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럼프도 시진핑도 아베도..한국은 비빌 언덕이 없다

김민석 2018. 12. 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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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분담금 난항, 미 "더 내라"
매티스 사임, 주한미군 감축 우려
한·일 레이더파로 쌓인 갈등 증폭
한·중 사드 이후 냉랭 관계 지속
북핵 통제불능 가능성 커져만 가
우리 도울 동맹·우방 회복 시급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거꾸로 가는 한국 안보 환경

무술년을 넘기면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고립될 위기에 놓였다. 한·미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데 동맹파로 알려진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교체된다. 북한의 비핵화는 진척되지 않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이 어디로 튈지 모를 상황이다. 또한 역사문제 속에서도 군사적으로는 협력관계였던 한·일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핵무기를 증강 중인 북한은 남북군사합의를 근거로 우리 군의 훈련과 방위력 개선에 간섭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북한 비핵화와 남북 화해무드가 지속할까.

이달 말로 이임하는 매티스 장관부터 얘기해보자. 그는 분명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군인이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도 용맹을 떨친 매티스 장관은 미군 내에서 드물게 용기가 있고 정직한 인물로 정평이 났다. 수도승과 같은 자세로 사색과 자기 절제에도 엄격했다고 한다. 수시로 돌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결정에 바른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관료라는 평가도 있다. 매티스 장관은 한·미동맹의 앞날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고 한다. 그런 그가 국방부 장관직을 그만두면 앞으로 한반도 사태를 가늠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지나간 일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군사옵션을 꺼냈을 때 매티스 장관이 반대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군사옵션을 발동했을 것이고, 본격적인 작전이 개시되기 전에 김 위원장은 더 고개를 숙이고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랬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더 신속하게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군사옵션에 대한 매티스 장관의 반대 건의는 잘못된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장관 때문에 한반도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할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시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이어 미국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군사옵션 카드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제거하는 이른바 ‘코피작전’에 대한 최후 서명만 남기고 있었다. 이에 앞서 미 국방부는 최대 4척의 항공모함을 동원하는 코피작전의 세부훈련까지 마쳤다. 트럼프 대통령 결재만 나면 곧바로 작전을 실행할 태세였다. 실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상공에서 한·미의 대규모 공중훈련을 본 뒤 심각한 위기감에 빠졌다. 그 시기에 평양을 방문했던 러시아 전문가의 전언이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다급했던 김 위원장은 이를 절묘하게 활용했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리고, 북·미 정상회담도 사상 처음 성사됐다. 한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는 북한 비핵화가 곧 이뤄질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거의 진전이 없다. 북한은 오히려 화해무드 기간 동안 핵무기 생산에 열을 올렸다.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는 한반도 비핵화도 요구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북한은 60∼65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은 2020년까지 100발 이상의 핵무기를 가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 핵 전투력은 통제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내년에 북·미가 핵협상에 성공해도 북한 핵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ICBM과 핵무기 일부 폐기로 핵협상을 마무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그래서인지 이젠 트럼프 대통령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억지춘향식으로 김 위원장을 달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핵을 보유한 김 위원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더 다급해졌다. 내년 봄부터는 미 의회가 북·미 핵협상 경과를 일일이 보고받고 확인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대북제재를 풀어줄 수도 없다. 의회의 견제로 북·미 정상끼리 탑-다운(top-down)식 일괄합의도 쉽지 않다. 진퇴양난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매티스 장관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혼선으로 내년에 북·미 핵협상이 순조롭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및 한반도 정책은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주한미군 주둔을 지원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심각하다. 조만간 타결이 되지 않으면 당장 내년 4월부터 주한미군의 한국인 근로자 급여가 중단된다. 돈 문제는 민감하다. 한·미는 분담금을 1조3000억원까지 근접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기존 분담금 9600억원의 2배로 올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그는 어제도 이라크를 방문해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의 경찰일 수는 없다”면서 “모든 부담을 미국이 져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분담금을 더 내라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철군도 결정했다. 따라서 분담금 협상이 결렬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명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의 반한감정도 심상찮다. 지난 20일 동해 대화퇴어장에서 발생한 레이더파 사건 때문이다. 당시 해군 광개토대왕함은 조난한 북한 소형 어선을 찾기 위해 대함용 사격통제레이더를 작동했으나, 항공기 요격용 레이더(STIR)는 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우리 함정이 STIR 레이더로 자국의 초계기를 위협했다고 우긴다. 방위성 장관이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했고, 외무성 국장이 우리 외교부를 찾아 항의했다. 일본이 사소한 군사 문제로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전례 없다. 일본은 지난 10월 욱일기 논란으로 제주도 관함식에 함정을 보내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에 대한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로 반감이 쌓여있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과는 협조적이다. 내년 중국 관함식 참가를 추진 중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0월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내년엔 시 주석이 일본에 갈 예정이다. 이에 비해 한·중은 사드 사태 이후 여전히 냉랭하다.

종합하면 한국은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관계가 훼손될 가능성이 없지 않고, 일본과는 반감이, 중국과 우호관계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남북은 국방백서에 ‘북한군=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할 정도로 우호적(?)이지만, 실상 북한 핵위협은 커지고 있다. 반면 남북 군사합의로 우리 군의 대북감시와 훈련을 제한받고 있다. 이처럼 우리 방위력은 담보할 수 없는 상태인데 동북아에선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한국의 안보 고립화 현상을 우선 되돌려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조속히 원만하게 마칠 필요가 있다. 남북 화해·통일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도울 동맹 및 우방 관계를 돈독하게 다져야 하지 않을까.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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