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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파인텍 노동자들은 왜 75m 굴뚝 위에서 409일을 보냈나

입력 2018.12.25. 09:46 수정 2018.12.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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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크리스마스인 25일, 파인텍 해고자 2명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
차광호와 홍기탁, 박준호가 싸운 8년 그리고 '세개'의 회사
차광호의 408일, 홍기탁 박준호의 409일 굴뚝 농성 역사 총정리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지난 9월7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크리스마스인 25일, 세계 기록을 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은 한국 사회에 부끄러움으로 남을 기록입니다. 두명의 노동자가 75m 높이의 굴뚝에서 보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 409일. ‘파인텍’이라는 이름의 회사 소속인 홍기탁 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높고 좁은 굴뚝 위에서 두번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남긴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두명의 노동자가 깬 세계 기록도 같은 회사에 소속된 또 다른 노동자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노동자의 이름은 차광호 현 지회장입니다. 차광호의 408일과 홍기탁·박준호의 409일. 도대체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더(The) 친절한 기자들’에서 이들의 싸워온 8년, 그리고 두번이나 이름이 바뀐 회사에 다닐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되짚어봤습니다.

2014년 5월27일부터 경북 구미산업단지 스타케미칼 45m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같은 해 6월8일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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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408일

홍기탁과 박준호, 그리고 차광호는 모두 섬유가공업체 ‘한국합섬’ 출신입니다. 서울에서 일하던 차광호는 1995년 8월 고향인 경북 구미시 국가산업단지에 문을 연 한국합섬 2공장에 취업했습니다. 상주시에서 온 홍기탁은 차광호의 입사 동기였습니다. 예천군 출신인 박준호는 이들보다 8년 늦은 2003년에 입사했습니다. 3조3교대가 4조3교대로 바뀌면서 고용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역사는 한국합섬이 ‘스타플렉스’라는 회사에 인수되면서 시작됩니다. 한국합섬이 2006년 5월 파산하면서 노동자들은 빈 공장을 지키며 인수할 자본을 찾게 됩니다. 그러다 2010년 7월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이사가 주채권은행이던 산업은행으로부터 한국합섬을 인수해 이름을 ‘스타케미칼’(스타플렉스 자회사)로 바꾸고 이듬해 4월 공장 재가동에 들어갔습니다. 한국합섬 노동자 100여명의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타케미칼은 불과 1년7개월 만에 공장 가동을 멈추고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곧 청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차광호 등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가 이익을 챙기고 빠지는 식으로 ‘먹튀’를 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습니다.

노동조합이 분열했습니다. 2013년 1월3일 일부 조합원이 회사 청산에 반대한 차광호 당시 금속노조 스타케미칼지회장에 대한 불신임 서명을 받았습니다. 조직 분열을 우려한 차광호 지회장이 지회장직에서 사퇴했지만 노조는 차 지회장을 제명하고 맙니다. 회사 청산을 원하며 희망퇴직원을 제출한 노동자들과 달리 차광호와 홍기탁, 박준호 등 희망퇴직원을 제출하지 않은 28명의 노동자는 노조와 별도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결성합니다. 하지만 2014년 5월26일, 김세권 사장과 노조는 결국 ‘청산·매각 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노사는 공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됩니다.

2014년 6월8일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고공농성을 하던 경북 구미산업단지 스타케미칼의 모습.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공장 철수 이튿날인 5월27일 차광호가 굴뚝에 올랐습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차광호는 구미시에 있는 스타케미칼 공장 45m 높이 굴뚝에 올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홍기탁과 박준호는 굴뚝 아래서 차광호의 밥을 올려주며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넘게 흐른 2015년 7월8일, 차광호의 408일 굴뚝 고공농성은 결실을 보게 됩니다. 스타케미칼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이들의 고용을 승계하고 해고자복직투쟁위가 꾸린 차광호 노조와 단체협약을 하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이들은 스타플렉스가 충남 아산에 만든 새로운 회사인 ‘파인텍’으로 복직해 2016년 1월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왼쪽부터)과 길벗한의사회 오춘상 한의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홍종원 의사가 지난 1월1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파인텍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굴뚝에서 64일째 고공농성 중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소속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의 건강과 안전 등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확인하러 현장을 찾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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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408일+1

그냥 평범하게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꿈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스타플렉스는 앞서 자회사인 파인텍으로의 고용승계와 함께 노조와의 단체협약, 생계 및 생활 보장 등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파인텍은 노동자들에게 2016년 당시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에 1000원을 더한 7030원의 시급에 해당하는 월급을 주면서, 노동자들에게 야근이나 잔업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세금과 4대 보험료를 빼면 월 실수령액은 120여만원에 불과했습니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회사가 약속한 ‘생계 및 생활 보장’이 거짓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박준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우리를 고립시키고 스스로 지쳐 떠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돌아봤습니다.

단체협약마저 2016년 10월이 되도록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노조는 그달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조의 파업을 공장 폐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2017년 8월 파인텍 회사 쪽은 공장에서 기계를 빼냈고, 건물의 임대 기간도 연장하지 않았습니다. 건물주는 파인텍이 있던 공장에 새 사업체를 입주시켰습니다. 한국합섬과 스타케미칼에 이어 파인텍까지…. 차광호와 홍기탁, 박준호가 경험한 세번째 공장 폐쇄였습니다. 이렇게 반복된 공장 폐쇄와 좌절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애초 스타케미칼에서 희망퇴직원을 제출하지 않고 차광호와 함께 해고자복직투쟁위를 만들었던 28명의 노동자들은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남은 건 차광호, 홍기탁, 박준호, 김옥배, 조정기 5명뿐입니다.

