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의 2배·교도소 합숙'..기간·장소·형태, 한국이 가장 가혹

2018. 12. 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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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의 2배·36개월은 벨라루스뿐
벨라루스도 다양한 시설서 복무
한국같은 36개월 합숙은 유례없어
예비군 훈련 상응 대체근무도 시켜
현역의 2배인 8년 336시간 유력 정부,
반대여론 의식해 징벌적 설계
"처벌 말라는 판결 취지에 정면 배치"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가 발표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방부가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최종안으로 내놓은 ‘36개월 교정시설 합숙근무’는 복무 기간과 복무 장소, 복무 형태 등 모든 측면에서 징벌적 요소를 담고 있어 대체복무 도입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국방부는 이달 13일 마지막 공청회를 하기도 전 만들어진 정부 ‘초안’을 ‘최종안’으로 그대로 강행·확정했다. 여론 수렴 과정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다.

우선 대체복무 기간과 관련해 국방부는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자(34~36개월)의 복무 기간과 형평성을 맞췄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과 ‘36개월 교정시설 합숙근무’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공중보건의사에게는 관사와 최소 중위 1호봉 기본급이 지급되며 출퇴근으로 업무를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복무 기간은 공중보건의사를 기준으로 36개월로 정해놓고, 정작 급여나 합숙 등 복무 환경은 형평성 기준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대체복무자의 복무 기간을 현역의 2배인 36개월로 정한 것은 국제기구들의 권고 기준과도 어긋난다. 2008년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이 무장 군 복무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1999년 당시 프랑스 정부가 대체복무 기간을 2배로 정한 데 대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이는 자유권규약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한국처럼 징병제를 도입한 다른 나라들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 복무 기간과 같거나 국제기구 권고 기준인 1.5배를 초과하지 않는다. 현재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25개 나라 가운데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의 1.5배를 넘는 나라는 5개 나라(20%)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리스(15개월), 키르기스스탄·조지아·몽골(24개월) 등 4개 나라는 절대적인 대체복무 기간이 한국보다 훨씬 짧다. 대체복무 기간이 36개월이나 되는 나라는 한국과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등 3개국뿐인데, 그나마 아르메니아는 현역이 24개월로 대체복무 기간이 1.5배를 초과하지 않는다.

국방부는 이날 “예비군 훈련에 상응하는 대체복무 방안도 마련했다”고 밝혔는데, 정부안대로라면 대체복무자들은 ‘36개월 복무’를 마친 뒤에도 일반 현역보다 2배나 긴 기간 동안 예비군 훈련에 상응하는 대체근무를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일반 현역으로 제대한 예비역이 8년 동안 168시간씩 훈련을 받는 데 비해, 대체복무를 마친 이들은 예비군 훈련 대신 8년 동안 336시간씩 대체근무를 한다는 얘기다. 복무 장소와 형태를 따져봐도 정부의 대체복무 방안은 지나치게 징벌적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36개월 복무를 하는 아르메니아는 대체복무자에게 양로원, 고아원 등 의료·복지시설에서 청소, 배달, 취사, 구조, 간병활동 등을 하도록 하고 합숙이 아닌 출퇴근 형식으로 복무하게 한다. 벨라루스도 36개월 대체복무자에게 보건의료, 사회, 농업, 철도 유지보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한다. 36개월 동안 복무 분야를 교정시설로 한정해 합숙을 하도록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심지어 2000년 현역(12개월)의 1.2배인 14개월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가 올해 징병제를 폐지하기로 한 대만의 경우에도 경찰, 소방, 사회, 환경보호, 의료, 교육서비스 등 복무 유형이 다양했다. 국방부는 이날 대체복무자가 교정시설에서 취사 등 ‘강도 높은 노동’을 수행하게 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현역병보다 더 힘들게 복무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사실상 정부가 반대 여론을 의식해 제도를 최대한 징벌적으로 설계했다고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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