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역사 제주감귤' 일본과 종자전쟁 직면한 이유

최충일 2018. 12.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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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획] 최근 일본이 아수미·미하야 품종보호 조치
제주산 94%가 일본산..국산 품종 개발 필요
1960년대 재일제주인 감귤묘목보내기 결과
27일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1년간 키운 아수미 감귤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의 한 감귤 농가. 농장주 김모(44)씨가 2300㎡(약 7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다 익어가는 열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가 키우고 있는 감귤은 ‘아수미’ 품종이다. 일본산이다. 김씨는 "묘종업체가 일본으로부터 아수미 묘종을 정식으로 수입해 농가들에 판매했다"며 "이를 믿고 1년 농사를 지었는데 주요 판로가 막혀 허탈할 뿐"이라고 말했다.
27일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1년간 키운 아수미 감귤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최충일 기자
김씨 감귤의 주요 판로가 막힌 이유는 일본이 자국 종자에 대한 보호권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아수미와 같은 일본산 신품종 감귤을 재배한 제주농가들이 위기에 몰렸다. 일본은 자국의 신품종 만감류(완전히 익은 후 수확하는 감귤 품종)인 ‘아수미’와 ‘미하야’를 지난 1월 15일 우리 정부에 신품종으로 ‘품종보호’ 출원했다.
27일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1년간 키운 아수미 감귤을 따고 있다. 최충일 기자
두 감귤은 일본 국립연구개발법인이 2014년에 개발한 신품종이다. 당도가 10브릭스(Brix) 내외인 일반감귤보다 3~4브릭스 이상 높다. 특히 미하야는 얇고 붉은 껍질이 특징으로 국내에서 '홍미향'또는 ‘썬레드’라 불리며 2~3년 전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제주에는 아수미 118농가, 미하야 90농가 등 208농가가 두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재배면적은 46㏊ 이상, 출하물량은 920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품종보호 등록은 일종의 특허권으로, 신품종 개발자는 최대 25년간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신청된 외국의 품종보호 등록은 통상 2년 4개월이 지나면 가부가 결정된다. 일본은 두 감귤의 품종보호 조치를 하지 않다가 올해 1월 15일 출원을 공개했다. 이 때문에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두 감귤에 대한 임시보호권이 발효 중이다. 임시보호권이 발동되면 종자(묘목 등)의 판매가 금지된다. 제주도와 농·감협은 지난 11월 임시보호권의 효력이 묘목 등 종자 외에 키워진 과실에도 있다고 봤다. 식물신품종 보호법 제131조(침해죄)의 ‘품종보호 출원인 허락 없이는 해당 품종의 종자를 증식·판매할 수 없다’는 내용 때문이다.
이를 어기면 최대 징역 7년 또는 벌금 1억원에 처해진다. 이 때문에 일부 농협은 지난 11월 7일 농가에 ‘출하되는 감귤은 2년후(품종보호 등록후) 형사법 처벌 및 민사로 로열티 청구 예정’이라는 내용의 문자까지 보냈다.

27일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1년간 키운 아수미 감귤을 따고 있다. 최충일 기자
현재 큰 피해를 본 것은 수확기가 12월 초인 ‘미야하’ 재배 농가들이다. 서귀포시 대정읍의 미야하 농장주 송모(73)씨는 “1년간 농약 맞아가며 열매와 씨름했는데 열매를 다 키워 놓고도 제때 따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6600㎡(약2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미야하를 키워왔다. 수확철 농협의 계통출하(농어민이 협동조합을 통해 출하) 불가 통보로 제때 열매를 따지 못해 지난해보다 35%가량 매출이 줄었다.

'정말로 팔 수 없냐'는 농민들의 출하 문의가 이어지자 도는 19일 중앙정부에 관련 법령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지난 26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두 일본산 품종에 대해 ‘수확물(과실)에 대한 권리 효력은 미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 아수미 열매가 열려 있다. 최충일 기자
이에 대해 농협 제주본부 관계자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유권해석 결과를 받은 만큼 다시 출하가 실시될 수 있는지 각 지역 농협별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다만 추후 품종보호 출원이 확정되면 로열티 지급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감귤관련 로열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겨울철 국민 과일인 감귤의 대명사인 제주산 감귤은 94%가 일본 종자다. 제주감귤의 역사는 기술상으로 약 1000년 전의 고려시대 문종 6년(105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때의 품종은 현재와는 매우 다른 재래종이다. 현재의 것은 1960년대 재일제주인들의 감귤묘목보내기 운동을 통한 품종이 대부분이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 아수미 열매가 열려 있다. 최충일 기자
이때 들여온 종자를 키우거나 개량해 지금에 이르렀다. 일본산이지만 50여 년 이 지나 관련법에 따라 로열티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미하야와 아수미처럼 최근의 품종은 앞으로도 지속해서 농가 운영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국내 자체의 감귤 품종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윈터프린스·하례조생 등 새로운 품종을 개발했지만, 경제성에서 기존 일본산에 밀린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새품종 개발이 더딘 이유는 품종의 상품성·안정성 등을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등 개발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품종 개발에만 족히 20년이 필요하다. 제주대 생명자원과학대학 송관정 교수는 “품종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나무가 자라기까지는 보통 5년이 소요된다”며 “농가 입장에서 5년 동안 수입이 없는 품종으로 전환하기란 쉽지 않은 만큼 국내 품종의 개발과 정착을 위한 더 많은 지원책 절실하다”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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