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제주에서 감귤 따보니

박경은 기자 2018. 12. 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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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제주도 귤 농장 / 박경은 기자

‘감귤 국민수확단’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접한 것은 지난 10월이었다. 농촌의 인력난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제주 경제의 주요한 축을 지탱하는 것이 감귤산업일텐데 이렇게까지 모집해야 할 정도라면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걸까. 일당뿐 아니라 왕복항공료에 숙박까지 지원한다고 하는데 솔깃한 생각이 들었다. 제주 감귤농장에서 직접 감귤을 따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그 때문이었다.

먼저 제주농협 인력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감귤 수확단에 지원하고 싶다고, 농사 경험은 없지만 잘할 수 있다고 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농사 경험이 있는 조합원 단위로 모집한다는 것, 그리고 최소 20일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하루 이틀 하고는 힘들다고 돌아간 분들이 많았어요. 농가에서도 피해가 컸죠. 민원 제기하는 농가도 많았고요.”

“이게 그렇게도 힘든가요. 고도의 기술도 필요하고요?”

“고도의 기술은 아니더라도 익숙지 않은 분들은 작업 속도가 많이 더디죠. 요령 없는 분들도 많다보니 농가에선 오히려 뒤치다꺼리 하는 게 힘들다고 호소하거든요.”

한마디로 재미있겠다는 생각만으로 달려든 ‘어중이떠중이’들이 꽤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뜩이나 숙련된 일손을 구하느라 애먹는 농가들 중 나흘 동안만 체험해 보겠다는 기자를 반겨줄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한 귤농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귤 산지로 유명한 제주 서귀포 효돈·보목동에 걸쳐 있는 ‘아버지와 아들’ 농장이다. 김영삼씨(78)가 1960년대부터 가꿔온 6000평 규모의 과수원으로, 노지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늦어도 12월 말까지는 귤을 수확해야 한다(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감귤 수확시기는 이보다 늦다). 겨울철 귤 수확기에 수확과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아들 김평진씨(51)는 농장 대표다.

첫날 서귀포에 도착했다. 김 대표를 만나기로 한 서귀포 칼호텔 앞에서 농장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걸렸다. 보목초등학교를 지나 왼쪽길로 들어서자 향긋하고 달큰한 공기가 느껴졌다. 일대가 감귤밭이다. 주렁주렁 열린 귤나무가 보였고 천혜향, 한라봉이 자라는 비닐하우스도 이어졌다. 나무 아래 꽤 실해 보이는 귤이 제법 많이 떨어져 있었다. 상품 가치가 없는 ‘파지’라고 했다.

황금빛 열매를 보니 당장이라도 밭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오늘은 딸 수 없다”고 했다. 오전에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날, 그리고 이튿날까지는 딸 수 없다. 물기를 머금은 귤은 당도도 떨어질 뿐 아니라 금방 상하기 때문이다. 밤새 바람이 많이 불어 물기를 날려 버린다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확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작 나흘밖에 머무를 수 없는데 계속 비가 오면 낭패다. 귤밭 한편에 창고를 개조해 만든 숙소에 누웠지만 마음이 내내 초조했다. ‘위잉’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볼 만큼 바람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살면서 바람이 그렇게 아쉬웠던 적이 또 있을까 싶었다.

■오전 비 때문에 다음날 오후에 시작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귤나무 잎부터 만져봤다. 약간은 축축한 느낌이었다. 김 대표는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되고 오후부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오전엔 택배작업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와 아들’ 농장은 수확한 귤을 100% 인터넷으로 직접 판매한다. 이날 작업은 따놓은 귤을 선별해 10㎏짜리 30박스를 포장해 택배차량에 싣는 것이다. 선과는 자동화된 기계로 이뤄진다. 한쪽에 수확한 귤을 쏟아부으면 구멍이 많이 뚫린 컨베이어벨트 위를 귤이 이동하면서 소과부터 대과에 이르기까지 5단계에 걸쳐 각기 분류된다. 원형의 구멍 지름이 갈수록 커지는 식이라 첫 번째 박스에는 아기 주먹보다 작은 귤이, 맨 마지막에는 성인 남성의 주먹만한 귤이 모인다. 그렇게 기계로 분류하면서도 눈에 띄는 ‘파지’들은 손으로 골라냈다. 여러 명의 손을 거치면서 상처 없는 예쁜 과실만을 골라 박스에 담았지만 막상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혹시 이동과정에 다른 짐에 눌려 하나라도 물러지거나 터지기라도 하면 금세 다른 귤도 썩을 수 있다. 그동안 마트나 시장에서 귤을 박스채로 살 때 상한 귤을 골라내며 타박했던 행동이 미안해졌다. 4명이 함께한 택배 포장은 2시간 만에 끝났다.

