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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그랜마' 박막례 "인생은 막례처럼..오지게 렛잇고" [커버스토리]

장은교 기자 입력 2018. 12. 22. 06:00 수정 2018. 12. 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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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할머니가 2017년 9월 유튜브 본사에서 구독자수 10만명 이상인 유튜브 크리에이터에게 증정하는 실버버튼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박막례 인스타그램

산전수전 ‘72년의 삶’이 콘텐츠 2년간 59만 구독…구글 초청장 “뭐든 해보라” 인생 크리에이터

할머니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기억은 안 나지만 만 세 살에 전쟁이 터졌고 살아남았다. 옆집 앞집 뒷집 친구들 다 하는 농사일도 안 하고 곱게 컸는데, 스무 살에 결혼하고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3남매를 낳은 뒤 남편이 집을 나갔다. 리어카 엿 장사, 과일 장사, 떡 장사, 가사도우미 등을 하다가 공사장 앞에서 백반집을 10년 동안 했다. 얼굴 본 지 오래된 남편의 빚쟁이들이 식당으로 찾아와 버는 족족 대신 빚을 갚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삶이 싫어 일본으로 떠나려 했으나 취업사기를 당해 돈을 날렸다. 서른셋부터 다시 식당에서 일하며 3남매를 홀로 키웠다. 할머니의 사연을 아는 사람마다 손을 붙잡고 울었다. ‘칠십하고도 한 살을 더 먹게 되는구나’ 하던 어느 날, 병원에서 치매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2년, 할머니는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까. “오매오매 이게 뭔 일이여. 오홍홍홍홍(웃음). 나 이렇게 행복하다 죽는 거 아니냐.” 할머니는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했고 미국 패션잡지 보그(Vogue)에 ‘패션피플’로 소개됐으며 구글 본사에 초청됐다. 할머니의 유튜브 계정 ‘코리아 그랜마(Korea Granma)’는 구독자 수 59만명을 넘었다. 치매를 두려워하던 식당주인 박막례 할머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를 만나 “철판빈대떡 뒤집어지듯 뒤집어졌다”는 72년 인생사를 들었다. 할머니를 유튜버로 발굴해낸 손녀 김유라씨(28)도 함께했다. (이 인터뷰에는 박막례 할머니 특유의 비속어와 사투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식당은 그만두셨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박막례(이하 박) = 딸이 식당을 하는데 우리 편(팬)들이 먼 데서 나를 (딸의 식당까지) 찾아와요. 내가 다리가 좀 아파서 안 갈라 그러믄 ‘엄마, 부산서도 오고 대구서도 왔다’ 그래요. 1주일에 서너번은 가서 편들 만나요.

- 아이돌보다 팬미팅을 더 자주 하시네요. (할머니는 실제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팬미팅을 했다.)

박 = 너무 좋아요. 진짜. 우리 손녀 손자들 같아. 주로 중학생, 고등학생들인데 막 보고 싶었다고도 하고. ‘할머니 실물 보니까 너무 예뻐요’ 하면서 손을 놓고 안 놔줘. 너무 고마운데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어. 편들이 할머니 건강조심하라고 하고 외국 간다고 하면 어디 가서 뭐 드시라고 하고. 우리 아들 딸보다 진짜 더 착허다. 카하하하하하.

72세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가 지난해 7월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고 있다. 할머니는 연신 “너~무 좋아!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박막례 인스타그램

◆치매 올까 걱정하던 나, 오매오매 이게 뭔 일이여 하늘 날고 여행을 댕기네

# 박막례 # 72세 # 유튜버 # 편

독보적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2막’

