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러링과 페미니즘은 무엇을 이뤘나

박세준 기자 입력 2018. 12. 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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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2018년에는 성차별 관련 논란이 거셌다. 논란은 1월 현직 검사가 직접 검찰청 내부의 성추문을 폭로하는 미투(Me too)운동과 함께 시작됐다. 이어 정치·경제·문화·예술계에도 들불처럼 미투운동이 번졌다. 여성계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불리함과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를 계기로 2015년부터 ‘미러링’ 등의 활동을 이어가던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와 여러 단체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성이 당해온 차별을 남성에게 그대로 되돌려주자는 미러링을 하던 이들은 한층 더 격한 목소리를 냈고, 일부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과도한 미러링과 남성을 향한 공격은 남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성차별 논란이 성 대결 양상으로 번졌다. 워마드 등을 주도하는 여성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여성차별을 넘어선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젊은 남성들은 아직 성차별적 사회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남성 전체를 기득권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변한다. 또한 당장 여성의 대학 진학률 등 주요 지표가 남성을 앞지르는 사례가 많은 만큼, 미러링 형식의 여성운동은 이제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반박한다.

논란의 핵, 미러링과 워마드

폭행 사건이 벌어진 서울 이수역 근처 술집(오른쪽), 여성들은 남성들과 술집 앞 계단에서 승강이를 벌이다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DB]

최근 성 대결 양상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 ‘이수역 폭행 사건’이다. 한 여성이 서울 이수역 근처 술집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행당했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과 사진을 올린 것이 시발점이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가해 남성을 처벌해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30만 명이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진상은 달랐다. 사건 현장 영상에 따르면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여성들이 가게 내부 손님들에게 먼저 욕설을 했다. 이에 현장에 있던 남성들이 제지하자 여성들은 먼저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영상이 공개되자 상황이 반전됐다. 여성이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했다는 주장이 허위로 드러나자 역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경찰 발표로 사건 전말이 알려졌다.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여성 가운데 1명은 남성들이 다른 여성을 발로 차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2018년 12월 26일 남성 3명과 여성 2명을 모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공동폭행), 모욕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다. 이 중 계단 밖에서 몸싸움을 벌인 남성 A씨와 여성 B씨에게는 상해 혐의도 추가 적용됐다. 경찰은 “남성 운동화와 여성 상의를 국과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흔적이 나온 것이 없었다. (여성이) 밀려 넘어졌다는 남성의 주장이 맞는다 해도 계단이 가파르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상해죄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의 메인 화면. [워마드 홈페이지 캡처]

이 사건 외에도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했던 행동이나 게시글이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종종 있었다. 홍익대에서 누드크로키 수업 도중 한 여성 모델이 남성 모델의 나체를 찍어 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린 사건도 있었다. 이 커뮤니티는 과거 여성주의를 주창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사이트다. 2016년 메갈리아에서 성소수자 비하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 중 성소수자 비하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던 층이 갈라져 나온 곳이 워마드로 알려졌다. 워마드는 이외에도 낙태 인증이나 성체 훼손 등의 게시글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들의 목소리를 지지하는 사람은 이런 행동에도 다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워마드는 이성애자 남성뿐 아니라 성소수자 남성이나 장애인 남성도 여성혐오, 여성 착취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미러링) 표현 정도는 문제가 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평가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고?

당초 미러링은 남성이 여성에게 한 혐오 발언을 그대로 돌려주는 형식이었다. 일례로 한국 남성의 멸칭인 ‘한남’이 있다. 그동안 일간베스트 등 일부 커뮤니티에서 한국 국적의 여성을 비하하는 호칭인 ‘김치녀’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한 대응 표현이었다. 또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말을 듣는다’는 표현을 ‘한국 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패야 한다’(숨쉴한) 등으로 돌려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돌려주는 것을 넘어 새로운 혐오를 낳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워마드나 일부 트위터 계정에서는 ‘한국 남자 사형’ ‘살남’(한국 남자를 죽인다) 등의 게시글이 훼손된 시신 사진과 함께 올라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버지나 오빠 등 가족 중 남성을 살해하고 싶다는 내용도 종종 올라온다.