기자가 농장에서 귤 수확 체험을 하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1시부터 ‘드디어’ 귤 수확에 나섰다. 작업에 앞서 주의사항을 들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귤을 가지와 함께 적당히 잘라낸 뒤 꼭지가 남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바싹 잘라내야 한다. 남은 꼭지가 다른 귤에 부딪혀 상처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뾰족한 가위가 귤의 과피를 찌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꼭지든 가위든 과피에 상처가 나면 귤은 금방 썩는다.

나뭇가지에 긁히거나 상처를 입기 쉬우므로 귤을 따기 위한 채비도 단단히 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햇볕을 가리기 위해 챙 넓은 모자를 썼다. 작업용 장갑을 끼고 주머니가 넉넉한 조끼도 챙겨 입었다. 다른 ‘초짜 일꾼’들과 함께 모두 7명이 나섰다. 여자가 5명, 남자가 2명이다. 주로 여자들이 귤을 따면 남자들은 귤이 가득 찬 바구니를 수레로 나르거나 사다리를 타고 나무 높은 곳에 있는 귤을 땄다.

눈앞에 주렁주렁 열린 귤을 보노라니 먹이를 눈앞에 둔 며칠 굶은 맹수라도 된 듯한 흥분감이 밀려 왔다. 손이 닿는 나무 아래쪽 열매부터 땄다. 처음엔 귤 하나를 쥐고 가위로 가지를 자른 뒤 다시 꼭지를 바싹 잘라내고는 바구니에 담았다. 꼼꼼히, 세심히 한다고 하는데 김 대표의 아버지인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두세 개씩 손에 쥐고 꼭지를 잘라야지. 어느 세월에 다 할려구.” 그래서 이번엔 좀 작은 귤 3개를 가지에서 잘라낸 뒤 한손에 쥐었다. 손가락도 짧은 데다 손놀림도 익숙지 않아 그 중 2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누가 볼세라 얼른 줍는다고 주웠지만 할아버지는 ‘매의 눈’으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농장의 귤 품종은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은 궁천조생이다. 50년이 넘은 나무라 키가 크고 사방으로 가지가 무성하게 뻗어 있을 뿐 아니라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포도송이처럼 빽빽하게 과실이 열린다. 나무 사이의 간격도 좁다. 자연 그대로,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이다.

■나무 간격 좁아 수차례 머리 부딪혀

바깥쪽으로 보이는 아래쪽 열매는 비교적 손쉽게 딸 수 있다. 누구나 낭만적으로, 재미로 생각할 법한 귤따기.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은 무성한 가지 ‘안’으로 들어가 따는 것이다. 허리를 숙이고 나무 밑동 쪽으로 기어들어갔다.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가지를 보고 고개를 들다 나뭇잎에 가려진 굵은 가지에 머리를 쾅 하고 박았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눈앞에 별이 번쩍거렸다. 이날 4시간가량 귤을 따면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세차게 머리를 부딪힌 것만 대여섯 차례다. 용케 충돌을 피해도 삐죽삐죽 뻗친 가지에 모자와 옷이 긁히기 일쑤였다.

땅에 서서 팔이 닿는 부분까지 먼저 열심히 땄다. 10㎏짜리 바구니를 두어 개 채웠는데도 팔이 닿지 않는 나무 위쪽은 여전히 열매가 빽빽하다. 높이가 50㎝ 정도인 노란 컨테이너 박스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올라갔다. 억센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적당한 자세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몇 차례 긁히다보니 적당한 굵기의 가지에 몸을 걸친 채 ‘안정감’ 있는 자세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가지가 너무 무성해 아래쪽에서 헤치고 올라가기 힘든, 하지만 몸을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애매한 위치의 귤을 따기 위해 이리저리 꿈틀대다보니 마치 허리를 꺾어 몸을 돌려가며 오고무를 추는 것 같았다. 잎사귀가 달린 귤 가지를 잘라내자 문득 그 사이로 파란 하늘과 햇빛이 비쳐들었다. 순간 하늘에 둥둥 떠서 꿈을 꾸는 듯한 황홀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감흥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아우성치듯 매달려 있는 귤 때문이다. 손끝에 닿을락 말락한 귤을 보면서 ‘조금만 더’ 하는 유혹도 강하게 밀려왔다. 그때마다 처음 농협 인력지원센터에 전화했을 때 직원에게서 들었던 “욕심 부리다 많이들 다친다”는 경고를 떠올리며 참아냈다.

햇볕을 받으며 2시간 넘게 따다보니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자에 눌리고 젖은 앞머리와 김 서린 안경이 뒤엉켜 엉망이 됐다. 가지에 몸을 기대고는 장갑과 모자를 벗으며 땀을 닦는데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향긋한 귤과 신선한 나무의 향기가 온몸을 정화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만한 힐링이 또 있을까.’ 스스로 대견해하며 귤을 따기 위해 잎사귀를 헤쳤다. 순간 ‘쎄한’ 향이 진동하는 것 같더니 얼굴 위로 뭔가가 와장창 날아들었다. 가지에 매달린 채로 ‘푸르스름한 곰팡이를 뒤집어쓴 귤이 먼지폭탄이 돼서 터진 것이다. 잎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미처 볼 수 없었다.

