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사들 파업 이후 시민 반응 싸늘 "택시, 슈퍼 갑 됐다"

안규영 기자 입력 2018.12.24. 19:10 수정 2018.12.2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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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앱 삭제 요구, 승차거부..
한 여성과 어린이가 성탄절 하루 전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거리에서 차도까지 나와 택시를 잡고 있다. 권현구 기자

“오늘 택시 파업일이라 택시가 거의 없어요. 따불(더블)은 주셔야 돼요.”

전국 택시들이 24시간 파업에 나섰던 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에 사는 A씨(35)는 오후 4시쯤 버스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탔다가 기사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바로 내렸다. A씨는 “택시가 파업 중인 걸 모르고 있다가 가까스로 택시를 잡았다”며 “행선지가 기본요금(3000원)이 나올 정도의 거리라고 하자 기사가 배 금액인 6000원을 내라고 했다. 불쾌해서 피곤한데도 버스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평소 카카오 카풀 규제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는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오히려 카풀 서비스에 찬성하게 됐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수지(28)씨는 최근 카카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택시를 불러 탔다가 기사에게서 ‘카카오 택시 앱을 지우라’는 황당한 요구를 들었다. 이씨는 “택시기사가 본인도 카카오 앱을 이용해 나를 태웠으면서 택시를 타자마자 앱을 삭제하라고 쏘아붙였다”며 “‘카카오가 택시 업계를 죽이니 대신 설치하라’며 티맵 앱 명함을 손에 쥐어줬다.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말을 섞지 않다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명함을 버렸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들의 ‘카카오 카풀 반대’ 파업과 대규모 시위 이후 시민 반응이 오히려 싸늘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택시기사들이 카카오 택시 앱을 삭제하라고 강요하거나 파업을 무기로 요금을 더 요구했다는 사례가 올라오고 있다. 일부는 ‘파업으로 택시가 슈퍼 갑 노릇을 한다’고 토로한다.

지난 23일 오후 11시쯤 서울시내 곳곳에서 연말 저녁 모임 뒤 택시를 잡으려고 줄 선 시민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강남역 앞에서 만난 이모(30)씨는 “40분째 택시를 잡고 있다”며 “20분 거리인데도 행선지를 말하니 택시 8대가 ‘안 간다’고 내리라고 했다. 이럴 거면 왜 시위에서 택시 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작구에서 네 차례 연속 승차거부를 당했다는 김모(27·여)씨는 “결국 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며 “아무리 요즘 택시가 ‘갑’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 이런 식이면 카카오 카풀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점점 택시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택시기사가 카풀 허용 정책에 대한 의견을 강요했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림동에 사는 박모(28)씨는 “얼마 전 새벽에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가 ‘세상이 택시기사들을 못살게 한다’ ‘시위 나가서 다 엎을 거다’라고 흥분해서 말했다”며 “집 앞에 도착했는데도 내려주지 않고 관련 영상까지 보여주며 카카오 카풀을 반대하라고 강요했다. 무서워서 동의하는 척하다가 집에 왔는데 당분간 택시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택시기사는 파업과 시위에 부정적이다. 택시기사 이모(63)씨는 “개인택시조합, 전국택시연합회에서 카카오 택시 앱을 삭제하라고 매일 문자가 온다”며 “회사의 제약이 없는 개인택시 운전자들은 택시 앱을 이용하는데 단체행동이 되겠느냐”고 토로했다. 한 지역의 택시 조합은 각 택시회사에 ‘파업일에 택시를 운행하다가 적발되면 징계를 내리겠다’는 공지를 내려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택시 시위와 파업으로 시민들이 관련 사안에 관심을 가지면서 오히려 택시 서비스에 쌓아왔던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봤다. 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민들이 정작 승차거부, 불친절 등 택시업계 자체의 문제는 여전한 것을 알고 더욱 불만을 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달 초 유튜브에 실린 ‘택시요금 사기수법 4가지’라는 제목의 영상은 지난 20일 택시 파업 이후 3일 만에 조회수가 160% 이상 늘어나 35만건을 기록했다. 영상에는 일부 택시기사가 요금을 더 받기 위해 하는 미터기 조작 수법 등이 담겼다. 영상 제작자 허모(30)씨는 “택시기사들의 시위를 보면서 되레 과거 자신이 당했던 부당요금, 승차거부 등이 떠올라 이 영상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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