도를 넘은 혐오 발언에도 지지층은 공고하다. 이들은 혐오 발언이 강해지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취업준비생 이모(26·여) 씨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것처럼 미러링의 표현 강도보다 미러링을 시작한 이유를 봐야 한다. 당장 여성은 일상적으로 성추행 및 강력범죄의 공포에 고통받고 있다. 미러링은 이 같은 현실을 남성에게 알릴 수 있는 일종의 충격 요법”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젊은 남성들은 몇 발짝 더 나아간 미러링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여성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반감이 컸다. 직장인 정모(28) 씨는 “‘한남’ ‘소추소심’(성기가 작으면 소심하다는 뜻) 같은 미러링에는 일부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간 남성이 너무 쉽게 여성에게 ‘김치녀’라며 비난하거나, 외모 또는 몸매 등으로 품평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

한편 그는 “‘재기해’(자살하라는 뜻)라는 단어를 시위에서 사용하거나, 명백히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도 피해자 조롱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다. 여성혐오를 타파하겠다는 사람들이 혐오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남성들이 특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각이다. 직장인 유모(28) 씨는 최근 친했던 대학 동창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씨는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내용의 글을 쓴 친구가 있었다. 멀쩡한 사람까지 범죄자로 몰아가는 내용이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반박이라도 하려고 댓글창을 열었는데 꽤 많은 사람이 동조하거나, ‘한국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는 식의 댓글이 달려 아연했다”고 밝혔다.

왜 남성을 성범죄자로 모나

하지만 여성도 성범죄 피의자가 될 수 있다. 2018년 12월 17일 서울 소재 한 사립대학의 단과대 학생회장이 사퇴했다. 학과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이유였다. 또 대학 성추문 사건인가 싶지만, 이번 사건은 가해자인 학생회장이 여성,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2018년 11월 23일 학생회장 C씨는 학교 인근에서 열린 학과 일일호프에 참여해 평소 알고 지내던 남학생 D씨에게 “옆자리에 앉으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D씨는 거듭 거부했다. 이에 C씨는 “술을 같이 마셔주는 것도 서비스의 일환”이라는 발언을 이어갔다. D씨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성희롱”이라며 C씨에게 주의를 줬다. 동석했던 학생들은 “C씨가 D씨의 팔을 만지는 등 신체 접촉도 했다”고 전했다. 이에 D씨는 단과대 학생회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학생회 자체 진상조사를 거쳐 C씨는 사과문을 올린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내용만 보면 과거 단체카카오톡(단톡)방 성희롱 등에 비해서는 수위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문제가 커진 이유는 C씨의 과거 언행 때문이었다. 재학생들에 따르면 C씨는 총장과 재학생 간 간담회 자리에서도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 질문하는 등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C씨도 사과문에서 ‘평상시 젠더 폭력에 대해 소리 높여 말하던 내가 이와 같은 행동을 했음에 큰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남성은 존재만으로 성차별 가해자?

불법촬영물 유포 및 협박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구하라 씨의 전 남자친구 최모씨. [뉴스1]

물론 성범죄자 중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실이 경찰청이 제출한 성범죄 발생검거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7년 검거된 성범죄자 3만2768명 중 여성은 830명뿐이었다. 게다가 각종 불법촬영물에 대한 공포도 크다. 특히 전 애인이 성관계 장면을 찍거나 녹화해 유출하는 일명 ‘리벤지 포르노’가 논란이 됐다. 관련법에 따르면 해당 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대 5년 징역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징역형이 선고된 일이 드물고, 집행유예 비율이 높아 문제가 됐다. 2018년 9월에는 유명 가수 구하라 씨가 전 남자친구에게 불법촬영물로 협박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다. 유명 인사마저 불법촬영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여성의 불안감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과거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숙박업소 등에서 찍힌 불법촬영물의 경우 남성 피해자가 사건을 접수한 적은 없다.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사회적 지탄, 순결이나 정조에 대한 이중 잣대, 혹은 촬영물이 유포되더라도 여성의 신체만 대상화돼 소비될 것이라는 점을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것을 유포하는 남성도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전부 드러나 있다 해도 그것을 편집하지 않고 원본 상태로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앤드리아 드워킨과 그의 저서 ‘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위키미디어커먼스]

