는다. 신뢰를 판매하는 언론사에서 나온 정보라면 더욱 그렇다. 공단 관계자는 서씨의 사칭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자에게 반문했다. “기자님은 기자가 맞으세요?”

언론사별 ‘단가표’가 있다

ㅈ사가 공개한 언론사별 단가표.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왔다. 서씨와 관련해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기사는 어떻게 생산된 걸까. 기자가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서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ㄱ씨는 이런 말을 했다. “서준혁씨가 직접 기사를 쓴 뒤 ㅈ사라는 언론홍보대행사에 돈을 주고 기사를 출고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ㄱ씨 주장에 따르면, 일부 언론사들이 매체 간판과 기자 이름을 서씨에게 대여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은 셈이다. “서준혁씨가 ㅈ사의 단가표를 보여주며 다른 대행사보다 가격이 싸다고 했습니다.” 앞서 8월13일 보도된 울산 이마트 문화센터 강연 오보도 언론홍보대행 ㅈ사를 통해 나간 기사다.

ㅈ사 누리집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언론사별 단가표가 나온다. 일반, 병원, 부동산, 서면 인터뷰, (방문)취재 등 서비스별로 가격이 다르다. 그중 ‘일반’ 서비스를 보면 언론사 이름 옆에 가격표가 보인다.

<중앙일보>(잠시 중단) 27만원, <동아일보> 23만원, <경향신문>(잠시 중단) 18만원, <조선비즈>(잠시 중단) 15만원, <한국경제>(잠시 중단) 15만원, <머니투데이> 13만원, <아시아경제> 13만원, <디지털타임스> 8만9천원, <미주중앙일보> 7만9천원, <스페셜경제> 6만9천원, <한국농어촌방송> <파이낸스투데이> 5만9천원 등 60여 개다. 부가세는 별도다.

방송은 단가가 높다. KBS <생방송 아침이 좋다> 1600만원, MBC <생방송 오늘아침> 1300만원, SBS <생활경제> 1100만원, JTBC <알짜왕> 900만원(5분), 1100만원(10분), 채널A <김현욱의 굿모닝> 700만원, 서울경제TV <조영구의 트랜드 핫이슈> 300만원 등이다. ㅈ사 관계자는 고객을 가장한 기자의 질문에 “고객님이 직접 방송 출연도 가능하다”고 했다. 돈만 내면 서면 인터뷰나 방문 취재도 요청할 수 있고,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상도 받을 수 있다.

사실 이런 단가표가 공개된 건 처음이 아니다. <미디어오늘>은 2016년 9월 광고대행사 K업체의 단가표를 입수해 보도했다. ‘9월_온라인_언론보도_단가표대행사용_저가’란 제목의 표는 ㅈ사의 단가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28만원, <매일경제>는 25만원, <경향신문>은 24만원, <노컷뉴스>는 22만원, <한국경제>는 20만원, <국민일보> <서울신문> <서울경제> <세계일보> <아시아경제>는 19만원, <뉴스1>은 15만원, <아주경제> <이투데이> 14만원, <전자신문> <디지털타임스> 13만원, <브릿지경제> 10만원 등이다.

서준혁씨는 “기사의 대가로 돈을 주지 않았다. ㅈ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제공했을 뿐이고 언론사에서 알아서 보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ㅈ사 대표도 단가표가 기사의 대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단가표는 언론사에 주는 광고나 협찬 개념이지 기사의 대가는 아니다. 서준혁씨가 보도자료를 주면 우리는 그게 사실인지 검수하고 언론사에 제공했다. 서씨 역시 우리를 협찬해줄 뿐이지 기사 출고의 대가로 돈을 준 것은 아니다. 서준혁씨가 출연한 방송은 우리와 관련이 없다.”

단가표는 기사 출고의 대가였다

그래픽 장광석

하지만 ㅈ사 대표의 말과 달리, 단가표는 기사 출고의 대가였으며 사실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취재진은 12월11일 고객으로 가장한 채 ㅈ사에 돈을 주고 언론사 3곳에 기사 출고를 요청했다. 하루 뒤인 12월12일 요청한 기사가 언론사 2곳에 실렸다.

조윤영 <한겨레21> 기자는 ㅈ사에 제공한 보도자료에 가상의 대학과 연구기관 경력을 적었고, 가상의 업체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누구든 검색 몇 번만 해보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엉터리 정보를 넣었다. 업체명도 ‘페이크’(거짓)라고 달았고 사업자등록증이 없다고도 밝혔다.

놀랍게도 언론사 2곳에서 연락 한 번 없이 거의 그대로 기사가 출고됐다. 돈을 받고 기사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은 채 출고한 것이다. 한 매체에선 서준혁씨의 울산 이마트 문화센터 강연 기사를 썼던 ㄴ기자가 <한겨레21> 가짜기사도 출고했다. ㄴ기자는 12월12일 하루에만 기사를 11개 출고했고, 11월 한 달 동안 모두 214개 기사를 출고했다.

이같은 기사 거래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근영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심의위원장은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위원회에서 논의도 여러 차례 했지만 실무적으로 기사 거래를 제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21>처럼 실제 돈을 내고 기사를 출고해봐야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데, 포털에서 그걸 하겠다고 하면 언론사들이 가만히 있겠냐”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기사를 가장한 광고는) 원칙적으로 표시광고법으로 제재할 방법이 있긴 하지만, 법 집행 과정에서 언론 자유와 충돌할 수 있고 기사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도 있다. 언론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언론 공멸할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심의위원회 제2소위원장)는 “이 시장이 더 커지면 가이드라인이나 규제 방안이 논의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자율정화밖에 방법이 없다. 기사 거래는 언론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로, 이대로 가면 결국 공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사 거래를 해주는 언론홍보대행사는 ㅈ사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털에 검색만 해봐도 수십 군데가 나온다. 이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며 가격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언론사의 문턱도, 그 신뢰도도 따라서 낮아지고 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한겨레>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보도자료 전재료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다만 기자 이름은 기사에 달지 않았고 ‘자료 제공’이라고 표시했습니다. 2014년 이런 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 중지했고, 그 뒤로 현재까지 돈을 받고 포털에 보도자료를 출고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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