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페이스북의 두 얼굴 [IT 칼럼]

2018. 12. 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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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속살이 드러났다. 세상 모든 것을 연결시키겠다는 거룩한 사명감 따위는 레토릭에 불과했다. 우리의 동의 없이 스마트폰의 통화내역을 수집했고, 문자메시지 내용도 가져갔다. 그리곤 ‘당신이 알 만한 친구’ 목록 같은 기능을 개선하는 데 활용했다. 바인이라는 경쟁사를 망가뜨리기 위해 데이터 접근권도 닫아버렸다. 대신 우호적인 기업들에겐 활짝 열어두었다. 저커버그는 “플랫폼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로이터 연합뉴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더 많은 사용자 데이터를 긁어모으기 위해 상호호혜성이라는 이름으로 외부 모바일앱의 데이터까지 퍼담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사용자들의 동의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사용자들이 올려놓은 데이터 흔적들을 마치 자신들 소유인 것처럼 행사했다. 저커버그의 일관된 오만함은 데미안 콜린스 영국 하원의원이 공개한 250페이지 문서에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페이스북은 미국 실리콘밸리 성장 기업의 상징이다. 기술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술 해법주의’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그다. 이들에게 기술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메시아적 도구다. 어떤 사회적 문제도 기술의 힘으로 완벽하게 해결 가능하다는 기술 만능주의를 신앙처럼 믿고 따른다. 페이스북은 “세상은 여전히 분열상태이므로 더 가깝게 만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술로 인간의 연결을 대체하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그것이 분열을 막고 모두가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길이라고 봤다.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을 응원했던 배경에는 누구도 달성해내지 못했던 인류 전체의 사회적 연결을 건강한 방식으로 달성해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그 기대는 순진했다. SNS라는 기술을 통한 전 인류의 연결은 결과적으로 더 큰 분열을 낳았다. 페이스북은 허위·조작 정보가 난무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확증편향은 강화됐고, 그나마 남아있던 상반된 이념적 그룹들 간의 연결고리는 도리어 끊겨가고 있다. 이들 집단 간의 신뢰는 파괴됐고,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연결은커녕 단절의 상처만 깊게 파여가고 있다.

기술적 해법주의의 오류보다 더 분노를 자아내는 건 실행 과정의 추악함이다. 인류를 위할 것처럼 내뱉던 선의의 발언 뒤에서 페이스북은 사용자를 무시하고, 경쟁사를 짓밟았으며, 유럽 의회를 우롱했다. 공개된 이메일의 행간에서 묻어나는 저커버그의 무자비함은 이 시대 실리콘밸리 자본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담고 있다.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다른, 지킬과 하이드의 현존성을 우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기술 해법주의는 사회와 기술의 공동 설계로 풀어나갈 수는 있다. 기술의 독선도 민주적 견제와 통제로 다듬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경영진의 본능에 각인된 그릇된 야심은 수리 자체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사용자의 동의나 프라이버시 따위는 얼마든지 무시해도 괜찮다는 거만함은 페이스북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 해법주의와 초자본주의가 만나면 페이스북과 같은 괴물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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