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마크]정두언 "자영업자 돼보니 알겠다..文 정부 종쳤다"
개국공신이 정권의 숙적이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MB) 정부에서 ‘왕의 남자’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실세 의원은 정권 초반부터 ‘형님’(이상득 전 의원)의 권력 사유화를 정면 비판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살아있는 권력도 모자라 당시 미래 권력(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굉장히 위험하다”(2010년 언론 인터뷰)며 날을 세웠다. 정적(政敵)을 양산한 대가는 구치소 수감 신세였다. 이후 최종 무죄판결로 억울함은 풀었지만, 총선 낙선과 이어진 우울증이 한동안 그를 덮쳤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얘기다.
2016년 총선 낙선 후 생계를 위해 방송국을 직접 찾아다녔다는 정 전 의원은 지금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다. 매일 1개 이상의 방송 일정이 잡혀있다. “방송 수입이 의원 시절보다 훨씬 낫다”고 할 정도다.
그런 그가 이번엔 일식집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입으로만 평생 먹고 살 수 없으니, 노후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직 정권 실세가 발레 파킹(valet parking)도 해준다’는 소문의 식당이 궁금했다. 27일 서울 마포구 그의 식당을 찾아 밀착 마크했다.
Q : 식당을 정식 오픈(24일)한지 나흘째다.
A : 가오픈까지 포함하면 열흘 정도 했다. 자영업을 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이란 걸 느끼고 있다. 지금은 그래도 ‘오픈발’로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자리가 총 58석인데 점심ㆍ저녁 꽉꽉 차면서 하루에 100명 이상은 방문하는 것 같다.
A : 실제로 문 닫고 나가는 게 나니깐 ‘셔터맨’인 건 분명하다. 식당 투자자면서 영업 상무, 또 사람들 응대도 하는 ‘마담’이기도 하다. 실제 가게 운영은 요식업 경험이 있는 아내가 맡고 있다.
실제 이날 기자가 지켜 본 정 전 의원은 포스기(카드단말기) 사용도 익숙치 않은 초짜 장사꾼이었다. 화장실 청소 등 잡무부터 하나하나 배우는 단계라고 한다. “청소는 직원 시켜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이거라도 해야지”라며 웃었다.
Q : 요즘 자영업자가 힘들다는데, 실제 해보니 어떤가.
A : 체감 중이다. 직원이 8명이라 인건비 부담이 제일 크다. 직원이 8명이면 한 달에 3000~4000만원이 나가는 건데, 버텨낼지 의문이다. 지금 최저임금 인상 등 얘기가 나오는데 내년 정초 되면 삼중고에 빠진다. 엄청난 쇼크가 될 거다. 이 정부는 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아주 꽉 막힌정부 같다.
논객답게 자영업 얘기는 자연스레 정치 이야기로 넘어갔다. 마침 인터뷰 직전 한 여론조사업체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발표된 참이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처음으로 45% 이하로 내려갔다.
Q : 지지율이 이렇게 떨어진 이유가 뭘까.
A : 국정 핵심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인데 이 정부는 그걸 모른다. 그 사람들은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정부라고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지금 노동정책을 보면 귀족근로자만을 위한 노동정책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귀족근로자만 혜택받는다. 연봉 5000만원이 넘는 현대자동차 직원도 최저임금 미달에 걸리지 않나. 결국 여기에 맞추면 빈부 격차는 더 커진다. 그런 바보 같은 정책이 어디 있나. 지지율 떨어지는 건 자업자득이다.
Q : 문재인 정부가 다시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 이미 종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 꽉 막혀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하자면, 노 전 대통령은 남의 얘기는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한다. 근데 결국 보면 남의 얘기가 다 반영된다.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 얘기는 안 하고 경청을 열심히 한다. 근데 그 말 안 듣고 결국 자기 생각대로 간다. 꽉 막힌 사람이다.
‘종쳤다’는 표현은 올해 초 검찰이 MB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를 수사하던 중 ‘MB의 성골 집사’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수사 협조 모드로 변신하면서 등장한 발언이다. 당시 정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희중 전 실장은 MB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MB는 종쳤다”고 말했다. 실제 김 전 실장은 ‘키맨’으로 불리며 MB 수사에 급물살을 일으켰다.
Q : ‘종쳤다’고 본 계기가 있나.
A : 주휴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고 느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해 속도 조절할 것처럼 말하길래 ‘이제는 정신 차렸나보다’ 생각했는데 며칠 만에 바로 이 개정안을 들고 나왔지 않나. 완전 거꾸로 간다. 남들이 뭐라 하든 본인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거다.
Q : 경제 말고 다른 문제는 어떤가.
A : 이 정부가 노무현 2기 정부라는데, 그게 아니라 이명박ㆍ박근혜 2기 정부다. 하는 일이 똑같다.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불법사찰, 언론장악 하는 게 다 그대로다.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 비판하면서 적폐청산한다더니 그때 나온 적폐행위를 다 따라 하고 있다. 좀 있으면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질 거다.
Q : 여권 내부의 견제 세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A : 전혀 안 보인다. 지금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호만 하다가는 대선에 가서 절대 유리하지 않을 거다.
Q : 민주당이 재집권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A : 내후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해볼 만하겠지만, 한국당의 치명적 약점은 차기 주자가 없다는 거다. 지도자가 없다. 지도자 없이 선거 치르는 건 힘들다.
Q : 그렇다면 민주당 내 유력 주자는 누군가.
A :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미 아웃됐고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도 희미하다. 이낙연 총리와 유시민 작가가 유력해 보인다. 유 작가도 지금처럼 현 정부를 계속 비호만 해서는 유리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
Q : 유 작가는 스스로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했다.
A : 그게 바로 대권의 정석이다. 자기가 대권을 추구하겠다고 밝히면, 이후 행보가 뭐든지 순수하게 안 보인다. 비판의 표적이 된다. 그걸 피해 나가려는 거다.
이쯤 되자 그의 발언의 특징인 ‘확고함’이 궁금했다. 그는 이에 대해 “내가 통찰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길 때문이다. 의원 시절에도 눈치 안 보고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지금은 내게 눈치 볼 권력 자체가 없지 않나”라고 답했다.
식당 개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지만 정 전 의원은 이날도 점심 영업 이후 방송사로 이동해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식당과 방송 둘 다 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물으니 “나는 지루한 걸 못 참는다. 최근에 예능도 준비 중이고, 연기자 데뷔도 꼭 하고 싶다. 연기 학원, 뮤지컬 학원도 다녀보고 직접 감독들도 찾아가 봤는데 ‘전직 의원’이 부담스러웠는지 안 뽑아주더라”라고 말했다. 연기를 한다면 어느 역할을 맡고 싶은 지 물었더니 “나쁜 남자. 악역을 맡고 싶다. 그래야 뜰 수 있다”고 답했다. 식당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소문처럼 진짜 발레파킹도 직접 해주냐”고 물었다. “다 뻥이다. 넓은 공용 주차장 있는데 내가 왜 해주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종일관 솔직한 그였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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