할머니는 지난 2월 경기 용인에서 운영하던 쌈밥집 문을 닫았다. 지난해 1월 ‘유튜브 스타’가 된 이후로도 매일 새벽 4시~밤 9시까지 식당일을 했지만, 정부 도로 공사에 식당 부지가 포함되면서 영업을 종료했다. 가족들은 할머니를 위해 작은 은퇴식을 열었다. ‘반찬걱정 이제 끝이다! 43년 식당 은퇴식’ 영상에서 할머니는 “오늘 마지막 날인데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 손녀(할머니와 유라씨는 친구처럼 반말을 주고받는다)에게 “너무 서운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반찬통을 만지던 할머니는 “여(기)서 돈 벌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내가 진짜 잠잘 곳도 없이 시작을 했는디…”라며 눈물을 보였다. 손녀 중 한 명은 트위터리안을 대표해 ‘요즘말’로 축시를 낭송했다. “트위터에 할머니 얘기가 올라올 때마다 오지고 지리고 Let it go였습니다.(매우 좋다는 뜻)”

- 영광이 고향이시죠. 서울엔 언제 오셨어요.

박 = 큰아들을 21살에 낳고 23살에 올라왔어요. (계기는) 좀 비극적인데(웃음). 우리 시골에 진짜 저녁 끓일 것도 없었어요. 우리 아저씨(남편)가 노가다라도 하려고 올라온 거야. 내가 한복학원을 나왔거든요. 나는 들일을 안 하고 미싱을 했어. 내가 그 미싱을 팔아서 아저씨한테 방 얻으라고 보냈어요. 아 근데, 얼마나 속이 없는가. 그 돈으로 예비군 훈련 때 입는다고 옷을 한 벌 싸악 샀더라고. 그때 미싱 판 돈이 7만원이었는데 산동네 집은 2만5000원인가 주면 샀거든. 큰아들을 업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방을 안 얻어놨다는 거야. 오매 환장하겄대.

- 무일푼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하신 건가요.

박 = 내가 시집갈 때 보리 한 섬 값을 가져가서 동네 아줌마한테 맡겨놓은 게 있었어요. 그걸로 2만원짜리 방 전세를 얻었지. 유라네 할아버지가 우리 막내 낳아놓고 집을 나갔어요. 거기서부터 우리가 비극적으로 산 거지. 그래서 울애기들을 내가 대학교를 못 보냈어요.

할머니는 이날 인터뷰 중 이 대목에서 유일하게 잠시 울컥하며 말을 멈췄다. 할머니의 유튜브 콘텐츠 중에는 가난해서 못 사줬던 장난감을 40~50대가 된 아들, 딸에게 사다주는 영상도 있다.

- 여러가지 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박 = 내가 성격이 원래…넘의 집 가면 챙피해서 밥도 못 먹었어요. ‘밥 먹었냐’ 그러면 쫄쫄 굶고 가서도 먹었다고 허고. 그런 사람이 애들하고 먹고 살라고 하니까 못 허는 것이 없더라고. 애들 아빠가 없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니까. 경문고등학교 앞에 니아까(리어카)를 끌고 엿을 팔러 갔어요. 엿 좀 사라고 해야 하는데 한마디도 안 나오더라고. 한 가락도 못 팔고 그냥 와서 애들만 실컷 먹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것이 젤로 비극적이었어. 둘째 낳고는 쪼까난 거 업고 다님서 파출부를 댕겼어. 원래 애기 있으면 못하게 하는데 반찬솜씨가 좋다고 애 데리고 오라고 하대. 나중에 그 주인이 내가 남편 없이 애들 혼자 키운다는 얘기를 듣고는 연락이 왔어요. ‘자네는 똥도 버릴 게 없는 사람인디…’ 그러면서 떡장사를 한번 해보래요. 세는 안 받을라니까 가게를 한번 살려보라고 하더라고. 내가 뭔 장사를 해봤겠어요. 그때 스물몇살인디. 하루에 많이 팔면 5~6개 팔고 남은 건 또 집에 갖고 왔어요. 엿 팔던 니아까에다 과일도 오징어도 팔고 한두 달씩 그렇게 해봤는데 다 못하겠더라고.

