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환경문제를 넘어 '성장 동력의 기회'로 만들어야

이주영 기자 2018. 12. 2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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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4차 산업혁명과 미래 에너지산업 육성’ 주제, 3차 에너지기본계획 토론회 - 지상중계

2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우리만 화석 연료에 계속 묶여 있으면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갈라파고스처럼 될 수 있다.”(김희집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신산업 추진도 중요하지만, 현 산업을 어떻게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어갈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김현철 대한석유협회 상무)

2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토론회’에서는 에너지 전환을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을 넘어서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달 나온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워킹그룹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한 연속 토론회로, 이날 주제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에너지산업 육성’이었다.

참석자들은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이를 위한 규제 개혁과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주문했다. 또 원자력, 석탄·석유 등 기존 에너지업계가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 에너지산업과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은 에너지 분야에도 예외 없이 파고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보안, 비용,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 에너지업계의 오랜 고민들이 새로운 기술과 기기를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학 전자부품연구원 에너지IT융합센터 센터장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명확히 구분됐던 기존 시장이 앞으로는 소비자가 공급자 역할을 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바뀔 것”이라며 “분산된 자원을 모집해 전력을 공급하는 가상 발전소, 소규모 전력을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프로슈머의 등장 등 에너지 생산·소비 구조가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를 지원하기 위해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요금을 차등화한 계시별 요금제,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을 기존 요금보다 높은 가격에 구입하는 녹색요금제도 등 선택형 요금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전력산업 구조 개편과 공기업의 역할 조정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워킹그룹에서 산업일자리 분과위원으로 참여한 조현춘 에너지기술평가원 본부장은 “2040년에는 탄소제로(carbonfree), 연결(connected), 소비자(consumer)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3C 시대가 될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3020 계획(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0%로 확대)이 달성되면 2030년에 11만~19만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전기차 등 스마트에너지 분야에선 약 38만명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계절·시간별 차등, 녹색요금제 등 합리적 소비 위한 선택폭 확대 강조 “2040년에는 탄소제로·연결·소비자 중심의 ‘에너지 3C’ 시대 될 것” 한전 전력 판매 독점 구조 지적…‘에너지 프로슈머’ 활성화 어려워 규제 개혁·일관성 있는 정책 필요…기존 에너지업계, 생존 전략 모색

박진호 산업통상자원R&D 전략기획단 에너지산업MD는 “한국은 전력 소모량이 계절에 따라 두 배가량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계속 발전소 용량을 확대하는 형태로는 에너지산업이 유지되기 어렵다”며 “중앙집중형 전력 공급 체제도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에너지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정책의 일관성도 강조했다. 박 MD는 “국제에너지기구의 사무총장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하는 정부 정책의 간헐성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면서 “중국의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보면 2025년까지 대부분의 상품을 국산화해 한국이 설 자리가 없는 그림이다. 모든 분야에서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경쟁 가능한 환경 조성이 관건

전문가들은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ESS를 활용한 전력거래 사업을 하고 있는 김희집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는 “태양광 시장이 이미 미국에선 굉장히 크게 열리고 있고 유럽 공기업들은 이미 8GW(기가와트), 4G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설립해 상당한 돈을 벌고 있다”며 “우리나라 공기업은 이런 걸 놓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시장 환경에 맞추려면 많은 규제 개선이 필요하고 역동적인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전력시장에 변화와 혁신이 있어야 하며, ‘규제 샌드박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규제 샌드박스란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시켜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사업 모형의 개발이나 국민 후생 증진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불확실한 게 사실”이라며 “다만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시도되고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한국전력이 전력 판매를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에너지 프로슈머가 활성화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전 입장에선 소비자들이 태양광 발전 등으로 스스로 전기를 생산해 쓰게 되면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만큼 프로슈머 활성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또 한전 배전망에 쌓이는 전력소비정보가 한전에 의해 독점적으로 관리되는 상황에선 에너지 프로슈머의 활성화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판매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전의 송배전과 판매 분리가 필요하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단순히 도입만 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민간전문가와 재원을 투입해 설계를 해줘야 하는데, 정부에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재원을 투입할 수 있을지 (회의적)”라고 말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수소버스 2000대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수소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 양태현 에너지기술연구원 연료전지연구실 PD는 “수소차는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양산했음에도 국내 인프라가 부족해 대부분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수소산업이 아직 초창기이기 때문에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며, 단기 투자로는 가시적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만큼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욱 KT에너지플랫폼사업단 상무는 “에너지는 통신처럼 생활습관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며 “통신이 경쟁을 하며 시장을 키워왔듯이, 에너지 분야 4차 산업혁명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생산과 소비 거래를 엮는 플랫폼에 기반한 사업을 구상 중”이라며 “KT는 망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에 자체 실증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많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존 에너지원이 나아갈 방향은

신재생에너지의 등장은 원자력, 석탄, 석유 등 전통적 에너지원에는 위협이 된다. 시간문제일 뿐, 에너지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 에너지산업들도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원전산업의 경우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운전을 위한 핵심기술 개발, 고리 1호기 등 영구 정지 원전의 해체 기술 개발, 사용후 핵연료 등 방사성 폐기물 관리 문제 등에 집중하고 있다. 염학기 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자력PD는 “원전산업의 연구·개발(R&D) 로드맵 수립에 착수했다”며 “원전 분야는 시장 변화보다는 국가 정책에 따라 좌우되는 만큼, 원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생태계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철 대한석유협회 상무는 “지난해 수출품목 중 석유화학은 3위, 석유제품은 6위를 기록하는 등 석유산업은 주요 수출산업이자 국가 기간산업”이라며 “석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방치할 경우 수출, 고용뿐만 아니라 연계 산업의 연쇄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지방에 가면 장사가 안돼 폐업하는 주유소가 많은데, 그냥 방치하면 토양이나 지하수가 오염될 수 있다”며 “정부 지원금으로 사업을 전환할 수 있는 법이 있지만 제대로 시행이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무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상황 변화에 따라 기존 일자리 종사자들이 다른 일자리로 어떻게 이직할 수 있을지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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