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에서 본 한반도>美의 '朴 탄핵' 관심과 적폐청산 그늘

기자 2018. 12. 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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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국회에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文정부 근대 專制君主 그림자

경제·외교·안보 위기징후 뚜렷

求同存異 정신으로 協治해야

지난주 유명 시사 잡지 디 애틀랜틱 (The Atlantic)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고 내년에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대통령 탄핵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가운데, 한국의 탄핵 과정을 통해 시사점을 얻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지난해 민주주의 저널(Journal of Democracy)에 기고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논문을 읽었다면서, 논문에서 제기한 이슈와 주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으면 한다는 제안이었다. 이 저널은 미국 민주주의 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에서 발간되는 학술지로 전 세계 민주주의에 관한 이슈를 다룬다. 이 논문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촛불시위로 촉발되고 견인되긴 했지만, 국회와 헌법재판소라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민주주의의 쇠퇴가 아닌 성숙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정당 정치가 약해 시민사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던 한국 정치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조희연 교수(현 서울시 교육감)의 ‘투 트랙 민주주의론’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후 마음이 무거워졌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정치와 정책들, 특히 전방위적인 적폐청산 행보를 해외 언론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부에서는 집권세력이 바뀌면서 발생하는 의례적인 정치적 싸움과 보복으로 보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시대의 사화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을 보면서 오히려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며 대중을 동원한 근대적 전제 군주론이 떠오른다. 필자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였던 워싱턴 대학의 대니얼 시로 교수는 ‘근대적 전제군주(Modern Tyrants)’라는 저서에서 전근대적 전제군주와 달리 근대적 전제 군주는 총칼로 정적을 숙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 과학적 이론과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선과 악의 기준을 만든 후 악의 축인 기득권을 대대적으로 청소하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좋은 예이다. 마오쩌둥(毛澤東)처럼 대중 특히 젊은이들을 동원해 구악을 청산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동서양을 망라한 뿌리 깊은 근대의 그늘이다.

문민정부 시절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법의 심판을 받고 수감되는 것을 보며 국제사회는 한국의 민주화에 갈채를 보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역시 법 앞에선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숙된 민주주의라는 목소리가 높았고 나 역시 그런 주장을 폈다. 하지만 집권 후 부처마다 적폐청산위원회를 두고 과거 정부에서 실행한 정책을 샅샅이 뒤지거나, 제도와 시스템을 고치기보다는 특정인의 적폐에 집중하는 모습에는 근대적 전제군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칼자루를 쥔 채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로 나만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흑백논리는 매우 위험하며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직접적인 대중 동원은 더욱 쉬워졌다. 설사 집권당 대표의 공언처럼 진보세력이 20년간 집권한다 해도 견제와 균형이 필수인 민주사회에서 한 축이 무너지면 다른 축도 무너지게 돼 어렵게 구축된 한국의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힘을 합해 이룬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두 세력이 서로 경쟁도 하고 대립도 했지만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산업화-민주화라는 큰 흐름이 이어졌고 국제사회도 한국을 대표적인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인들만 이런 업적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해도 국민의 적폐청산 피로감은 쌓여가고 있고 산적한 국내외적 난제들을 해결할 동력은 약화되고 있다. 집권 3년 차가 돼 가지만 고용과 경제지표는 악화되는 가운데 사회갈등은 지속되고 있고 남북 관계 개선을 제외하곤 외교·안보의 전략과 성과는 마뜩잖으며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증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단임 대통령제라는 제도적 제약과 2020년 총선 등 국내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이제 문 정부가 힘껏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미 지지율이 데드 크로스를 했다는 여론 조사도 나오고 있다. 2019년은 현 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릴 매우 중요한 해이다. 적폐만 청산하면 무능한 정부로 역사에 남아도 좋다는 각오가 아니라면, 새해엔 분열과 대립보다 화합과 대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문 정부가 주장하는 ‘포용국가론’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오려면,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 즉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협치의 정치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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