떡·과일 장사부터 가사도우미·식당일까지 닥치는 대로 했지만 빚 지고 집 나간 남편 때문에 벌어도 벌어도 평생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삶’ 손녀와 호주 여행 후 ‘철판빈대떡 뒤집어지듯’ 뒤집어졌지 유튜브 구독자수 59만명 넘어…아이돌 스타처럼 팬미팅 자주 하지 세계지도를 방에 붙여놓고 영광굴비 보듯 봐, 여행 다닐 때 가장 행복해

할머니의 고생담은 유튜브에서 ‘즐거운 콘텐츠’가 된다. 치질 얘기가 나오면 이렇게 말한다. “나 추운 단칸방에서 산 사람이야. 그래 나 치질 경험자야. 나 경험 엄~청 많아!” 유튜버들은 보통 ‘대도서관’ ‘벤쯔’처럼 활동명을 따로 쓰지만, 할머니의 활동명이 ‘박막례’인 것도 이런 이유다. 할머니의 삶 자체가 콘텐츠다.

- 식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박 = 내 친구가 여의도에 식당이 있는데 돈을 빌려줄 테니까 자기 사촌동생이랑 해보라고 하더라고. 그때가 63빌딩 지을 때야. 거기 공사하는 사람들이 오는 식당이었어요. 백반집을 했는데 잘됐어. 근디 거기서도 우리 아저씨 때문에 못했어. 누구씨 마누라가 여의도서 식당한다고 전부 나한테로 와버리네. 우리 식당 의자에 발을 따악 올리고 안 나가. 내가 처음으로 일수라는 걸 빌려서 줬어요. 100만원 쓰면(빌리면) 100일 동안 2만원씩 찍으라고 하더만. 여의도에선 10년에서 한 달 못되는 동안 식당을 하다가 그만뒀어.

할머니의 콘텐츠 중에는 “당신에게 욕과 사랑을 담아 도시락을 보냅니다”라는 영상이 있다. “몇~십년 동안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도 없이 나가 살다가” 임종에 가까워지고서야 연락이 온 남편의 제사 음식을 만들어 자식 편에 보내는 내용이 담겨있다.

- 용인엔 어떻게 정착하게 되셨어요.

박 = 내가 장사가 힘들어갖고 일본을 갈라고 했어. 일본 가면 식당에서 설거지만 해도 한 달에 400만원은 받는다고 하더라고. 우리 육촌언니네 아들이 완전히 사기꾼인데 그걸 모르고 집까지 다 정리해서 돈을 넣은 거야. 그때 삐삐가 있었는데 이 새X가 갑자기 삐삐가 안되더라고. 지금까지도 그 돈은 못 받았어. 내가 서울 올라와서 처음 전세 산 집 주인아줌마가 어쩌고 알았는가 용인으로 오라고 하더라고. 그 아줌마가 1000만원인가 들여서 가게를 얻어준 거야.

- 그분이 은인이네요. 작은 식당에서 키워나가신 건가요.

박 = 그렇죠. 첨에는 방도 없이 식당에 창고 같은 데서 자면서 3년인가 했어요. 거기서부터 조금씩 해서 돈을 번 거지.

할머니의 인기 콘텐츠 중 하나는 쿡방, 먹방이다. 지난 7월 올린 ‘박막례의 대충 비빔국수 레시피’는 조회수만 197만을 넘었다. 콘텐츠가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5월1일 올린 ‘근로자의날에 일한 당신에게 된장찌개 ASMR’은 노동절에도 일하고 온 손녀에게 “왜 넘들은 다 쉬는데 너만 일하냐. 그 회사는 여태까지 일 시키고 밥도 안 주냐. 얼굴 왜그러냐. 화장실 갈 시간도 없냐”고 타박하는 듯 걱정하며 저녁밥을 차려주는 영상이다. 이 영상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봤다” “맛있게 먹겠습니다…나 오늘 너무 힘들었는데” 등의 댓글이 달렸다.

