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 갈등..10년 뒤 한국 택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2018. 12. 29. 09: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전국 택시 산업 종사자들이 지난 10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0~20년 뒤, 한국의 택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 9월말 기준 전국에 25만여대인 택시는 과연 몇대나 남게 될까요? 요금은 얼마쯤 되고, 누가 운전하고 있을까요? 지나가는 택시에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산업팀에서 정보기술(IT)을 담당하는 박태우라고 합니다. 요즘엔 정보기술업계 기자인지, 택시업계 기자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카풀을 둘러싼 ‘정보기술 기반 모빌리티’ 업계와 택시업계의 논란 때문입니다.

택시기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또 택시기사 수만명이 집회를 할 정도로, 큰 사회적 논란이 된 지금의 카풀?택시 논쟁은 사실 ‘택시가 안 잡힌다’, ‘택시가 불친절하고 서비스가 엉망이다’는 택시 이용자들의 불만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원인은 택시 공급과 택시를 타려는 수요간의 고질적인 수급불균형입니다. 택시가 꼭 필요한 아침 출근시간이나 심야시간에 법인택시 절반은 차고지에 세워져 있고, 개인택시는 기사 자택 주차장에 세워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운전할 사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서울 법인택시 기사의 임금은 시급 6656원에 불과합니다. 한달 260시간을 일해 하루에 13만여원의 사납금을 꼬박꼬박 내고나면 한달 평균 215만원을 받습니다. 법인택시 업체들은 구인난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면 임금을 올려야 하는데, 택시회사는 임금을 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고령자가 대부분이라 일반 직장인들이 퇴근할 즈음에 대부분 퇴근합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택시회사들은 ‘오늘 가동된 택시대수×사납금’을 경영의 주요 지표로 삼습니다. 보유한 택시 가운데 가동률이 60% 정도만 되면 이익이 남는 구조라고 합니다. 사납금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택시기사가 승객을 언제 어디서 몇 명을 태웠는지, 어떻게 하면 승객을 더 많이 태워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서비스 질을 올릴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카카오모빌리티와 같은 정보통신기술(IT) 기업들입니다. 2013년 시작된 카카오택시는 ‘배회·순항영업’(그냥 돌아다니다가 손님을 발견하면 태우는 방식)을 하던 택시들이 ‘호출영업’(손님이 부르면 가는 방식)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승객들은 길거리에서 오는 택시를 마냥 기다리거나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택시를 잡는 것이 아니라 앱으로 간편하게 택시를 호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택시업계가 관심 없었던 수급불균형의 문제를 데이터를 통해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공급이 부족한 곳으로 택시를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지도 못했죠.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우리는 승객이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방법의 혁신은 이뤘지만, 택시서비스 자체의 혁신은 이루지 못했다. 그게 가장 안타깝다”고 합니다. 사실 ‘공급자’의 문제는 ‘공급자’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번 카풀 논란은 택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카풀 또는 승차공유서비스의 허용여부와 관계 없이, 택시업계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확인해준 셈이죠. 그래서 여당은 택시?카풀업계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완전월급제 등 택시 관련 지원책들도 논의될 수 있는 자리인데, 택시 4단체는 28일 열린 이 간담회에 불참했습니다. “카풀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으면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이런 태도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소비자들의 택시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은 요금규제, 외양규제 등 혁신을 어렵게 한 택시산업에 대한 현행 규제들 때문이기도 있지만, 혁신의 노력을 등한시한 택시업계의 책임도 큽니다. 택시업계의 현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택시업계가 대화에 불참한다면, 카풀 허용에 관한 논의는 물론이거니와 택시 혁신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본인들이 원하는 규제 개선을 위해서라도 대화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최근 에스케이텔레콤(티맵택시), 카카오(카카오카풀) 등 정보기술업체들이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막대한 투자를 해가며 모빌리티 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머지않아 현실화할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해 데이터와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으로 읽힙니다. 자율주행 시대가 열리면, 모빌리티업체들은 기사 없는 택시를 내놓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카풀 또는 승차공유 서비스에 대한 논란이 끝나기도 전에 자율주행시대의 거대한 파고가 들이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택시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택시노동자들은 어떻게 보호할지, 막대한 이익을 향유할 모빌리티업체엔 어떤 법적·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야 할지, 우리도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신뢰도 1위 ‘한겨레’ 네이버 메인 추가]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