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그룹 총수의 새해 과제는 증명하는 것

송진식 기자 2018. 12. 2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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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그룹 대표이사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재계에 있어 무척 중요한 해다. 2018년의 재계는 그야말로 다사다난의 연속이었다. 주요 그룹 총수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어졌고, 5대 그룹 중 SK를 제외한 삼성·현대차·LG·롯데 등 4개 기업의 총수가 사실상 교체됐다. 그룹의 총수가 전권을 쥐는 독특한 경영방식을 갖고 있는 국내 재계에서 총수의 교체는 일국의 정권교체에 비견될 정도로 큰 변곡점이다.

새롭게 총수 자리에 오른 경영자들에게 지난해까지가 총수 자리에 오를 ‘자격’을 증명하는 기간이었다면 2019년은 그들이 총수 자리에 있을 ‘능력’이 있는지 증명하는 해가 될 전망이다. 더욱이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앞다퉈 새해 제조업의 위기가 보다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래서 2019년은 재계에 중요하고, 주요 대기업의 경제활동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 경제에도 중요하다. 60년 만에 돌아온 기해년은 본래 재물과 복을 상징하는 해다. 5대 그룹 총수들의 신년 과제를 통해 기해년이 재계와 국가 경제에 새로운 ‘기회의 해’가 될 수 있을지 전망해봤다.

■2018년 성적표, 삼성·SK만 ‘우수’

재계에서는 2018년 한 해 동안 “반도체만 좋다”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반도체의 경기가 활황을 탄 해다. 당연히 반도체가 그룹의 한 축인 삼성과 SK가 실적에서도 웃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겐 2018년이 그룹 실적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해였다.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고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은 최대 17조원을 돌파했다. 삼성의 2018년 실적은 이 부회장이 그룹 총수로서 처음 받아든 성적표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2018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삼성그룹의 ‘동일인’ 지위에 올랐다. 재계에서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은 곧 법적인 총수 지정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 부회장이 실질적인 삼성의 총수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오른 직후다. 하지만 2015년까지 재계의 관심은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보다는 이 회장의 회복 여부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 과정에 있었다. 이 회장의 와병이 장기화되면서 2016년에 들어서야 ‘총수 이재용’이 가시화됐다. 기업문화 혁신을 중심으로 한 이 부회장의 ‘뉴삼성’이 등장한 것도 이 해였고,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에 오른 것도 같은 해 9월이었다.

닻을 올릴 듯하던 이재용호는 그러나 2016년 하반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맞으며 개점휴업에 들어간다. 이후 1년여의 구속수감 기간을 거쳐 이 부회장이 대법 판결을 앞두고 당분간만이라도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은 2018년 2월 본인의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석방된 2018년 3분기까지 48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에프앤가이드 등이 전망하는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 전망치는 약 13조원 내외다. 4분기 추산치까지 합하면 ‘총수 이재용’의 첫해 성적표는 삼성전자에서만 60조원이 넘는다. 이는 증권가가 전망하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의 2018년 전체 영업이익 전망치인 120조원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최태원 SK 회장도 반도체 덕을 톡톡히 봤다. 재계가 추산하는 SK하이닉스의 2018년 영업이익은 22조원 규모다. 그간 업황 회복세를 타며 효자 노릇을 하던 SK이노베이션의 경우 2018년 연간 영업이익이 3조원에 못미치며 ‘3년 연속 연 3조원 영업이익 달성’이 좌절될 게 유력하다.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SK텔레콤도 5G 통신을 앞두고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SK하이닉스의 선전은 그룹 전체에 활력소가 됐다.

재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의 주식 1조원 상당을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등 친족들에게 증여한 배경도 SK하이닉스의 실적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가 반도체 호황으로 2018년에 돈을 많이 벌었다”며 “주식 증여는 큰 잡음 없이 본인의 총수직 승계에 그간 협조해준 친족들에게 최 회장이 보내는 답례인 셈”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는 SK텔레콤이며, SK텔레콤의 최대주주는 바로 SK㈜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의 경우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이 각각 2018년에 그룹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희비는 다소 엇갈린다. 정 수석부회장은 영업이익이 3000억원에도 못미치는 현대차의 3분기 ‘어닝 쇼크’ 속에 구원투수 격으로 등판한 경우다. 현대차의 2018년 실적 하락이 정 수석부회장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만큼 ‘정의선호’가 본격 출범하는 2019년의 실적이 정 수석부회장의 첫 그룹 경영 성적표가 될 전망이다.

