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젠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시간·장소에서 진료받는다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입력 2018.12.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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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왕진 'MOD(Medical on-demand)' 활발

#1 
미국인 A씨는 두 아이를 둔 아빠다. 예전엔 아내도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가 아파 소아과에 가려면 휴가를 내야 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방문 진료를 예약하면 의사가 집으로 와서 아이를 진료한다. 시간도 퇴근 후로 정할 수 있어서 직장에서 휴가를 낼 필요가 없다. 예약한 시간 30분 전에 의사가 방문한다는 문자도 받았고, 의사는 전혀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환자를 진료했다. 의사가 처방전을 인근 약국으로 보냈고, A씨는 약국에 가서 미리 준비된 약을 받아왔다.

#2 
영국인 B씨는 구강암 환자다. 3년 전 암을 발견해 치료 중이지만 증세는 악화했다. 아내가 곁을 떠나 B씨는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산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도움이 없다면 식사 준비도 못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병원 진료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의사는 B씨가 원하는 시간에 그의 집을 방문해 진료한다. 어느 날 B씨는 의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했다. 임종을 혼자 맞고 싶지 않으니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왕진(往診)이다. 의사가 환자 있는 곳으로 직접 가서 진료하는 왕진은 방문 진료 또는 재택 의료라고도 부른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원하는 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처럼 쫓기지 않는 분위기에서 충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왕진의 큰 장점이다. 특히 통신이 발달한 요즘은 스마트기기를 통해 왕진을 신청할 수 있어 편리하다. 또 시계나 반지 모양의 의료기기로 신체 활동, 맥박 등을 측정할 수 있는데, 이런 데이터를 병원과 공유하고 처방받는 데에 기술적인 문제점이 없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의사가 집을 방문해 치료해 주는 왕진. 이런 왕진은 이미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소비자가 원할 때 영상을 볼 수 있는 VOD(video on-demand)에 빗대 MOD(medical on-demand)라고도 한다. 환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를 말한다. 이런 왕진은 외국에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일본에선 재택 의료, 프랑스에서는 SOS 의료, 영국·호주·캐나다는 주치의 제도로 통한다. 

(heal.com)



스마트폰 앱으로 MOD 신청

미국 홈케어의료아카데미(AAHCM)에 따르면, 한 해 미국에서만 왕진 건수가 520만 건에 달한다. 대표적인 왕진 서비스 회사 힐(heal)은 의사였던 레니 두아가 자녀와 함께 응급실에서 7시간 넘게 기다린 데 분노해 2015년 만들었다. 의사를 한 번 만나려면 3주 이상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과 비효율적인 의료 구조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힐은 의료보험이 없어도 99달러만 내면 365일 왕진을 받을 수 있다. 내과·가정의학과·소아과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 워싱턴DC 등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정을 방문한 의사는 환자의 생활 모습을 촬영하거나 약통 또는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물어본다. 병원에서의 상담 모습과 다르다. 연중무휴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환자가 원하는 시간에 예약하면 된다. 의사가 진료를 서두르지 않으므로 환자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료받을 수 있다. 

2014년 설립된 페이저(pager)는 현재까지 약 5000명에게 왕진 서비스를 제공했다. 초진은 50달러, 재진은 200달러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를 신청하면 2시간 이내에 집, 회사, 호텔 등 원하는 장소에서 의사 또는 간호사의 방문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의료진은 개인차량이 아닌 우버(Uber)를 이용해 이동한다. 2009년 출범한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에 빗대 왕진 의사를 우버닥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드제드(MedZed)는 미국 애틀랜타와 뉴욕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선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처음 진단한 후, 환자는 노트북을 통해 의사와 화상채팅을 한다. 의사가 원격으로 치료방안을 제시하면 간호사가 치료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치료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비용은 150달러다. 소아과, 임산부 진료, 만성질환 치료, 퇴원 후 건강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정부가 왕진 정책 추진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왕진을 추진한다. 2006년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7%에 달한 일본은 거동장애 환자가 늘어나고, 고령 환자 입원비가 전체 국민 의료비의 40%를 넘어서자 왕진 서비스를 대폭 확대했다. 