이날 작업을 마무리한 것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나를 포함해 작업에 참여한 초보 일꾼 7명의 1인당 평균 수확량은 20㎏짜리 컨테이너 9박스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초보자는 하루에 20박스, 숙련자들은 30박스 이상을 딴다고 한다. 콘테이너 박스에 담아놓은 귤 중에는 연둣빛이 많이 감도는 것들도 있었다. 나무 아래쪽에 있어서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한 것들이다. “이런 건 따지 말라니까” 하는 할아버지의 잔소리에 누군가 소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속 엉거주춤 쭈그린 채 따다보니 세상 천지가 다 노랗게 보여서요.” “우하하” 하고 웃음이 터졌다.

수확된 귤은 자동화된 기계를 통해 크기별로 분류된다 / 박경은 기자

■“열흘은 따봐야 제대로 손에 익을 것”

다음날은 새벽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하루를 공쳐야 했다. 나흘째인 마지막 날은 간밤에 바람이 꽤 불어 아침부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작업 일수로는 고작 이틀째지만 그래도 조금은 요령이 생겼는지 한 번에 귤 3개 정도는 너끈히 쥘 수 있게 됐다. 따놓은 귤을 선별하던 주인 할머니(김 대표의 모친)로부터 “가위 잘 잡았다”며 “손이 야무지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차곡차곡 바구니에 쌓여가는 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성취감과 뿌듯함이 차올랐다. 인생사도 이렇게 노력하고 쌓는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개똥철학을 펼치며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곰팡이 팩’을 뒤집어썼지만 귤을 향한 집착과 집중력은 꺾이지 않았다.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다가와 옷자락을 흔들 때까지도 “새참 먹으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고서야 온몸이 뻑적지근해 왔다. 가위를 쥐고 있던 오른손의 감각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절편을 조청에 찍어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켰다. 속으로 정해놓은 목표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급했다.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할머니의 손놀림은 못 따라가더라도 일반적인 초보자가 하루에 따는 양은 넘기고 싶었다. 그 욕심을 읽었는지 할머니는 “잘못하면 파지 만드니까 차근차근히 하라”면서 “열흘은 따봐야 제대로 손에 익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날은 하루 8시간 이상 꼬박 귤을 딴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밤 비행기 시간에 맞추느라 씻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은 채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배낭엔 ‘동료’들이 챙겨넣어준, 이날 딴 신선한 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서운한 마음 한편으론 ‘이 정도면 열흘은 일할 수 있겠다’는 건방진 생각도 슬금슬금 올라왔다. 비행기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저녁 대신 귤을 까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발아래 배낭을 내려놨는데 그 뒤론 기억이 없다. 스튜어디스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과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손님, 서울 도착했습니다. 많이 피곤하신가봐요.” 주변에 다른 승객들이 거의 빠져나간 걸 보니 날 한참 깨운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농장의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아버지와 아들’ 농장 김평진 대표 / 박경은 기자

‘아버지와 아들’ 농장 김평진 대표는 제주 농업인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수확철에 아버지를 돕던 그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덕분이다. 이는 귤따기를 체험하고 싶은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10박11일 프로그램이다. 농촌의 부족한 일손 문제를 해소하면서 초보자들에게도 귤을 따는 기회와 교육을 제공해 농촌 공동체를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첫해에 블로그에 공지를 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지만 1회차에 7~8명씩, 5회차에 걸쳐 신청이 빠르게 마감됐다. 입소문이 났는지 2018년에도 금방 마감됐다. 경쟁률이 꽤 치열해 정성껏 사연을 보낸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선발했을 정도다.

“제주를 여행하는 분들이 귤을 따보고 싶어도 웬만한 농가에선 반겨주지 않으니 좀처럼 기회가 없어요. 그렇다고 처음 하시는 분들이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처럼 돈을 벌고 싶어 귤을 따겠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초보자들에게 일종의 귤따기 교육과 농촌생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저희도 수확 일손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실험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 시작했지요.”

김 대표는 과수원 한쪽 곁에 있던 창고를 주택으로 개조해 숙박과 점심, 그리고 소정의 일당을 제공한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귤따기도 돕고 약간의 여비를 보태 여행을 이어갈 수 있는 데다, ‘유사 가족’처럼 지내며 색다른 경험을 나누는 기회도 얻는다. 지난해 이곳을 통해 인연을 맺은 몇몇 이들은 올해도 수확을 도우러 내려왔다. 그의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도 많이 찾아온다.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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