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원전 사고의 위험성·사업비 증가 감안 땐 수익성 높지 않아

이주영 기자 2018. 12.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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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해외 원자력발전소 수주 ‘경제성’ 있나
ㆍ일본·프랑스 등 추가 비용 늘자 건설 계획 포기 잇따라
ㆍ문 대통령 ‘원전 세일즈’에 정부·한전 ‘영국 진출’ 구상
ㆍ해외 전문가 “UAE 사업처럼 손실 보는 수출 이해 안돼”

2013년 5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2호기 착공식에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등 전력당국 관계자들이 현지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근 일본 원자력 업계는 해외에서 추진하던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잇따라 포기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각국의 안전대책이 강화되면서 사업비가 예상보다 크게 불어난 데 따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50기의 원전 가운데 33기 이상이 당초 계획보다 수년 이상 완공이 지연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원전 4기를 건설하고 있는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체코·영국 등에서도 신규 원전 수주를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사례 등을 참고해 원전 수출의 수익성을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 ‘돈 먹는 하마’ 된 원전 수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2013년 터키 흑해 연안의 시노프 원자력발전소 4기 건설 사업권을 따냈다. 당시 두산중공업 등 한국 기업도 수주를 추진했지만 미쓰비시 컨소시엄에 밀렸다. 일본 아베 정부는 ‘세일즈 외교’ 성과로 이를 홍보하기도 했다. 5년이 지난 현재, 미쓰비시는 사업을 중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원전 사고에 대비한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총사업비가 당초 계획보다 2배 늘어나 5조엔(약 49조4000억원)에 육박하자 터키 정부가 난색을 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 히타치제작소도 영국에서 추진하던 원전 건설 계획을 사실상 포기했다.

일본 히타치는 영국 중서부 앵글시섬에 3조엔(약 30조13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원전 2기를 짓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건설비용이 증가될 가능성이 있자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지역에 차세대 원자로 3기를 건설하려던 일본 도시바는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으로 경영이 악화되면서 해외 원전건설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세계 원전의 절반가량을 설계한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각국의 원전 안전기준 강화로 거액의 손실을 입었고, 2006년 이 회사를 인수한 도시바도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도시바는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법인인 뉴젠도 청산했다.

일본만이 아니다. 프랑스 아레바는 한때 세계 원전 4기 중 1기를 건설했던 원전 설비 제조업체다. 하지만 핀란드 올킬루오토 원전 건설이 10년이나 지연되자 2014년 6조원 넘는 손실을 보며 프랑스전력공사에 원전 사업을 매각했다. 한국전력이 UAE에 짓고 있는 바라카 원전 역시 당초 계획보다 3년가량 가동이 지연되고 있다.

‘2018 세계 원전산업 동향 보고서(WNISR)’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50기의 원자로 중 33기 이상이 기존 일정보다 수년째 사업기간이 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가동을 시작했어야 하는 16기의 원자로 가운데 실제 전력망에 연결돼 가동을 시작한 것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투자증권 최고운 연구원은 “사후처리 비용과 잠재적 위험성을 감안하면 원전이 값싼 에너지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며 “안전요건이 강화되면서 원전 건설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모두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 ‘원전 세일즈’, 지속 가능한가

이처럼 천문학적인 비용 증가로 해외 주요 원전 기업들이 기존 사업들도 포기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해외 원전 수출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체코를 지난달 방문해 ‘원전 세일즈’에 나섰다. 한국전력도 원전 2기 건설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업체와 함께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정부와 한전은 도시바가 손을 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 수주도 희망하고 있다.

원전 산업계·학계와 보수진영에선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이라면서도, 동시에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원전 수주에 실패한다면 이는 모두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원전 사고의 위험성, 사업비 증가 등을 감안하면 해외 원전 사업을 수주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매우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미래 대표는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방대한 피해로 지역 간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이 원전을 수출해온 게 지금까지의 관례”라며 “분쟁 해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닌 한국이 원전을 수출했다가 테러나 천재지변, 운전 잘못 등으로 중대사고라도 난다면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WNISR의 총괄 저자인 마이클 슈나이더 컨설턴트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전이 UAE에서 수주한 원전만으로도 앞으로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수출을 계속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5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전의 ‘UAE 원전 건설사업 연도별 매출액 및 매출이익’ 문건에는 한전이 2009년 바라카 원전 4기 건설 사업자로 선정된 후 2010년부터 올 9월까지 18조7487억원의 매출에 1조910억원의 매출이익을 올린 것으로 분석돼 있다.

■ “원전 수출은 실체 없는 무지개…국민들 실상 알아야”

‘원전 전문가’ 이정윤 대표 “수출할 곳 없다는 게 현실…우리가 공략할 시장 아냐”

“원전은 우리가 수출할 데도 없지만, 수출한다고 해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 우리가 공략할 시장이 아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기계기술사·사진)는 지난 20일 서울시내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이명박 정부 시절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던 원전 수출을 문재인 정부에서 그대로 하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원전 수출은 실체가 없는 무지개”라며 “국민들이 그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캐나다 원자력공사 등에서 일했던 이 대표는 월성 2·3·4호기 설계에도 참여한 원전 전문가다.

이 대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당초 계약을 프랑스와 하려고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파동과 BBK사건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UAE 왕세자를 찾아가 설득해 수주한 게 UAE 바라카 원전”이라며 “UAE처럼 다른 나라에도 원전을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UAE 건설 계약금액이 186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하고, 건설비도 UAE가 전액 부담한다며 대대적인 성과를 거둔 것처럼 홍보했다. 하지만 실상은 수출입은행이 100억달러를 UAE에 대출해주기로 한 것이었고, 군사 관련 비밀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난 바 있다. 이에 대해 수출입은행은 “실제 대출한 금액은 31억달러”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핵무기를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에 미국과 딜을 하거나 프랑스와 손을 잡을 것이고, 체코는 이미 러시아 노형과 같은 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지정학적 관계도 있어 러시아 눈치를 볼 것”이라며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곳이 전혀 없다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은 미국 기술의 도움으로 원전을 건설하기를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3대 중대 사고를 거치면서 원전 건설에 대한 안전요건이 계속 강화되고 단가도 올라가고 있다”며 “일본처럼 돈이 많은 나라에서도 비용 감당이 안돼 포기하는 것이 원전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원자력업계에선 탈원전 정책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원전 생태계가 무너져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형 원전 기술은 미국 시장에서 도태된 CE사 노형을 인수한 것으로, 세계 시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미국 내에서만 20기 짓다 끝난 기술”이라며 “설계적으로 결함이 있고, 미국에 지은 20기 원전들도 증기발생기를 다 교체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출구전략을 잘 짜는 게 중요하다”며 원전산업의 축소 조정을 언급했다. 그는 “앞으로 원전이 유지되는 60년 동안 필요한 핵심 기기와 부품을 공급하는 부분은 유지하고, 기기 공급회사들이 신재생에너지 플랜트 쪽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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