올 6월 그룹 총수로 선임된 구광모 대표의 출발은 나쁘지 않다. 그룹의 주력인 LG전자가 2018년 3분기까지 2조627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이미 2017년의 실적을 넘어섰다. 증권가에서는 LG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을 적어도 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 중이어서 연간 영업이익이 처음 3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실적개선에 대한 부담감이 정 수석부회장보다 덜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처럼 2018년에 공정위로부터 롯데그룹의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그룹 지주회사 개편에 대한 시동을 걸었지만 뇌물공여 혐의로 2018년 초 구속돼 10월 열린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될 때까지 8개월가량 자리를 비웠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2017년에 중국사업 철수 등으로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지만 2018년엔 소폭 실적이 개선돼 반등의 계기를 맞고 있다.

2018년 8월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 방문한 김동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고개 숙여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임 ‘총수’들 위기극복 능력 입증해낼까

5대 그룹 총수들의 2018년을 종합해보면 어느 누구도 1년 내내 경영활동에 전념했다고 보기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2019년이야말로 5대 그룹 총수들의 진짜 성적표가 작성되는 해라는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경우 대법원 판결이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2019년 새해는 5대 그룹 모두 위기극복이라는 발등의 불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 결과가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신년 최대 과제는 반도체의 호황이 지나간 뒤 삼성의 연착륙을 이끄는 것이다. 반도체 부문의 경우 불과 5년 전인 2013년의 연간 영업이익이 6조9000억원 수준으로 2018년 한 분기의 반도체 영업이익 절반에도 못미쳤다. 당장 2019년부터 당시 수준까지 실적이 꺾이지는 않겠지만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에 따라 큰 폭의 실적 하락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3년엔 스마트폰이 주력인 IM부문이 연간 25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내며 전체 실적을 이끌었다. 하지만 반도체가 부진할 경우 이를 대체할 사업분야가 삼성에는 더 이상 없다는 게 문제다. 2018년 삼성의 IM부문 영업이익은 약 10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부회장이 반도체 이후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일단 꺼내든 카드는 인공지능(AI), 5G 이동통신, 바이오, 반도체 중심 전장부품 등 4대 분야 신사업이다. 이 부회장이 2018년 해외 출장을 통해 바쁘게 챙긴 사업들도 이들 4대 신사업 부문이다. 새해에는 신사업 부문에서 보다 구체적인 사업 모델과 성과를 발굴해내야 하는 게 이 부회장의 당면과제다.

■정의선 부회장은 실적 개선이 급선무

어닝 쇼크를 안고 그룹 경영을 시작한 정의선 부회장은 당장 실적개선부터 해내야 한다. 해외에서는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앞세운 미국 시장 공략과 중국 시장 판매 회복이 급선무다. 제네시스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올 1~11월 판매량이 9698대로 2017년 같은 기간(2만740대)에 비해 크게 줄었다. 제네시스 라인업 강화를 위해 내년부터 시장에 선보일 제네시스 SUV인 ‘GV80’ 등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가 관건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간 ‘중심’을 잘 유지하는 것도 정 부회장에게 떨어진 과제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수소차를 차세대 자동차로 낙점해 꾸준히 투자를 해오고 있는 한편, 최근 성장 중인 전기차 시장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전기차라는 ‘현재’와 수소차라는 ‘미래’에 적절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해 실적을 이끌어내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최태원 SK 회장의 경우 이 부회장처럼 반도체 이후의 그룹 먹거리를 발굴하는 게 과제다. 최근에도 SK텔레콤을 통해 ADT캡스를 인수하는 등 신사업 발굴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나 기업 인수·합병이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몇 년간 투자를 아끼지 않은 바이오 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최 회장이 지론처럼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추구 경영을 한층 더 강화할 전망이다. 그룹 관계자는 “그간 사회적 가치 추구 경영의 의미를 정립하고 확산하는데 주력했다면 올해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LG그룹 구광모 대표는 보수적인 그룹 문화에 혁신을 불어넣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 대표는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따는 대신 실리콘밸리에서 실무 쌓기에 나섰을 정도로 혁신지향 조직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대표가 제시한 그룹 신사업의 방향 역시 AI, 사물인터넷(IoT), 로봇, 자율주행차 등 실리콘밸리식 혁신기술과 맞물려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 대표 취임 후 LG에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외부 인재들이 영입되는 동시에 사업책임자가 교체되는 등 인적 쇄신도 단행됐다”며 “기존 사업분야에서 성장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지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마무리해 경영권을 보다 확고히 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개편과정에서 그룹에 대한 본인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카드로 점쳐지는 호텔롯데의 상장부터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등 계열사를 외부에 매각키로 한 것도 호텔롯데 상장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해석이 재계에서 나온다. 그룹 지배력 강화작업과 맞물려 “사회적 기여를 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밝힌 본인 약속을 새해에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나갈 것인지도 주목된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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