72세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와 할머니를 유튜브 스타로 발굴해낸 손녀 김유라씨(오른쪽)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다정하게 웃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 = (2년쯤 전에) 내가 혼자 작은 동네 병원에 갔어요. 우리 언니 세 명이 다 치매가 왔는데 그걸 알고 (의사)선생님이 내 손을 요렇게도 만져보고 눈도 막 뒤집어 까보고 입도 아~해 보라고 하더니만 ‘박막례씨도 치매 신경 좀 써야 돼요’ 그러는 거야. 암은 부모하고 자식하고가 젤로 가깝다드만, 치매는 형제간이 젤로 가깝대요. 내가 깜짝 놀랐어. 나는 하고잡은 말은 다 하고 살 거든요. 고러고 딱 생각한 게…잉? 우리 언니도 나보담 더 쾌활하고 할말 다 하는디. 어느 날 우리 아들이 밥먹음서 ‘이모 좀 어때’ 그러길래 내가 그랬어. 야, 이모가 문제가 아니고 느그 엄마 치매 조심하라더라. 얘(유라)가 옆에서 그걸 들었어.

- 유라씨가 그 얘길 듣고 회사에 사표까지 내고 할머니와 호주 여행을 갔다면서요.

김유라(이하 김) = 처음에는 치매예방을 하려고 할머니 휴대폰에 두더지게임도 깔아드리고 고스톱도 가르쳐 드리고 했는데 할머니 표정을 보니까 억지로 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더 슬펐어요. 재미없는데 치매 때문에 그걸 해야 한다는 게. 인터넷으로 치매예방법을 알아봤는데 가장 중요한 건 즐겁게 웃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휴가를 내려고 했는데 그런 이유로는 휴가를 줄 수 없다길래 그냥 사표 쓴 거죠.(웃음)”

- 회사를 그만두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닌데, 할머니와 각별한 사이였나봐요.

김 = 할머니랑 친구같이 잘 지냈는데 치매에 걸린다고 하니까 너무 무섭고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할머니처럼 저렇게 열심히 산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은 거예요. 저도 그때 각성을 한 거죠. 인생에서 중요한 게 일이 아니구나.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살지만 나중에 크게 남는 게 있을까… 할머니를 위해서 관둔 게 맞지만 저에게도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였어요.

- 호주여행 다녀온 영상을 올린 게 처음이었죠.

박 = 호주 가서는 계속 사진(과 영상)을 찍더라고요. 유라가 화장실 갔을 때 내가 잠깐 들어본 게 카메라가 엄청 무거워. 계속 낑낑대고 들고 다니는 거야. 나는 욕부터 헌 게…염병헐놈의 가시내. 뭐라뭐라 막 욕했어.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도 나이 들면 다 증상이 오니까 허지 말라고. 근데 얘가 그래요. 할머니는 화투도 못 치고 술도 못 마시잖아. 내가 영상이랑 사진 많이 찍어놓을 테니까 잠 안 올 때 많이 보래. 그 말도 참 기특하잖아요. 갖다 와서 며칠 뒤에 가족 단톡방에 올려주더라고. 분명히 카메라로 찍었는데 어쩌고 핸드폰으로 다 건너왔대? 신기하더라고.

유라씨가 2017년 1월 올린 ‘박막례 할머니의 욕 나오는 호주케언즈 여행기’는 ‘대박’이 났다. 71세에 생애 첫 스노클링에 도전하고, 산타모자를 쓴 채 여행을 만끽하는 모습은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특히 잘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호주가 한국과 계절이 반대인 것을 모르고 여름날씨에 가죽점퍼를 챙기는 모습, 외국인 앞에서 어색해하지 않고 한국어와 보디랭귀지로 유쾌하게 소통하는 모습,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정겨운 사투리와 특유의 비속어 어법 등은 ‘젊은이들’ 일색이던 한국 유튜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달 만에 구독자 수가 20만명을 돌파했다.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을 제외하고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 할머니 얼굴 알려지는 게 걱정되진 않았나요.

김 = 별로요. 저는 SNS의 순기능을 더 많이 체감한 세대기도 하고요. 처음엔 가족들끼리 보기 위해서 만든 거라서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 가족들이 모이면 정말 재밌거든요. 그냥 있는 그대로 찍어요. 지금도 할머니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 찍는 영상이 아니면 안 해요. 그래서 광고라고 누군가 뭐라고 하더라도 자유여행 제안 같은 게 들어오면 1순위로 해요. 할머니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요.