2015년부터는 재택 의료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2015년 일본에서 의사가 환자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 진료가 매달 70만 건, 환자가 의사를 부르는 왕진이 매달 14만 건 등 한 해 약 100만 건의 진료행위가 환자 집에서 이뤄졌다. 일본 내 전체 의원의 22.4%인 2만여 곳이 방문 진료에 참여하고 있다. 왕진을 주로 하는 의사는 동네 의원 의사가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의사 1인당 60명을 재택 의료로 관리한다. 

영국은 환자를 전인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로 왕진을 이용한다. 한 환자 가정을 방문하는데 진료와 교통 시간을 합하면 모두 3시간이 소요된다. 같은 시간에 병원에서는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으므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환자의 주거 환경을 파악하고, 환자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세밀한 진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미국의 왕진 서비스 회사 heal.com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반쪽짜리 왕진 제도···개선 위해 내년 시범사업 추진

사실 국내에도 오래 전부터 왕진이 있었다. 1930년 전체 진료의 40%는 왕진이었다. 왕진은 1970년대 말까지 성행했지만, 응급시스템의 정착과 병원 내 진료를 기본으로 한 의료법 개정으로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왕진은 1980년 1% 미만으로 감소했다.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왕진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노인 인구가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7년 뒤인 2026년에는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20%)에 들어선다. 또 거동이 힘든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나 아동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전국적으로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 왕진 제도는 반쪽짜리다. 현행 의료법은 환자·보호자 요청에 의한 응급상황이나 부득이한 사정에 의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방문 진료를 허용한다. 그러나 의료 수가 등 행정적 제한으로 사실상 어려움이 많다. 거동이 불편해도 병원을 방문해야 진료받을 수 있는 현실이다. 몇 년 전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을 치료한 치과의사가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고아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므로 의사가 진료해도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환경 탓에 왕진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의사가 적지 않다. 또 왕진으로 인해 다른 환자를 볼 기회 상실에 따른 충분한 보상(왕진 수가)이 주어지지 않으면 의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혹시 모를 폭력이나 성희롱 등의 위험성도 풀어야 할 숙제다. 만약 여러 의사가 치료하면 진료의 일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맹점도 풀어야 한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고령화 사회에 노인은 늘어나고, 여러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많아진다. 이런 환자는 병원에 갈 때 구급차를 이용하는데, 얼마나 낭비인가. 그 비용의 반만 있어도 왕진 제도가 돌아갈 것이다. 하루 병원 진료를 하지 않고 왕진해도 병원 경영이 유지된다면 왕진에 참여하려는 의사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돌봄서비스) 계획에 방문 진료 활성화를 포함했다. 낮게 책정된 왕진 보상 수가를 상향 조정해 의사들의 왕진을 유도하기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와 협의해서 적정 수가와 제공 기준을 마련하고 2019년부터 왕진과 방문 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미래 병원의 역할은 코디네이션 센터"

왕진 제도가 일반화되면, 병원 내 감염이나 응급실을 찾는 일도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가정 간호는 1994년부터 시행했고, 가정 호스피스는 2016년부터 시범사업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활성화되지 못했다. 주로 간호사 중심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의사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시술이나 수술은 병원에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술 후 회복 과정이거나 간병이 필요한 경우엔 반드시 입원할 필요가 없다. 만성 질환 환자 가정은 간호사가 수시로 가정을 방문하고 의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등이 왕진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앞으로 커다란 의료기기도 과학의 발달로 소형화되면 왕진 서비스의 폭은 넓어질 전망이다. 왕진 가방에 넣을 수는 없더라도 푸드트럭처럼 첨단의료장비를 탑재한 메디컬트럭은 등장할만하다. 미래의 병원은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삶을 돌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허 교수는 "첨단 기기로 환자를 관찰하는 기회가 늘면서 미래의 병원은 코디네이션 센터가 될 것이다. 예컨대 독거노인은 의료인이 아니라 비의료인이라도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을 병원이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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