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50원 감당 못한다는 <중앙>, 1900만원 오른 임대료는?

박세열 기자 2018. 12. 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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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우리는 '갓물주'에게 매일 통행세를 상납한다

[박세열 기자]

 
명동상인 30명 중 29명 "(2019년 최저임금) 8350원 감당 못합니다" 

27일 자 <중앙일보> 1면 기사다.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에 있는 1층 7석, 2층 30석 규모의 한 일본식 라면 가게를 취재했다. 가게 사장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8350원이라고 하자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직원 2명, 아르바이트생 2명이었던 이 가게는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을 각각 1명씩 줄였다. 명동, 종로 3가 일대 식당, 편의점, 노래방 등 최저임금 적용 업종 30곳 중 29곳이 "최저임금 감당 못한다"고 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명동의 한 미용실 주인은 "내년엔 아르바이트생에게 줘야 하는 비용만 최소 50만 원 이상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1년에 50만 원 정도 비용이 늘어 큰 문제가 생긴다. 

<중앙일보>는 "최근 몇 년 동안 임대료가 다락같이 오르고, 상권은 침체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올해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급격히 뛰면서 '직격탄'을 맞았다"고 썼다. "임대료가 다락 같이 오르고"라고 지적했지만, 희한하게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임대료는 어떻게 "다락같이" 올랐는지 언급이 없다. 그래서 찾아봤다. 2달 전인 10월 20일 자 <매일경제> 기사 '임대료 ㎡당 월 100만원뜨거워진 명동'을 참고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글로벌 부동산서비스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3분기 리테일 부동산 시장 보고서'를 통해 명동 중심의 대로변 상가 요구임대료(호가)가 ㎡당 100만 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월 100만 원이다. 평당 임대료가 30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상상이 어려운 숫자다. 

▲ <중앙일보> 누리집 갈무리.

얼마나 올랐을까. 명동 메인 상권 임대료는 2011년 ㎡당 63만 원 수준이었던 게 2012년 70만 원대, 2014년 88만 원대, 2016년 92만9200원 수준, 2017년 93만7700원으로 올랐다. 6년 만에 50% 이상 뛰었다. (2016년~2017년 상승분이 낮은 것은 사드 배치 여파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더 올랐을 공산이 크다.) 같은 기간 2011년 최저임금은 4320원, 2017년 최저임금은 7530원이다. 비슷한 인상률이다. 

여기에서 '백분율 비교의 함정'을 제거하고 체감 수준을 보자. 

20평 수준의 가게로 치면, 2011년에 명동의 금싸라기 땅에 있는 매장 월세가 3800만 원가량이었다. 2017년엔 5700만 원가량으로 월 1900만 원 정도가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분은 어떨까. 대강 계산을 해 봤다. 8시간 풀타임 근무, 휴무 없음을 가정하고 월 77만 원 수준이 업주가 부담해야 할 인상분이다. 

1900만 원과 77만 원. 어떤 게 자영업자에게 더 부담이었을까? 

물론 월 임대료 수천만 원은 '팩트'에 문제는 없을지라도, 극단적 사례가 제공한 수치긴 하다. 명동 중에서도 가장 임대료가 높은 곳을 선정했고, 이 정도 수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대기업 프랜차이즈(주로 홍보 효과를 노린 직영이거나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 뿐일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사례를 보자. 지난 8월 말 중구 명동2가의 대지면적 63.1㎡(19평) 규모 꼬마 빌딩이 200억 원에 거래됐고, 빌딩의 새 주인은 보증금 15억 원에 임대료 연 1억  원을 불렀다고 한다. 20평도 안 되는 매장 한 달 임대료가 830만 원이다. 

최저임금으로 50만 원 더 부담하게 돼 세상이 무너질 지경인데, 1년에 1억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는 안녕하다. 

물론 이런 임의적 통계와 무작위 비유는 정교하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단순 계산일 뿐이고 극단적 사례가 과도하게 인용됐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동의 임대료 규모, 그리고 임대료 상승률이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중앙일보> 기사로 돌아와 보자. 임대료가 자영업자를 더 힘들게 할까,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를 더 힘들게 할까? 결론은 내리지 않겠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고, 그러니 <중앙일보> 같은 매체가 '최저임금이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지 않았겠나. 임대료 오르는 건 당연하고, 임금 오르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유겠다.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기사는 언론이 세상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보여준다. 노동자 임금이 오른다는 기사의 주제는 '망하는 명동'이고, 임대료가 오른다는 기사의 주제는 '뜨거워진 명동'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우리가 사 먹는 음식값엔, 우리가 사 입는 옷값엔 얼마의 임대료가 포함돼 있을까? 한 그릇에 8000원짜리 라면을 사 먹을 때, 그 8000원 안에 건물주가 가져가는 임대료는 어느 정도일까? 재료 원가와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사장이 남길 이윤을 제하고, 대체 얼마를 건물주가 내 호주머니에서 빼가는 걸까? 라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떨칠 수가 없다. 이게 이상하지 않은 게, 정상일 리 없다. 

우린 어쩌면 '갓물주'라는 거대하고 힘 있는 일련의 종족에게 '통행세'를 상납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매일 밥을 사 먹고, 옷을 사 입을 때도 우리가 인식 못 하는 사이에 각종 '임대료'를 부담하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한 달 150만 원 손에 쥐는 노동자가, 10억, 20억 자산가인 집주인에게 월세 50만 원씩 꼬박꼬박 상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임대료를 매일 매일 본 적도 없는 '갓물주'들에게 내고 있는 것일까. 저임금 노동자들은 1시간 일해도 먹을 수 없는 8000원짜리 라면인데, 여기에서 몇 천 원이 분명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갓물주'의 호주머니에 자동 직행하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가게 사정이 이럴 것인데, 어떤 언론들은 50만 원 인건비를 저주한다. 

내가 사 먹는 음식 속에 재료값 빼고 임대료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알고 싶다. 일상의 불로소득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는지, 그런 통계를 누군가 개발해 봤으면 한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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