유라씨는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독학으로 배워 할머니의 영상을 제작한다. 유라씨가 만든 ‘인생은 71살부터’ 영상은 지난해 ‘29초 영화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유라씨는 할머니의 채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영상이 드문드문 올라오더라도 여러분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해주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이 채널의 목적은 그냥 정말 박막례의 행복입니다.”

할머니는 유튜버가 된 뒤 가장 행복할 때를 ‘여행’으로 꼽는다. “세계지도를 방에 붙여놓고 영광굴비 보듯” 보는 할머니의 꿈은 세계여행이다. 유라씨는 유튜브 수익으로 적금을 들어 할머니와 세계여행을 다닌다. 사정을 아는 구독자들은 할머니의 여행 ‘모금’을 위해 “박막례 채널 광고는 일부러 끝까지 다 본다”는 인증글을 남기고, 인스타그램에선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맞지 않는 할머니의 글을 ‘번역’해서 실시간으로 올린다.

72세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다 양손을 펴고 활짝 웃고 있다. 할머니는 70대 친구들에게 “서랍에 있는 금반지 아끼지 말고 다 끼자! 순간순간을 아끼지 말고 살자”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새로운 경험은 새 인생 내가 하고잡은거 했더니 구글에서도 불러주대

#오지고 #지리는 #뷰티 #패션 #인플루언서

-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유튜브 영상을 보면 밝고 유쾌한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땐 어떻게 푸셨어요.

박 = 내가 30대 때는 항시 까만 것만 입었는데 50대부터는 까만 건 다 없애버리고 밝고 화려한 것만 입기 시작했어요. 친구들하고 옷 사고 그릇 사고 그러면 좀 풀렸어. 유튜브한다고 뭐 산 거 없어. 진주목걸이도 원래 하고 다녔어. 화장하는 것도 원래 좋아했어.

할머니는 뷰티·패션 콘텐츠로도 유명하다. ‘치과 갈 때 메이크업’ ‘정형외과 갈 때 메이크업’ ‘계모임 메이크업’ 등 노년상황별 맞춤콘텐츠와 ‘설리 커버 메이크업’ ‘라미란 커버 메이크업’ 등 유명인들의 메이크업을 박막례 스타일로 재현한 콘텐츠도 인기다. 가수이자 배우인 설리는 할머니의 영상을 보고 초대해 만남을 갖기도 했다.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인 뒤 “오징어회 덮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거나 “시방 내 기분은 산딸기 같아요”라고 하고, “계모임 메이크업 비법은 넘들보다 찐하게” “아이라인은 주름 따라 그리면 돼”라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박막례 스타일’을 만들었다. 화려한 색감과 무늬를 즐겨 입고 외국에 가서도 한국 마트 쇼핑백을 걸치는 할머니의 스타일은 외국 패션잡지에 (진지한 톤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유명인들 메이크업 재현한 콘텐츠 인기 가수 설리가 영상 보고 초대해 만나기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삶의 철학도 묘미

할머니의 방송은 대체로 유쾌하지만, 순간순간 툭툭 할머니만의 삶의 철학이 튀어나온다. “뚱뚱하고 날씬하게 뵈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내 맘에 들면 사는 것이니까.(남대문 쇼핑 하울)” “옛날에 이러고 시장 가면 바람났냐고 얼마나 숭보는지 아냐. 하튼 웃겨야. 그런 사고방식을 버려야 해. 화장을 하고 잡아도 지대로 못해. 넘의 눈 때문에. 지금도 그러냐? 2017년돈디 시방.(가난해도 강력했던 1970년대 메이크업)” “(호주에서 마운틴 카트 타기에 도전했다 손등을 긁혀 반창고를 붙이고) 이런 건 영광의 상처다. 내가 도전하려고 했다 생긴 상처라 괜찮아. 금방 나을거여.(71살 막례의 첫 패러글라이딩 in 스위스)” “내 꿈을 이뤄줄 것은 내 무릎이야. 갈비허고.(할머니의 꿈)”