일부 여성이 ‘남자=잠재적 성범죄자’라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는 또 있다. 사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앤드리아 드워킨의 주장과 같다. 드워킨은 저서 ‘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에서 ‘남자들은 휴머니스트, 인간, 인도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간범, 구타범, 약탈자, 살인자들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드워킨이 막으려 한 것은 포르노였다. 책은 남성들이 성장 과정에서 여성 억압적 생활태도를 사회화한다고 말한다. 그 사회화 도구로 포르노가 사용되니 이를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1980년대 초반에 쓰인 책이 2010년대 후반 한국 여성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는 것.

워마드 등에서는 이 주장을 금언처럼 따르고 있지만, 드워킨의 생각은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여성학자 로즈메리 퍼트넘 통은 저서 ‘Feminist Thought’(1998)를 통해 ‘모든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포르노 작가이고 매춘 중개인이며 강간범이고 여성학대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생산적인 남성혐오증이다. 실제로 많은 남녀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페미니즘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국내 각종 학술지에도 드워킨의 주장에 반박하는 글이 실렸지만, 매체에 소개된 것은 이 급진적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뿐이었다. 일례로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칼럼을 통해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성차별 구조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고 한 발 더 나아간 주장을 펴기도 했다.

운동장은 실제로 기울어졌나

젊은 남성은 이 같은 주장이 불편하다. 중년 세대가 성차별로 고통받은 것은 맞지만, 작금의 젊은 세대는 차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생 임모(25) 씨는 “중·장년의 남성은 여성이 억압받고 차별받았다는 내용에 공감할지 모른다. 실제로 그들이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해 활발히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여성 차별적 사회였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교육현장에서도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기회를 덜 받거나 입시 경쟁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 가산점 등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이 더 많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사회적 억압을 받아왔다는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20대 남성은 특히 여성이 억압받는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실시한 ‘제1차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불평등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의 84.5%는 30대 여성이었다. 반면 ‘남성이 불평등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20대 남성(35.4%)이 가장 많았다.

여성들은 취업시장에서는 여전히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생 박모(24·여) 씨는 “취업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일부 기업이 여성보다 남성을 우대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많이 양보해 대학 입시 등에서는 성차별적 요소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취업시장은 남성에게 관대하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489개사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남성이 여성에 비해 취업시장에서 유리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8.4%에 달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남성이 더 유리한 이유로는 ‘회사 특성상 남성에 적합한 직무가 많아서’(77.3% · 복수응답)가 꼽혔다. 남성을 더 선호하는 직무로는 영업, 제조, 생산, 구매 등이었다. 한편 여성을 더 선호하는 직무는 재무, 회계, 일반사무, 인사/총무, 디자인 등이 꼽혔다. 대기업 인사업무 관계자는 “화장품 회사에는 여성이 많고, 전자제품 회사에는 남성이 많은 것처럼 직무와 일에 따라 필요한 사람을 뽑다 보니, 남녀 성비가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딱히 성비를 정하고 채용을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여성계에서 여전히 남녀차별이 상존한다는 주장을 펴는 데는 통계적 근거도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 GGI)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이 조사 대상국 145개국 가운데 115위를 기록했다. 순위가 낮을수록 교육, 경제활동 등의 분야에서 성별 격차가 있다는 것. 하지만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점한 나라인 우간다, 인도 등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성범죄 법제화도 미비한 나라가 한국보다 높은 GGI 점수를 기록한 것.

오독이 만든 급진주의

이는 각 나라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남성 대 여성 비율을 측정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 붕괴나 내전으로 남녀 할 것 없이 사회·경제적 상황이 나쁘다면 오히려 GGI에서는 높은 점수가 나온다. 게다가 통계상 오류도 있다. 일례로 한국의 경우 군대에 가 있는 남학생도 대학생으로 간주해 남성 대학 진학률이 111%에 달한다.