2017년 11월12일 홍기탁과 박준호는 스타케미칼과 파인텍의 모회사인 스타플렉스 사무실이 보이는 75m 높이의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습니다.

파인텍(옛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지난 9월3일 오전 모회사인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 사무실에서 농성하자, 회사 쪽 관계자들이 출입을 막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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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일과 409일, 정치는 없었다.

408일과 409일. 세명의 노동자가 몸을 갈아넣으며 굴뚝 농성을 하는 동안 정치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정부는 ‘노사 간의 문제’라며 파인텍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해결을 논의하는 ‘투쟁사업장 해결을 위한 노정 협의체’를 꾸렸으나, 협의는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지난 1월 말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 천막을 방문하고 노사 간 논의 자료를 만들었던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는 김세권 스타플렉스 사장이 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세권 사장은 자회사인 파인텍에는 사장이 따로 있다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모기업 스타플렉스로의 고용승계 요구도 전달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굴뚝 합의’ 불이행은 민사상의 문제여서 정부가 함부로 제재하기 어렵죠.”

결국 ‘노사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는 지난 두 보수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홍기탁은 문재인 정부의 대응에 큰 실망감을 표시했습니다. 홍기탁은 24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투쟁사업장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해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09일 동안 우리가 굴뚝에 있었다는 것은 정부가 투쟁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의지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투쟁사업장 문제’는 ‘노사 간의 문제’라는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해결 가능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때늦은 노력이지만 정치권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은 포착됩니다. 지난 22일 민주당 박주민·이수진 최고위원과 을지로위원장인 박홍근 의원, 우원식 의원이 서울 양천구 목동 시비에스(CBS) 앞 파인텍지회 농성장과 열병합발전소 굴뚝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홍근 의원은 “여당으로서 고용노동부를 통해 이 사안의 해결법이 없는지 논의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청와대도 사회조정비서관을 중심으로 회사와 이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비공개 면담을 해온 것으로 안다”며 “아직은 회사의 입장이 완강해 접점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의원은 “오늘 방문 뒤 회사와 정치권이 조속히 비공개로라도 만나 이 문제를 해 넘기기 전에 합의할 방안이 있는지 집요하게 설득해나갈 예정”이라며 “회사가 상생 차원의 해법을 찾도록 대화에 나서게 하는 것이 (당의) 우선적인 역할”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기록한 지난 9일 오전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홍기탁, 박준호씨가 고공농성 중인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를 향해 오체투지(몸의 다섯 부분을 바닥에 붙이며 하는 절)로 가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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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와 연대 단식

지난 6일 오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인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서대문구 충정로3가까지 오체투지로 이동했습니다. 무릎과 팔꿈치,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통해 “굴뚝 농성 중인 조합원들이 408일을 넘기지 말고 내려올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연대 단식농성도 진행 중입니다. 차광호는 지난 10일부터 보름 넘게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차광호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내내 ‘참담함’이라는 단어를 되뇌었습니다.

“408일을 굴뚝에 있다가 내려오니 공황장애가 생겼어요. 그게 (3년이 지난) 지금도 치료가 안 되어요. 408일을 넘기면 내려오더라도 그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가겠어요. 하루라도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단식을 시작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참담하죠.”

차광호뿐만 아닙니다. 지난 18일에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나승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등이 무기한 연대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이던 24일 저녁에는 ‘파인텍 하루조합원 4080인 실천선언’이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저녁 한 끼를 단식하고 그 밥값 5천원을 농성자들의 투쟁 기금으로 후원했습니다.

파인텍 노동자,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요구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차광호가 408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면서 얻어낸 합의 사항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상의 3명과 굴뚝의 2명. 모두 다섯명 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해 이들이 노동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해달라는 것입니다.

약속을 만드는 데 408일, 그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 지 409일. 고공농성 중인 이들의 건강은 ‘위험 수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측정한 홍기탁의 몸무게는 59㎏, 박준호의 몸무게는 49㎏이었습니다. 2~3개월에 한번씩 두 사람의 건강을 확인한 오춘상 길벗한의사회 원장은 “두 사람은 급격한 체중 저하를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이 건강을 회복할 방법은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인텍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홍기탁 전 지회장(왼쪽 사진)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지난 1월14일 굴뚝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건강은 악화하지만 농성 노동자들의 의지는 굳건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바람이 부는 굴뚝 위는 항상 흔들리지요. 좁은 공간에 머물다 보니 관절, 허리, 무릎 등 성한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질 걸 이미 알고 올라왔습니다.” 홍기탁의 말입니다. 그는 408일을 맞는 소회를 묻는 우문에 단호한 현답을 돌려줬습니다.

“슬픈 현실이죠. 하지만 별생각 없습니다. 세계 최장 기록을 깼다는 데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섯명에 불과한 작은 사업장의 투쟁에 많은 분들의 힘이 모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미가 있는 거죠. 그 숫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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