- 구글 본사에도 초청받아 다녀오셨죠. (할머니는 지난 5월 미국 구글 본사에서 전 세계 콘텐츠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사람)를 대상으로 연 ‘2018 구글 I/O(Innovation in the Open·신기술 발표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박 = 갈 때는 내가 저 큰 나라에 가서 뭘 할까 걱정했어요. 가서 보니까 다 젊은 사람들만 있어서 저 속에서 어찌할까 그랬더만. 나중에는 너무 좋더라구요.

김 = 할머니가 거기서 대장이었어요.(웃음)

구글 신기술 발표회엔 한국 대표로 참석 뭘 할까 걱정했는데 나중엔 ‘대장 노릇’ “금반지 15년 끼고 살아도 닳지 않아 친구들아, 그날그날 아끼지 말고 살자”

- 구글 잡매니저하고 취업상담도 하셨죠. 영상을 보니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10년 뒤에 도전하겠다고 하셨던데요.

박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이고.

김 = 얼마 전에 ‘시원스쿨’ 이시원 대표가 할머니 영어 가르쳐 준다고 시도했다 포기했어요. (웃음)

박 = 혀가 안 돌아가. 포기했어요.

72세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오른쪽)가 지난 5월 한국 대표로 구글 I/O에 참석해 한 외국인 여성 참가자와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막례 인스타그램

- 새로운 꿈은 없으세요.

박 = 어렸을 적에는 부~잣집으로 시집 가서 귀부인마냥 드레스 질질 끌고 다님서 사는 게 꿈이었는디 워매 드레스는 무신. 월남치마도 못 입고 일만 디지게 했어. 지금 이보다 더 좋은 꿈이 더 있을까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가 하고잡은 거 해요. 유튜브 하고 나선 느낌이 항시 좋은 게 건강도 좋아졌어. 인자 운동 삼아 춤이나 한번 배워볼까나.

할머니는 댄스 영상도 찍었다. 할머니의 댄스철학은 명쾌하다. “내 몸뚱이 돌아가는 대로 흔드는 거여. 땀 흘리면 운동이다. 땀 나는 순간 멈춰!”

- 서로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김 = 유튜브를 하기 전에는 그냥 우리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어엿한 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기도 하고(웃음),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유튜브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행복해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정말 건강하셔야 한다고 얘기해요. 저도 한때는 우리 할머니처럼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젠 할머니가 항상 본인이 손해보면서도 남들한테 잘해주면서 살아서 복이 온 거구나 느껴요. 저는 할머니가 본인의 삶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박 = 나는 유라가 좋은 남자 잘 만났으면 좋겠어. 그거지 뭐. 크허허허허허허. 유라한테 항시 고맙고…저(유라)도 이거(유튜브) 하다보면 욕심이 많이 날 턴디 내가 하기 싫다는 건 절대 안 해. 그런게 참 기특해. 내가 받은 상은 다 유라꺼예요.

할머니는 지난 7월 “모든 세대에 귀감이 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았다. 11월에는 ‘결핵예방 캠페인 공익광고’로 유라씨와 함께 대한민국 광고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 열흘 뒤면 모두 한 살씩 더 먹게 됩니다. 70대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박 = 친구들한테 유튜브든 뭐든 해보라고 권하는데 다들 손주 키워야 한다 일해야 한다 바쁘다고 못한대. 나는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식들 준다고 뭐 아끼고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가 시방 끼고 있는 금반지가 20년을 낀 건데 15년쯤 지나고 나서 달아보니까 3000원어치밖에 안 닳아졌대. 우리 나이 된 사람들은 아직도 아껴서 뭘 못해. 친구들아~ 서랍에 있는 금반지들 아껴놓지 말고 다 끼고 다녀. 항시 그날그날을 애끼지 말고 살자!!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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