한편 유엔개발계획(UNDP)이 같은 기간 발표한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 GII)에서는 한국이 188개국 중 10위에 올랐다. 아시아 국가만 봤을 때는 1위, G20 중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여성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 받은 인구의 비율, 경제활동 참가율, 출산 중 사망하는 여성의 수 등을 비교해 점수를 매긴 수치다. 물론 여기서도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50.0%)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16.3%)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청소년 출산율이 1.6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해 높은 점수를 받았고, 중등교육 이상 받은 여성의 비율도 88.8%로 상위권이었다.

저명한 철학자 줄리안 크리스테바. [뉴스1]

여성계에서 드워킨만큼이나 많이 인용하는 사람이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다. 독일 철학자 토릴 모이는 저서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에서 크리스테바의 이론을 ‘상징적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주변성과 관련된 부정성과 거부의 속성을 여성에게 부여하려는 시도’라고 평했다. ‘남성성’이나 ‘여성성’ 등의 개념을 탈피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자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의미지만, 인터넷상에서 이론이 퍼지면서 오해가 생겼다. ‘남성 위주의 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것이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식으로 읽혔다. 즉 흔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남성은 기득권이기 때문에 남성혐오라는 단어는 모순’이라는 식의 글도 이와 같은 오독에서 출발한 것.

하지만 미러링 전략은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다. 실생활의 많은 부분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직장인 주모(28·여) 씨는 “2017년만 해도 회식 자리는 물론, 업무시간에도 일부 상사나 동료 직원의 성희롱적 발언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관련 문제가 공론화되자 확실히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밝혔다. 대학생 양모(24) 씨도 “대학 신입생 때는 선배들이 자신의 성 경험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 전역 후에는 이와 같은 문화가 거의 사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남성혐오가 바꿔나간 것들

2018년 6월 서울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현장. [동아DB]

불법촬영물 범죄에 대한 대책도 빠르게 생기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12월 26일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 가운데 일부 법령의 개정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개정된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불법촬영물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웹하드업체나 포털사이트는 해당 촬영물을 즉시 삭제 혹은 차단 조치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반하면 20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불법촬영물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지금까지는 타인의 신체를 찍은 영상을 유포하면 처벌받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신체를 찍은 영상을 상대방과 공유했지만 상대가 이 영상을 유포할 경우 똑같이 5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메갈리아가 미러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소라넷이 폐지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러링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소라넷은 1999년부터 운영되던 음란사이트로 2015년 경찰이 수사에 착수, 이듬해 4월 서버가 폐쇄됐다. 2018년 6월에는 핵심 운영자 4명 중 1명이 구속된 바 있다.

진 장관은 미러링이 일부 선을 넘는 지점이 있다는 부분에는 동의했으나 다시 “(워마드, 메갈리아 등의 커뮤니티에) 자정적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이들을 다독일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책들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미러링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는 경험을 했으니, 이들은 현실정치에도 나서기 시작했다. 2018년 5월부터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가 있었다. 경찰이 홍익대 불법촬영 사건의 범인이 여성이라서 수사를 빠르게 진행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주장의 논리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의 일부가 원하는 바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 7월 주최 측인 ‘불편한 용기’를 만나겠다고 나선 것. 정부는 불법촬영 근절 정책 수립에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예정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찾아 단체 후원에 나서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진선미 장관이다. 진 장관이 의원이던 2015년 메갈리아에서 진 장관의 소라넷 수사 촉구 등의 활동을 보고 1000만 원을 모아 후원금을 낸 것.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는 2018년 12월 13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21대 총선에 페미니즘 정치 시동 걸기가 시작됐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8월 메갈리아가 생기자마자 (이용자들이) 진 장관 후원에 나섰다. 이들의 정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진선미 의원은 여성가족부 장관이 돼 1조800억 원가량의 예산을 집행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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